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와 떠난 자' 한화는 23일 사의 표명을 수리한 김성근 전 감독(오른쪽)의 대행으로 이상군 투수코치를 임명해 당분간 시즌을 치를 예정이다.(대전=한화)

프로야구 역대 최다 한국시리즈(KS) 우승과 최다승 감독도, 야구의 신도 만년 하위팀의 구세주는 아니었다. 과연 이제 어느 감독이 날개 꺾인 '독수리 군단'의 비상을 이끌 것인가. 

'야신' 김성근 감독이 결국 한화를 떠났다. 김 감독은 24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를 찾아 마지막 선수단 미팅을 연 뒤 총총히 구장을 떠났다. 한 팬으로부터 받은 장미꽃 세 송이를 든 채였다. '김성근 사단'인 김광수, 계형철 코치도 구단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김 감독은 2014년 10월 28일 한화의 제 10대 사령탑에 올랐다. 예전 태평양, 쌍방울, LG에서 보인 약팀의 강팀화를 이끌 적임자로 낙점된 김 감독은 한화 보살팬들의 수양을 끝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SK에서 3번이나 KS 우승을 이끈 야신도 한화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한 채 옷을 벗었다. 물론 박종훈 신임 단장과 불화가 적잖은 사퇴 요인이 됐지만 지난 2년 동안의 성적이 납득할 만큼 좋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에 앞선 한화 사령탑은 김 감독보다 더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해태(현 KIA)에서 9번, 삼성에서 1번의 KS 우승을 일군 김응용 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도 2013, 2014년 모두 최하위에 그쳐 역대 최다승 감독(1567승)의 마무리가 씁쓸했다. 

 


▲한화 단장 "현 코치진이 잘 해야…정리한 뒤 인선"

이제 팬들의 관심은 한화의 제 11대 사령탑에 쏠린다. 현재 이상군 투수코치의 감독대행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나 방향타를 잡을 수장이 필요하다. 

일단 구단 운영의 실권자인 박종훈 단장은 24일 "현재 대행 체제의 코치진이 선수단 분위기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부터 어떤 감독이 좋을지 신중하게 체크할 것이고 (김성근 감독과 관련해) 정리 작업이 마무리된 이후 새 감독을 모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서두르진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실 현재 한화는 당장 가을야구가 아니라 혼란에 빠진 팀 분위기를 추스르는 게 먼저다. 그 이후 장기적인 안목으로 리빌딩을 할지, 최근 수백억 원을 쏟아부은 결실을 맺기 위해 가을야구에 도전할지 구단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결정될 일이다. 

박종훈 한화 단장.(자료사진=한화)

현재 한화 선수단의 분위기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시즌의 3분의 1 정도만 소화한 가운데 감독이 급작스럽게 사퇴하는 상황은 어느 팀이건 당황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 지난 시즌 뒤부터 한화 선수들은 김 감독과 박 단장 사이에서 벌어진 구단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주도권 싸움에서 박 단장이 이긴 모양새다. 박 단장은 지난해 한화가 김 감독을 유임하기로 하면서 영입한 인물이다. 장기적 관점의 리빌딩 등 구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김 감독으로 대표되는 감독 야구에서 현대 야구의 한 트렌드인 프런트 야구가 한화에도 중심이 된 듯한 양상이다. 

다만 이것이 오히려 한화 차기 감독 인선에 난관이 될 가능성이 적잖다. 어느 감독이 단장의 권한이 막강한 팀을 맡기를 원할까. 현재의 한화는 이장석 대표가 구단을 쥐락펴락했던 넥센에 비견될 만큼 프런트의 힘이 막강한 상황이다. 이름있는 감독들이 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외부 인사냐, 내부 발탁이냐, 제 3의 길이냐

현재 야인 중에는 명망이 있는 지도자들이 적잖다. 비록 전 소속팀을 아쉽게 떠났지만 능력을 충분히 입증한 사령탑들이 있다. 

가장 최근까지 현장 경험이 있는 사령탑은 조범현 전 kt 감독이다. 조 전 감독은 지난 시즌 중까지만 해도 kt와 재계약이 유력했으나 이런저런 외적인 이유들로 무산됐다. 그러나 많지 않은 지원에도 신생팀 kt의 1군 리그 연착륙을 이끈 지도력은 인정을 받았다. 

여기에 조 감독은 앞서 KIA와 SK에서도 능력이 검증됐다. KIA에서는 해태의 후신이 된 이후 첫 KS 우승을 2009년 이끌었고, 2003년에는 당시 신생팀이던 SK를 KS 준우승으로 견인했다. kt에서도 고영표, 김재윤, 엄상백, 주권 등 토종 투수들을 키워낸 공로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리빌딩을 노리는 한화에 적합한 감독일 수 있다. 

선동열 전 KIA 감독도 현장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는 지도자다. 선 감독은 2014시즌 뒤 KIA와 재계약까지 발표됐지만 팬들의 거센 반발로 사퇴했고, 김기태 현 감독이 뒤를 이었다. 선 감독은 이후 프리미어12 코칭스태프로 참여해 우승을 이끌며 투수 교체 등에서는 여전히 실력을 인정받았다. 다만 박 단장의 권한이 막강한 상황에서 우승 전력 감독들이 쉽게 올지 미지수다.
 

'외부 수혈이냐, 내부 발탁이냐' KBO 리그 사령탑 경험이 풍부하면서도 현재 야인으로 지내고 있는 조범현 전 kt,(왼쪽), 선동열 전 KIA 감독. 그러나 한화는 최근 외부 영입한 사령탑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구단 출신 인사를 차기 감독으로 발탁할 여지도 남아 있다.(자료사진=kt, KIA, 한화)

여기에 한화는 촤근 외부 인사를 사령탑으로 영입해 대부분 실패한 전력이 있다. 당초 한화는 구단 레전드로 불릴 만한 인사들이 코치진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왔으나 '철밥통'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때문에 김응용,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코치진 물갈이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실패한 개혁에 그치면서 외부 인사에 대해 팬들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구단 출신 인물의 발탁도 조심스럽게 예상되는 이유다. 한화는 이전 빙그레 시절부터 혁혁한 공로자들이 많아 감독 후보들은 언제나 널려 있다.

현재는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이다. 두 김 감독을 거치면서 한화를 떠났던 구단 출신 코치진은 이미 다른 팀으로 활약하는 등 제 갈 길을 걷고 있다. 아직 시즌 순위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멀쩡한 타팀 코칭스태프를 감독으로 빼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현재 다른 구단에 얽매이지 않은 한화 구단 레전드들은 있다. 깜짝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현 구단 실권자의 의중이 중요하다. 그룹 고위층이 찍은 김성근 감독이 실패한 만큼 구단의 의견이 실리는 인물이 차기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박 단장이 현장 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그럴 경우 김성근 감독을 몰아냈다는 비난 여론이 엄청나게 들끓일 것이 예상돼 현실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이다. 

프로야구계의 대표적 명장으로 꼽혔던 김응용, 김성근 감독의 뒤를 잇는 까닭에 한화의 차기 사령탑은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못지 않은 '독이 든 성배'와 같은 자리다. 과연 누가 기꺼이 독배의 위험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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