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시인·GCS 국제클럽 연구소장·연수원장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생을 동반하는 세 가지 숙명적인 것이 있다. 그림자와 죽음 그리고 마음이다. 그림자를 떼어 낼 수가 없듯이 죽음은 항상 나와 함께 한다. 죽음은 관념으로써 언제나 나를 지배한다. 사람은 한번은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나의 삶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게 되는 성격이나 품성이다. 그러나 마음 씀씀이에 따라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과 태도도 마음이 하는 것이다. 

항상 이맘때면 자연은 어김없이 생명의 기운을 북돋아 오월을 풍성하게 한다. 메마른 대지를 어느새 푸르게 하고 나무들을 헤집고 들어오는 햇살로 숲속은 아침을 열고 새들의 지저귐은 오월이라서 감사하다는 소리 인 듯 또렷하다. 매화, 배꽃은 피는 듯 지고, 아직 앞산에서는 철쭉이 자태를 뽐낸다. 시골 신작로 따라 아카시아 꽃향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논에는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다.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는가, 도시의 거리에도 온갖 종류의 색깔이 넘쳐나고 생기가 요동친다. 거리의 상점은 물론 음식점, 백화점 놀이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아이들의 해 맑은 웃음소리가 하늘로 퍼진다. 활기찬 거리와 동시에 자녀를 둔 부모, 부모를 모시는 자녀 역시 더 바빠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 오신 날 등을 기념하고 기리기에 모두  바쁘다.

그리고 선남선녀들이 짝짓기 좋은 계절이 오월이다. 또 이달은 곳곳에 어린이 잔치, 경로잔치, 어려운 이웃돕기 행사까지 해마다 오월이 되면 으레 있는 일들이고 우리는 이것에 익숙하여 일년 열두 달 중 오월에는 특히 감사해야 할 날들을 만들고 서로를 위하고 세상을 위하여 마음 쓰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일을 한다. 태어난 것부터가 감사하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당신이 있어 감사하고, 당신이 감사해야 하는 내가 있어 감사하다. 

세 가지 숙명적인 것 중에 마음은 유일하게 내가 조정 할 수가 있다. 착하고 선한 마음을 늘 유지 하는 것도 세상에 대한 감사이며 배려인 것이다. 감사한 대상이 참으로 많지만 절대적 가치 속의 어머니에 대한 감사는 그 차원을 넘어서 은혜인 것이다. ‘어머니 상’을 상징하는 대상 중에는 당연 맹자 어머니 급씨(伋氏)를 떠 올린다. 아들을 바로 잡기위해 짜던 베틀을 잘라버리고 교육 환경 때문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던 참으로 대단한 어머니다. 

급씨에  의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자식을 위하는 모든 어머니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신사임당, 한석봉 어머니 등 본받아야 할 어머니상은 많다. 고전적 예를 차지하고라도 최근에 TV에 나오신 101세 할머니 이야기이다. 혼자 사시는데 집안에 있는 텃밭을 가꾸시고 운동도 하시고 음식도 손수 만들어 드시며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을 풀어서 수육을 해 드시고 콩나물 등 야채 몇 가지를 곁들여 드신다. 그 할머니가 80년 동안 사용하고 있는 재봉틀로 큰 딸(81세)에게 줄 몸빼(일 바지)를 손수 만든다. 딸에게 입혀놓고 그렇게 고와 보인다고 좋아 하시는 할머니, 할머니의 환한 모습에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 있어 살아 있음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이 땅에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는다. 이렇듯 오월은 몽땅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얼마전만해도 ‘어머니 날’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좀 서운 할 것 같아 슬그머니 아버지를 포함시켜 ‘어버이 날’이라 한다. 사실 오월이 가정의 달이라 해서 그 많은 날들을 기념하고 기리고 각 행사에 들어가는 씀씀이의 담당은 고스란히 아버지 몫이다. 그래서 아버지들에게는 씁쓸한 오월이다. 어떤 아버지들에게는 오월이 비극의 달이다.

또 가까운 옛날 ‘보릿고개’라고해서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온 식구가 가계(家計)를 돕는 일에 참여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존재는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뼈가 닳도록 일을 해야만 했다. 동시에 아버지의 권위도 대단했는데, 오늘날 가정은 구성원들의 경제 활동으로 제 목소리가 크다. 그러다보니 아버지의 역할이 모호해지면서 권위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지만 어린이가 왕이요, 어머니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비틀비틀 걸어가는 펭귄의 몰골이다. 아버지는 가정에 왕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더욱이 오월의 주인공도 필요 없다. 다만 가장(家長)이라는 위치에서 ‘아버지’인 것을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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