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 (노컷뉴스 자료사진)

"제가 그 분을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습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인 2017년 5월 23일. 봉하마을에서 올라 온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로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 상영관에 나타났다. 8년 전 자신의 스승이자 동반자였던 그를 떠나보낸 날, 그를 기억하는 영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에 선 것이다. 

안 지사와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1992년 제14대 총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계를 떠났던 안 지사는 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노무현 대통령을 도우면서 다시 정계에 복귀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제16대 대통령 선거까지 함께 달렸지만, 그는 선거 자금 문제로 함께 기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안희정 지사는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로 꼽힌다. 검찰에 조사를 받을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안희정 지사를 '동업자'이자 '동지'라고 명명했다. 이제 그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갈만큼, 존재감 넘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노무현의 사람'이었고 이제는 '노무현이 꿈꿨던 세상'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해봤다.

 



▶ 노무현 대통령은 안희정 도지사에게 어떤 사람이었고, 또 노무현 대통령에게 안희정 도지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 인간은 모방하면서 성장하는 존재다. 철저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따라 배워야 내 것이 되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끊임없이 따라 배워야 할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었다. 또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바라볼 때 가장 따뜻한 눈빛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그 눈빛을 전국민들에게 다 보내신 거 같다. (웃음) 그저 그를 사랑했고, 나 또한 사랑 받았다. 

▶ 오늘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 추도제에 앉아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노무현에 대한 회상은 그가 준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만든 것일까. 어떻게 보면 그것이 노무현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공감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인생의 아픔과 아름다움이 노무현을 통해 확인되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스스로 해석되는만큼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건데 그게 여러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옆에서 봤던 인간 노무현의 어떤 지점이 그런 공감대를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내게 '동업자'라는 표현을 썼던 것은 정말 대통령으로서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고, 대담한 표현이다. 그런데 내 부모나 가족을 생각해서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하시더라. 그게 인간 노무현이다. 사람의 처지와 그 아픔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어떤 형태로든 그 공감을 표시하며 도와주려고 한다. 사람은 겉으로 보여주는 면과 실질적인 면을 섞어가면서 산다고 생각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게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이중적인 문화를 가장 최초로, 공개적으로 깬 분이 아닌가 싶다. 노무현은 늘 정직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정치인 노무현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었나?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의 문화와 다른 정치인을 만났다. 그런 그의 모습이 함께 일하는 젊은 참모들에게는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언제는 한 번 점심 때 칼국수집을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아랫사람이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앞서 가고, 뒤를 졸졸 따라 가는데 갑자기 우리를 향해 이러는 거다. "나 혼자 걷게 하지 말아줘. 나랑 나란히 좀 걸어줘". 그런 태도들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정치인 노무현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 매력에 우리를 빠뜨렸다. 

▶ 안희정 지사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하고, 좋아하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요즘 말대로 하면 모든 흙수저들의 도전을 지지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과 학벌, 연고 이런 질서 내에서 실력과 상관 없이 밟혀왔던 모든 사람들의 도전을 어떻게든 응원해주려고 했다. 정부 초기 때부터 기득권 질서에 도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다. 그런 기회를 보장하려고 했던 정책이 노무현 정부를 아마추어라고 공격 받게 했다. 오늘 8주기에 가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이 남겨놓은 자산이 엄청나다. 10여 년이 지나 노무현의 그 자리에, 두엄 자리에 새싹이 막 돋아나는 느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모두에게 영양을 공급했다. 나는 그것이 역사의 수풀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산이 안희정 지사에게는 어떻게 남아있나?

2007년 10월 11일 퇴임을 앞두고 밥 먹으러 놀러 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청와대로 가서 재임기간과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정치 생활은 아홉 개가 똑같아도 한 개가 달라서 갈라서고, 아홉 개가 달라도 한 개가 같아서 동지가 된다더라. 그것을 선택하는 길, 그것이 정치라는 거다. 그런데 이게 현실로 가면 어렵다. 연고주의나 집단주의가 될 수도 있다. 내 편이면 예쁘게 봐주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연고주의에 빠지지 말고, 관계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훈련과 시민생활을 체득하는 일. 이것이 내가 정치인 노무현에게 핵심적으로 배우려고 했던 가치 중의 하나였다.

▶ 마지막으로 지금껏 하지 못했던 한 마디 부탁드린다.

- 법률을 대신하고 공적 관계의 약속을 대신하는 한국 사회의 연고와 지연 그리고 학연. 이 세 가지 카테고리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인류의 오래된 고리다. 이것을 극복해야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고리로 인해 큰 고통을 받는 인생을 살았다. 그의 도전은 지배 질서에 엄청난 저항을 불러 일으켰고, 그의 정치적 일생을 결정해 버렸다. 그 정신은 시민 정신으로 되살아나서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9년을 실질적으로 해체했다. 이제 이를 대체할 우리의 질서는 무엇일까.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이고, 이런 사회적 관계를 대체할 질서다.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직업 정치인인 나는 이제 노무현의 역사를 이어서 달리고자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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