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를 건너가는 한 스님에게 “어딜 그렇게 바삐 가십니까?”고 묻자, 돌아보지 않고 지팡이로 하늘에 뜬구름을 가리키고 가더라는 옛시조가 있다. 1999년 7월 유동성 위기로 그룹이 몰락하자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자신을 믿고 따르던 대우 가족에서 “뜬구름이 되어 살렵니다”는 고별편지를 띄우고 외유에 나섰다.

뒤돌아보면 뜬구름처럼 살아온 그의 일생이기도 하다. 창업 이래 30여년 동안 1,000만km-지구를 250번 돈 거리를 하늘에 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해외 세일즈 행차때 마다 들고 다닌 가방을 ‘꿈가방’이라 불렀다. 그의 꿈이 그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지내온 세월에는 장래를 지향하는 꿈이 그림자 처럼 따라 왔는데 이제 그 꿈은 날개 꺾인 새가 되었다”고 고별인사에서 그 꿈의 과절을 실토했다.

청년 김우중이 서울 충무로에 20평 사무실을 차렸던 1967년 그 날, 대우 창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7년 3월 22일 과거 대우맨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베트남에서 청년사업가를 육성하고 있는 팔순의 그도 자리를 함께했다. 

“갑작스러운 외환위기로 세계 경영의 과업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면서 눈물을 보였다. 망한 기업의 나이를 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대우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직도 대우조선, 대우건설 등 대우(大宇)브랜드를 걸고 있는 10여 개 기업이 산업계에 빛과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대우가 외환 위기라는 파도 앞에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요즘 조선업계에서는 ‘58조원’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와 대우조선은 “대우조선이 파산하면 국가적으로 58조원 손실이 나는데 수조원을 더 투입해서라도 살리는 게 맞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을 ‘묻지마 혈세(血稅)’로 연명시킬 방침이다.

징검다리 건너가며 뜬구름 가리키는 스님에게 돌팔매질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김우중의 유산이 좀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실기업의 교훈을 남기고 흘러가는 뜬구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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