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4·19혁명 1주년을 앞두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혁신이다’ ‘용공이다’ ‘장면 정권은 무능하다’는 등 구호와 함께 거리에서 벌어진 충돌로 사회의 모든 기능이 마비 상태 였다.

4월 19일과 20일은 전국에서 밤늦게 까지 시위가 벌어졌으며 21일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판사 황윤석(黄允石)의 의문사 뉴스가 충격을 더했다. 황 판사는 역사학자 황의돈의 딸로 192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3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피난 수도 부산에서 제3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한 해 전 제2회 고등고시에서 합격한 선배 이태영씨에 이어 두 번째 여성 고시 합격자가 됐다.

황윤석은 이듬해 24세의 나이로 서울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됐다. 여성 고시선배 이태영씨는 야당지도자 정일형 박사의 아내로 판사 임명에서 제외돼 황윤석은 여성판사 1호가 됐다. 이후 은행원 손정현과 결혼하였고 민사 단독판사까지 역임 명성을 쌓았다. 

부검 결과 항히스타민 알레르기 치료제 베나드릴 이라는 약물이 검출되었으며 남편은 감기 때문에 복용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항간에는 별의 별 소문과 억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5월 16일의 군사쿠데타로 최초의 여판사 의문의 죽음은 서서히 묻혀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에 헤어롤 2개를 뒷머리에 달고 출근했던 이정미 재판관(헌재소장 권한대행)이 6년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지 일주일이 됐다. 이 재판관은 1962년 울산 출생으로 대현 초등학교와 학성여중, 마산여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울산 대현 초등학교 제16대 교장을 역임한 아버지 이재만씨가 마산으로 전근하면서 고교는 마산에서 다니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6년전 헌재재판관 인사청문회 때 그는 ‘소신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청문회를 준비하는 2주 동안 짧게 생각하고 소신을 밝히기 보다 ‘소신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게 낫다는 게 소신”이라고 했다. 퇴임식에서 “대통령 파면 결정이 참으로 고통스럽고 여려운 결정이었다”고 고백, 판사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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