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시인·밝은사회연구소장

새천년에 들어 급진전 돼가는 인간사회에 삶의 개념은 민주사상의 보편화와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 정신적으로는 만민의 일체사상과 아울러 지리적, 경제적으로 정보와 교통, 통신의 거래가 활발해지고 상호의존적이 돼 시간, 공간 면에서도 지구를 크게 축소시키고 있다.

인류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공동운명체가 됐으며 일일생활권내의 ‘지구마을’이 됐다. 또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을 같이 할 수 있는 인류가족이 된 것이다. 지구상 어느 구석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그것이 서로에게 무관하지 않으며 동시에 상호간 이해관계가 돼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서로 돕고 도움 받는 것으로 평화를 유지해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오늘 날 인류는 인간중심의 사회가 상실돼 가고 불신의 만연으로 계층간 갈등만 조성되고 의리와 인정과 용서가 사라지는 사회가 돼가는 것을 인식 못하고 있다.

인류는 서로 이해하고 협동하며 함께 살 것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더 윤택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생존권조차 위험을 받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아직도 과거의 패권주의, 열패주의의 타성에서 못 벗어나 이기적과 님비(nimby)주의의 영달에만 급급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인류사회가 밝지 못하다고 해서 만사를 어둡게 보거나 낙심하는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 자학하는 길이요, 절망에 빠져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보지 않는 길이며 파멸을 자초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때일수록 베르그송(H. Bergson)의 순수지속(純粹持續)과 생명의 의지가 약동하는 보람 있는 인간의 삶, 그것을 개척하는 보편적 가치관에 의한 창조의 길을 가야 한다. 지금 나라 안팎은 혼돈과 분규에 싸여 타락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이를 운명이라고만 받아들이는 무책임한 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권력과 부와 타협하고 순종만을 일삼는 비겁한 사람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인류사회의 아포리아(aporia·難題)가 무엇인가를 자문자답해보자. 사람들은 현재 사회가 현대 산업화에 들어가면서부터 전통사회의 가치기준 상실로 도덕은 진부해지고 무의미하게 되어 간다고 한탄만 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 극치를 달리고 있는 과학기술사회와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제3의 물결이라고 하는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과 이미 도래해 있는 ‘미래사회의 패러다임’에 의한 IT문명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그 전통사회의 가치기준도 동시에 발전해 왔는가? 

불행히도 그렇지가 않다. 실증철학이 공리주의와 쾌락주의를 낳고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 날의 인류사회에서는 인간이 물질 이상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배태되는 인간경시 풍조와 배금사상과 기계기술에 대한 절대 복종만이 인간의 당위(Sollen)가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비인간화의 작업은 인간의 존엄을 깎아내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 것이고, 그리하여 인간성이 완전히 도태되는 날 기계와 인간은 같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과학 추리 소설가들의 공상적 추측이 점점 현실화 되고 있다.

물론 추리 소설가들만이 아니더라도 암담한 인류사회를 미리 헤아려 짐작할 수는 있다. 다만 우리는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렇지 않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모른다. 아니, 설령 알고 있다고 한들 실천에 옮기지 못하거나 안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고 양심이 무의미해지는 날, 신의 권위도 함께 무너질까 두려워진다. 

‘지구마을’ 인간들은 모태에서 아기 낳기를 꺼리고, 그리하여 어느 날부터 인조인간이 공장에서 양산되고 모체의 아기보다 변형된 DNA 개발로 사이보그(cyborg)와 같은 개조인간이 더 유능하고, 인간이 질병과 기형으로부터 해방된다고 하며, 도리어 그런 세상을 찬양하게 되는 날, 원시 바이러스가 유기물이냐, 무기물이냐 하듯이 그 때는 인간이 사람이냐, 살아있는 기계냐 하는 문답과 갑론을박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쯤에서 존엄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중심의 가치가 살아있는 ‘인간사회’의 당위성을 실현하기 위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겠다. 한 때 보릿고개를 겪으며 한번만이라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세상에 살아봤으면 하는 ‘완전한 사회’를 꿈에서라도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 세상, 즉 유토피아(Utopia)를 지향하던 인류가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없고’ 인간의 생각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향(理想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결코 이상할 것이 없다. 

이에 반해 ‘오토피아(Oughtopia)’는 실현가능한 사회이다. 인간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적 문화유산 DNA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민족의 선각자(先覺者)들은 많이 있다. 근래 대한민국의 스승으로서 세계적 사상가이며 평화주의자이기도한 故조영식(밝은사회운동 창시자)박사 著書 ‘오토피아’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철학용어 ‘오토피아’는 ‘유토피아’와는 달리 추구하여 실현할 수 있는 ‘당위적 요청사회’의 ‘ought to be(do)’와 ‘topia’의 합성어이다. 우리는 ‘지구마을’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상실돼 가는 인간본연의 자세를 재확인해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하며,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 인간중심사회를 이루기 위한 ‘오토피아(Oughto pia)’건설을 우리의 미래지향적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제’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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