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RUPI 사업단장

꽃이 핀 걸 보고서야 비로소 봄이 온 줄 알았다. 추워야 겨울이라지만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추웠다. 그 이유가 분명 날씨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봄이 시작한 것은 틀림없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전령은 역시 꽃이다. 경남 양산 원동에 가면 겨우내 죽은 듯 말라붙은 가지에서 팝콘처럼 톡톡 터뜨리는 매화를 만나고, 여수 오동도의 붉디붉은 동백은 빨간 꽃길을 만들어 사람들을 유혹하며, 전남 구례 산수유는 마을 전체를 통째로 노랗게 감싼다. 더디게 늑장을 부리던 봄도 산수유가 만개하면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꽃을 시샘하는 마지막 꽃샘추위가 물러갈 즈음, 매년 어김없이 들녘에서는 봄을 알리는 야생화 삼총사가 찾아온다. 얼음과 눈을 뚫고 가장 먼저 올라오는 노란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행복(동양), 슬픈 추억(서양)이다. 복과 장수와 행복을 상징하는 꽃이다. 아기 노루의 귀처럼 동그랗게 보이는 잎을 닮아 이름 붙여진 노루귀도 그 모습이 앙증맞다. 줄기에 털이 보송보송 돋아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희색, 분홍색, 연보라색 등 빛깔이 참 곱다. 전라북도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되어서 일명 ‘변산 아씨’로 불리는 변산바람꽃이 마지막 주인공이다. 따스한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이 바람의 여신이라는 아네모네를 연상시킨다.

지난 22일은 열한 번째 맞는 ‘울산 화학의 날’이었다. 화학의 날 기념행사는 울산테크노일반산업단지 내에 위치한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센터에서 열린 기공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울산 화학의 날은 제2차 경제개발 핵심 사업으로 건설된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의 기공식 일자인 1968년 3월 22일을 기념해 제정됐으며 2007년부터 시작하여 올해가 11회가 된다. 이 센터는 석유화학업계의 최대 애로점인 공정 운전 및 유지보수 인력의 양성과 재직자 직무향상 교육을 목적으로 건립된다. 총 25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019년 울산 화학의 날에 정식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필자는 RUPI(울산 석유화학산업 발전로드맵) 사업에서 센터 구축을 기획하고 대선공약으로 넣어 시와 함께 예산을 확보하느라 동분서주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이날 센터 기공식을 바라보는 필자의 감회는 특히 남달랐다.

오후에는 두 개의 행사가 열렸다. 하나는 화학산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화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과학기술계를 리드하는 글로벌 리더 및 저명 과학자를 초빙해 UNIST 대강당에서 개최한 ‘글로벌 리더 특별 초청강연회’다. 해가 갈수록 지역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관심과 열의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미래며 희망인 청소년들의 과학기술을 향한 관심과 열정은, 4차 산업혁명을 쓰나미처럼 맞이하고 있는 제조업 기반도시인 울산의 미래와 직결된다. 

더불어 저녁에는 한국중소화학기업협회가 중심이 되어 시화, 반월, 여수 등 전국의 중소화학기업과 기업지원 유관기관을 초청해 산학연관 네트워크 교류의 장인 ‘중소화학기업인의 밤’을 진행했다. 주 행사인 ‘중소화학기업의 위기대응 전략 심포지엄’에서는 한국화학연구원 이규호 원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최광해 부소장과 동덕여대 김익성 교수 등 초청강사 2명의 ‘글로벌 및 국내 경기침체 하에서의 중소화학기업 상생 대응전략’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울산에도 작지만 강한 글로벌 히든챔피언의 탄생을 기대하면서. 

대외적으론 중국의 사드 보복 및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많은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다. 또 대내적으론 탄핵과 조기 대선의 혼돈 속에서 한국경제가 우왕좌왕하고 있다. 화학산업은 대한민국 제조업을 오늘날과 같은 위상으로 일군 산업현장의 파수꾼이다. 지역과 국가 발전을 위해 온갖 역경을 헤치고 애써온 전국의 화학산업인에게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완연한 봄이다. 봄이 되었다고 끝이 될 순 없다. 끝은 또 다른 시작. 늘 그래 왔듯이 우리는 또 처음을 기다린다. 살다 보면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처음을 만나게 된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단어. 우리는 수많은 처음을 겪으며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한다. ‘처음’은 언제나 있고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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