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日帝)는 조선왕조 흔적을 지우고 폄하하기에 바빴다. 그 첫번째 조치로 경복궁 앞마당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고 북악 기슭에 총독관저를 지었다. 해방후에는 경복궁위의 총독관저를 버려야 했지만 미군정 장관이 관저로 쓰면서 못된 역사가 연장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며 경무대라 칭하고, 윤보선 대통령은 미국 화이트하우스처럼 블루하우스라며 총독관저의 운명을 바꿔보려 했지만 대통령의 비극은 이어졌다.

조선왕조의 궁을 탐해 목조 흉내를 낸 콘크리트 건물이 청와대다. 이 봉건적 건축의 내부 공간은 외부 크기를 유지하느라 허망하게 크다. 진정성에 담 쌓은 이 건축에, 아무리 선한 이도 몇년을 거주하게 되면 허위가 되고 불통이 되기 마련이라는 것이 건축가들의 진단이다. 대통령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서 청와대를 옮겨야한다는 얘기가 갈수록 솔깃하다.

우리에게 성공한 역사는 있는데 ‘성공한 대통령’은 없은 이유는 뭘까.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함성득 지음)’에서 첫번째로 꼽은 것이 ‘성공하려는 패러다임’이라 했다.임기 내 달성 불가능한 국정과제 설정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둘째는 박정희의 정치적 그늘이다. 군인 출신의 전두환·노태우 뿐 아니라 독재와 싸웠던 김영삼·김대중도 박정희 모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 한다. 셋째는 과도한 차별화다.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철저히 부정하는 와중에 진영 간 대립은 심화되곤 했다. 넷째는 인사 실패다. 공식 정부조직 보단 비선 라인에 더 큰 영향력을 주어 레임덕을 자초 했다. 다섯째는 약한 입법 리더십이다. 국회와 관계 정립을 못해 효율적 정책 입안을 못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질색했던 말이 ‘독재자의 딸’이었다. 그래서 ‘원칙과 신뢰’를 앞세웠지만 말과 행동은 달랐다. 국정운영에서 법과 원칙은 무시됐다. 청와대는 왕정시대의 구중 궁궐처럼 멀어졌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잔혹사를 또 이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 지도자에게는 미래가 없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