촛불밖에 보이지 않는 세모거리
더 일찍 춥고 을씨년스러워져
이제 불끄고 지켜봐야할때 온듯

날개없이 추락하는 국가브랜드
손뼉치고 노래할 축제 아니다
침묵해도 나라걱정은 더 클수도

 

김병길 주필

새해가 한 달도 안 남았다. 12월이 되면 누구나 시간에 대해 예민해진다. 올해 세모는 더 일찍 춥고 을씨년스럽다. 자연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두달째 거리에는 촛불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 없는 낭설,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 배신감 같은 부정적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6차례에 걸친 대규모 집회는 아슬아슬하게 평화집회로 진행됐다. 세계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연일 촛불광장을 취재중인 해외언론은 한국사람들은 왜 문제를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광장에 의존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역사는 확률은 낮아도 충격이 큰 사건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난 적이 없다. 대한민국 미래가 역사적 교차로에 섰다. 그러나 촛불로만 밝히기엔 우리 앞날은 너무 어둡다. 촛불에 담긴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정신을 국가시스템 대(大)개조로 승화시켜야 한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정치권 당리당략과 개인 이해관계로 국가 거버넌스 개선이라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국민적 분노를 생산적 에너지로 바꿔야 한다.

지금 대통령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 중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게 우리 사회에 좋으냐에 대해선 의견이 갈라질 수 있다. 즉각 퇴진, 일정에 따른 퇴진, 탄핵 등을 놓고 모두의 생각이 같다면 이상하다. 이런 가운데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에게 폭력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 탄핵이 몰고 올지 모를 후유증을 걱정하는 쪽이나 탄핵밖에 방법이 없다는 쪽의 입장에는 다 일리가 있다. 모두가 중도에 퇴진해야 한다는 큰 방향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극단적인 목소리만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다른 의견을 배척하고 짓밟으려 한다. 이 악순환이 우리가 국가적 현안에서조차 합리적이고 초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는 근본원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은 곧 새 대통령 선출로 연결된다. 이 모든 과정은 질서정연하고 성숙된 국가시스템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민과 언론의 준엄한 감시 속에서도 대통령 퇴진과 새로운 대통령 선거는 성숙한 시스템 구축으로 승화·발전되어야 한다. 그 기본은 공정성 확보, 심각한 현안의 연속 수행, 그리고 깊은 역사의식이다. 

당리당략에 젖은 정치권에 대해 실망을 넘어서 혐오로까지 나아간 현재 상황에서 새로운 이념, 경제 활성화 전략정책, 사회 개혁의 비전을 내걸고 새롭고 참신한 제3지대에서 정치결사체를 조직하기를 바라는 기운이 충만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박근혜 정부의 종식 과정 그 자체에 함몰돼 있는가 하면, 말을 아끼는 상당수 국민은 내년 언젠가 뽑을 새로운 국가 지도자를 더 중요한 사안으로 여긴다. 진보와 보수는 정치 변화의 폭과 속도에 대한 취향의 구분일뿐 국가 안보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안전의 보장’이라는 단순명료한 기준 하나로 충분하다.

돌이켜 보면 온갖 매스컴이 한달 반에 걸쳐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는 가운데 분노한 국민여론과 정치권의 공세가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탐욕과 분노의 마음과 고집은 불을 끄고 지켜봐야 할 때가 왔다. 그러면 청정하고 고요한 지혜의 불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가로등을 꺼야 별빛이 나타나듯 여기저기 켜놓은 불빛들을 잠시라도 꺼보자.

그동안 말없이 촛불을 지켜만 보고있던 침묵의 다수도 누구보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해왔다. 그들에게는 이제 촛불집회가 지겨울 수도 있다. 국가브랜드가 날개없이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의 상황이 손뼉치고 노래하는 축제라면 더욱 아니다. 극단적인 목소리만 힘을 얻는다면 필연적으로 반대편의 반발을 초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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