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현상이 된 극단주의
탄핵과 대선 맞물린 우리나라
정치과잉에 양극화 훨씬 더 악화

지역갈등 줄고 세대갈등 극성
모바일시대 극단적 갈등 키워
대선 토론에도 완화 기미 안보여

 

김병길 주필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서로 섞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빙탄(氷炭)’ 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빙탄은 얼음과 숯(석탄)을 말한다. ‘얼음과 숯은 서로 용납할 수 없다(氷炭不相容)’ ‘얼음과 숯은 한 그릇에 담을 수 없다(氷炭不同器)’ 같은말이 자주 나온다.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이 서로 용납하지 못하다는 것은 얼음과 숯을 같은 그릇에 담을 수 없는것과 같습니다”(‘성종실록’ 8년 11월 4일)처럼 쓰였다. 2,300년 전 중국 시인 굴원(屈原, 1원전 343∼285)이 쓴 ‘초사(楚辭)’에 처음 나온 표현이다.

‘물(水)과 기름(油)’ 역시 ‘빙과 탄’처럼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사이가 안좋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긴 연휴가 지나면 대통령 선거일(5월 9일)이다. 빙(氷)과 탄(炭)이 공존하고 수(水)와 유(油)가 양립하는 마법같은 일이 일어날까? 

인간은 심리적으로 극단에 끌린다는 연구가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위기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등장하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는 날이 갈수록 더 자극적인 단어들이 출현한다.

“극좌와 극우 후보가 환상과 거짓 약속, 불가능한 선물을 팔고 있다. 극단주의자에 표를 주지 말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 기업인 200명이 유력 일간지 르몽드에 실은 호소문이다.
프랑스 기성 정당이 몰락한 자리는 극단주의 리더들이 차지 했다. 프랑스 정신인 톨레랑스(관용)와 통합 대신 유세장마다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난무했다. 

극단 주의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극단주의는 극우나 극좌 정당의 부상으로 이어지며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도 비슷한 시각으로 이해된다. 옛날의 극단주의가 현대에는 종교를 넘어 정치를 통해 일상에 스며 들었다.

생쥐들의 나라 ‘마우스랜드’의 생쥐들은 5년마다 투표를 해 거대하고 뚱뚱한 검은 고양이를 지도자로 뽑았다. 고양이들로 이뤄진 정부는 ‘좋은’법을 통과시켰다. 고양이의 발이 들어갈 수 있도록 쥐구멍이 충분히 커야 하도록 규정했다. 고양이가  쥐를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한 ‘좋은’법 이었다.

삶이 고통스러워지자 생쥐들은 흰고양이를 새 지도자로 뽑았지만 생활이 더 어려워지자 생쥐들은 다시 검은 고양이를 뽑았다, 흰 고양이를 뽑았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생쥐들은 고양이의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62년 캐나다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의 연설 내용을 토대로 쓴 책 「이것이 선거다」의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갈등 양상이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국면 때만해도 나름대로 익숙한 세대 간 갈등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대를 넘고 진영도 넘어 전선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전통적 우군인 진보진영 간에도 죽기살기식 정치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탄핵과 대선이 맞물리며 정치과잉현상이 뚜렷해지고 ‘내가 선(善)’이라는 확증 편향도 깊어졌다. 모바일로 무장한 젊은 층이 ‘광장의 승리’에 대한 기억을 증폭시키며 극단주의에 경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년 전 처음으로 양극화를 거론했고,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통찰을 높게 평가했다. 그런데 노무현 시대에 비해 오늘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훨씬 더 악화되었고, 이제는 양극화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보수 세력에 의해 위험한 좌파로 매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갈등이 완화되면서 세대 갈등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20∼30대 젊은층과 이를 반대하는 60대 이상 노년층 간 세대 갈등 역시 극대화 됐다. 모바일 시대로의 급속한 전환이 갈등 증폭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 손 안의 인터넷이 동질적인 사람들끼리의 ‘집단 극화’ 현상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합리적인 정책 간 비교나 토론보다는 감정을 앞세운 자극적인 손터치로 주목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얘기다.

극한대립이 일상속으로 깊이 파고든 점이 가장 우려된다. 극단주의는 ‘야만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다. 흉악 무도한 테러리즘 확산도 같은 맥락이다. 오래전 인간 세상에서는 말 보다 주먹이 먼저였을 거다. 그러나 문명화된 세상에서 승부는 대개 말로 이루어진다.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에서도 극단주의 완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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