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大를 천식 앓는 반 미라 동구 할배
그나마 가슴 한켠 딱다구리 집 내주고
아직도 감감 먼 소식 눈 못 감고 버틴다

책으로는 못다 쓴 마을의 묵은 전설
개화기 설핏 눈뜬 안개에 길을 잃어
일시에 덮쳐온 해일, 말도 글도 쓸려갔다

얼룩진 옷을 입고 거울 앞에 내가 선듯
하늘하늘 푸른 하늘 꽃 비가 내리는 날
할배의 아린 가슴에 달빛 한 줄 박힌다

 

◆ 詩이야기  :   은현리 마을 앞에는 마을의 지킴이가 살고 있다. 마을의 모든 역사를 다 꾀고 있는 당산나무 할아버지. 천식이 걸린 지 오래 됐고, 가슴 한편도 새들의 보금자리로 내어 준지 오래다. 허리, 팔다리가 아프고 병이 들어도 눈을 감  지 못한다. 우리의 말과 글이 빼앗기고, 동네 처녀들은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끌려간 뒤로 할아버지는 하루도 편하게 잠을 자본적이 없다. 언제인가 돌아올 그들을 위해서 할아버지는 오늘도 마을 앞에 등불을 들고 서 있다.
◆ 약력 : 경북 청도 출생인 임성화 시인은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시조 당선돼 등단했다. 시조집으로「아버지의 바다」가 있으며 제29회 성파시조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울산시조시인협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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