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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뉴스] 누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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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컷뉴스
  • 승인 2017.05.19 22:30
  • 댓글 0

盧 전 대통령 서거 8주기…그를 죽음으로 내몬 요인들에 대한 탐구

- 비극의 시작은 쇠고기수입 반대 촛불
- MB, 지지추락하자 盧측 촛불배후로 봐
- 盧측근들 사찰…"대검서 지검에 실적할당"
- "MB, 기록물 이관 알면서 유출로 몰아가"
- 친노 기업들 먼지털이식 세무조사 돌입
- 검찰, 盧 소환뒤 23일간 망신주기로 압박
- "언론, 국정원에 놀아나며 살점 후벼파"
- "진보세력 와해공작 멈추려 희생 택해"

■ 생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 SNS 참여 : 페이스북[클릭] 

 

 

◇ 김현정> 김현정의 뉴스쇼 금요일의 코너, 뉴스 속을 훅 파고듭니다. 훅뉴스 시간 권민철 기자가 함께합니다. 오늘 훅뉴스 아이템은요?

◆ 권민철> 오늘도 관련 음성 준비돼 있습니다. 

(효과) 노무현 전대통령 음성들 

◇ 김현정> 노무현 전 대통령 목소리네요?

◆ 권민철> 다음 주 개봉을 앞둔 영화 '노무현입니다' 한 대목입니다. '노무현의 친구'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뒤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 김현정> 그러고 보니 8주기가 다가오고 있어요?

◆ 권민철>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일반 국민들 가운데는 8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왜 전직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을 궁금해 하는 분들 많은 거 같습니다. 특히 그 당시에도 정치적 타살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잖아요. 

◇ 김현정>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그 자체에 대한 의혹은 아닌거요. 자살이냐 타살이냐 이런 의혹은 아니지만 누군가 원인을 제공한 거 아니냐 이 말씀이예요. 자 그렇다면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가 볼까요?

◆ 권민철> 먼저 대통령이 퇴임하던 그 날(2008년 2월 25일)로 되돌아가보겠습니다. 

(음성)

캬~ 여러분 제가 오늘 말 놓고 한마디 할까요? (탄식) 제가 오늘 딱 말 놓고 하고 싶은 한 마디 하겠습니다. 야~ 기분 좋다.

 

(사진=노무현 재단 캡처)
◇ 김현정> 오랜만에 듣네요. 이 게 퇴임 당시 고향에서의 대통령 음성이군요?

◆ 권민철> 봉하 마을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퇴임 이후 지방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일찌감치 했다고 한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그래서 낙향 후보지를 물색했다는데. 하지만 사저 매입 비용 때문에 결국은 고향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 김현정> 귀향 하고나서 농촌 리모델링 사업을 했었지? 친환경 농업, 숲 가꾸기, 동네 하천 살리기 등…

◆ 권민철> 대통령에겐 잘사는 농촌 만들기의 전범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직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들이 열광하면서 봉하마을에 방문객들이 넘쳐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인기없던 현직 대통령에서 사랑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습니다. 

◇ 김현정> 저도 그 당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해서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현직 대통령보다 전직 대통령이 더 인기가 있었어요.

◆ 권민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만에 지지율이 25%까지 떨어졌죠. 그 무렵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전국에 촛불 시위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것이 비극의 씨앗이었습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증오심과 적대감이 그 때부터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경수 민주당 의원의 이야기입니다. 

(음성)

청와대 안에는 정보보고나 이런 걸 통해서 촛불의 배후가 노무현 대통령 쪽이고 이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는 그런 정보까지 포함해서, 그 안에서는 그게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 김현정> 전 대통령인데 정치적으로 재기할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 권민철>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뒷조사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검찰을 동원해서 뒤를 캐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참여정부 고위인사의 이야기입니다.

(음성: 변조)

나와 가까웠던 기업하던 분들, 계좌 다 뒤져보고, 나 뿐만 아니라 다 그랬죠 뭐. 10만원까지 다 뒤졌으니까요. 대검 중수부에서 각 지청(지방검찰청)에 하도급 맡기듯이 분담시켜서 했다고 들었어요. 검찰 내부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누구는 제대로 못 털어서 승진에서 누락됐다고도 하고.

◇ 김현정> 나 뿐만 아니라 다 그랬다?

◆ 권민철> 그래서 다른 분들에게도 확인을 해봤는데, 역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성: 변조)

저부터 시작해서, 저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계좌가 추적이 되고, 까지고.. 정치적으로 저기(노무현 진영)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주욱 진행해 온 겁니다.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해 왔던 거죠. 그들이 이야기하는 진보 좌파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고 했던 것이죠.

◇ 김현정> 두 사람 다 음성을 변조한 거죠?

◆ 권민철> 이 분들 한사코, 정식 인터뷰는 고사했기 때문입니다. 모두 지난 이야기이고,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 이 문제를 밝히면 또 다시 정치적으로 논란 빚을 수 있어섭니다. 그래서 음성을 변조해서 느낌만 짧게 전해드렸습니다. 

◇ 김현정> 이분들 이야기가 이명박 정권이 정치보복을 벌였다는 주장인 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출석을 위해 2009년 4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며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차량에 오르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 권민철> 네. 그래서 그 무렵에 노 대통령도 주변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봉하마을로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겨눴는데, 그 것이 바로 '국가기록물 사건'입니다. 

◇ 김현정> 그렇죠. 생생합니다. 이번주에도 박근혜 청와대의 기록물 때문에 당시 사건이 다시 언론에 회자가 됐어요?

◆ 권민철> 당시 사건은.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한 디지털 자료를 노 대통령이 열람할 수 있게 편의를 봐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하드웨어를 복사해 가져간 거죠. 이건 대통령의 기록물 애착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에 쓴 '운명'이라는 책을 보면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기록물에 집착했다. 성공과 좌절의 5년 기록이 사료(史料)로서 다음 정부들에 의해 잘 활용되길 바랐다"고 적었습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없던 법(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류)도 만들고, 대통령기록관도 만들었던 거고요.

◇ 김현정> 그렇다면, 이번 청와대 문건 실종사건과 당시 사건이 어떻게 다른 건가요?

◆ 권민철> 이번엔 인수인계 자료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거고, 당시는 자료는 남겼지만 복사본을 만들어 가져갔다는 것이 다릅니다. 당시 기록물을 없앴다면야 문제겠지만, 일부러 법까지 만들어 전부 남긴 건데도 중대 위법 행위가 있는 양 몰아갔던 거죠. 노 대통령에게 기록물 열람만 협조하고 반납 받으면 끝날 일을. 

◇ 김현정> 어떻게 문제를 삼았던 거죠?

◆ 권민철> 대통령 기록물이 유출됐다는 식으로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그게 원본도 아니고, 복사본도 국가의 경호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 집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도 복사본 가져가는 걸 양해했었습니다. 이미 다 알고서도 마치 도둑맞았다는 식으로 이슈화 한 거죠. 다시 김경수 의원의 이야기입니다.

(음성)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당시 전화 통화까지 했습니다. 이 내용으로. 그 내용이 녹취에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렇게 통화까지 해놓고 그 다음에 언론을 통해서 자꾸 그런 식으로 공격해서. 기록물을, e지원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을 탈출하려는 도구로 활용을 한 거죠.

◇ 김현정> 된다 해서 가져갔는데, 나중에 도둑맞았다 뒤통수를 치니까 전직 대통령 망신 주기를 했다는 거지요?

◆ 권민철> 결국 백기를 든 건 노 대통령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비서진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지만 나중에 한명도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비극의 시작은 그 다음부터입니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기업인들 세무조사가 시작이 된 겁니다. 국세청이 마음먹고 기업을 털면 안 털릴 기업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잖아요. 대통령이 훗날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썼던 게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것이었겠죠. 

◇ 김현정> 보복성 세무조사에 나섰다? 그게 언제였죠?

◆ 권민철> 2008년 7월. 퇴임 5개월만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이 타깃이었습니다. 그해 12월부터 박 회장과 노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구속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조카사위인 연철호, 권양숙여사, 아들인 건호씨 까지 줄줄이 소환됐고요. 혐의는 박 회장에게 모두 64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김현정> 이 금액이 바로 이번 대선토론회 때 홍준표 후보가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그 부분이지요?

◆ 권민철> 맞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또 유일하게 '이보세요'라며 언성을 높였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노 대통령 서거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이 됐었습니다. 아무튼 당시 검찰은 노 대통령 가족들 수사는 물론 친구인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특수활동비를 가지고 비자금 조성한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급기야 노 대통령까지 직접 소환하기에 이르렀고요.

◇ 김현정> 소환 때 온 나라가 난리였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출석을 위해 봉하마을을 출발한 2009년 4월 노 전 대통령을 태운 버스가 경찰차와 취재차량이 길게 줄을 이어 뒤따르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 권민철> 2009년 4월 30일. 언론들이 헬기까지 띄워 생중계 했죠. 훗날 안희정 지사는 "천리나 되는 길을 버스 태워, 헬기까지 쫓아가면서 전국에 생중계하며 소환했는데 혐의는 딱 2개 뿐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 김현정> 2개 혐의요?

◆ 권민철> 박연차 회장이 권 여사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대통령이 알고 있었는지 혹은 노 대통령이 돈을 요구했는지. 또 하나는 정상문 비서관이 비자금 조성할 때 알고 있었는지, 두 부분입니다. 

◇ 김현정> 우병우 당시 중수1과장이 대통령에 막말했다는 이야기도 이 때 나온 거죠?

◆ 권민철> 당시 대통령 조사 현장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전해철 의원이 입회했는데 제가 전 의원에게 확인해 봤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이인규 중수부장은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문 대통령이 '운명'에서 썼었습니다.

◇ 김현정>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에게도 확인해 봤나요?

◆ 권민철> 전화를 걸어봤는데요, 들어보시죠. 

(음성)

기자: 불편하시겠지만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를 드렸는데요...

이인규: 응하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자꾸 그 옛날이야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 김현정> 당시 수사가 꽤 오랫동안 진행됐어요?

◆ 권민철> 13시간 가량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 내용에서 더 나가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박연차 회장 말 말고는 증거가 없었다. 대통령과 박 회장의 말이 서로 다른데, 박 회장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 할 만한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기록조차 없었다. 통화기록이 없다는 것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 김현정> 한마디로 무리한 소환 조사였다는 거지요?

◆ 권민철> 검찰로서는 소환 자체에 목적이 있었던 듯합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박연차 회장과의 대질이었습니다. 변호인들이 반대해 무산됐는데, 또 대질 조사를 거절한 것이 또 기사화됐습니다. 

◇ 김현정> 돈 받은 사실이 들통 날까 두려웠다는 식으로. 

◆ 권민철> 검찰로서는 손해 볼 건 없는 장사였던 셈이죠. 검찰이 권력의 시녀다 하는데, 역사적으로도 노무현 수사는 대표적인 권력의 비위 맞추기 수사라는 오명을 지우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검찰이 가족들 문제로 대통령을 부른 게 그 전에도 있었나요?

 
(노컷뉴스 자료사진)

◆ 권민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아들 비리 혐의가 있었지만, 직접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노 대통령이 처음이었지요. 

◇ 김현정> 이번에 보면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조사하고 나서 6일 만에 구속영장 청구했는데, 그 때는 어땠어요?

◆ 권민철> 소환조사는 사건의 마지막 수순이죠. 소환하면 곧 신병처리 하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게 수사 관행입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23일간 아무조치도 안하고 시간만 끌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검찰발로 별의별 언론 보도가 나왔고요. 대표적인 게 바로 이런 보도입니다.

(음성)

앵커: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갑 선물로 받은 1억원 짜리 명품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권 여사가 자기 몰래 시계를 받아 보관하다가 지난해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김현정> 뭐 이 것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 권민철> 이런 류의 보도가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또 다른 원인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죠.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에서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 압박으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언론은 기꺼이 공범이 됐다"고 적었습니다.

◇ 김현정> 언론이 공범이 됐다?

◆ 권민철> 방금 논두렁 보도는 오보였습니다. 그 오보에 국정원의 공작이 개입했다는 이인규 중수부장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죠.(2005년 2월) 이런 언론 행태, 특히 진보 언론 행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에서 서운함을 내비쳤습니다.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자들과 진보 언론간 감정싸움의 근원도 바로 노 대통령 서거에 있다고 봐야할 겁니다.

◇ 김현정>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내몬 세력은 이명박 정권, 검찰, 언론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 권민철> 친노 정치인들은 이렇게 보고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전방위적인 공격을 허용하다가는 자기 한명 때문에 진보 진영 전체가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게 될 거라는 부담을 느꼈었던 거 같다, 그러다 결국 죽음으로 이 모든 걸 중단시키려 한 것 같다고요.

◇ 김현정> 8년이 지났지만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당시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을 흐름으로 주욱 정리를 해봤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 여러분은 어떤 것을 느꼈습니까? 훅뉴스, 권민철 기자 수고했습니다.

▲참고서적 : 문재인의 운명(2011)
▲취재도움 : 박준희(중앙대 화학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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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7-05-19 13:43   김동균 기자
웹출판 :   2017-05-19 13:43   관리자
입력.편집 :   2017-05-19 13:42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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