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법도, 강력한 펀치도 없었지만 ‘인간 대표’는 또 맥을 추지 못했다. 인간세계에 재 강림(降臨)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손길은 더 부드러우면서도 완벽했다. 중국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 우전(烏鎮) 컨벤션센터서 시작된 바둑의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 1국에서 알파고(AlphaGO)는 백을 들고 4시간 25분만에 288수를 놓고 세계 랭킹 1위 커제(柯潔)를 1집 반 차로 눌렀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다섯 차례 대국에서 4승을 거둔 알파고가 이번엔 한층 진화한 수 싸움으로 압도했다. 이전에는 기본을 익히며 실력을 키웠지만 이제는 혼자 기발한 수를 두는 경지까지 올랐다니 인간의 창의력을 뛰어넘는 AI가 등장할 날도 머잖았다.

알파고와 커 9단의 2라운드 ‘런지(人機·인간과 기계)대전’은 바둑에서 나타난 AI의 위력이 인류 생활의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과제를 던졌다. 이제는 AI가 대결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협력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우리가 알파고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바둑을 잘 두어서가 아니다. 알파고의 근간이 된 머신러닝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가 지난해 이세돌과 대국이 끝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알파고는 바둑에 특화된 인공지능일 뿐이고 에너지와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도록 범용성을 가진 AI개발이 목표”라고 밝힌 것도 4차 산언혁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소리만 요란했지 눈에 띄는 성과가 안보인다.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4년 뒤져 있는것으로 분석됐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 원천기술이 부족한점도 있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규제와 제도탓이 크다고 하니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3패를 당한 후 제4국에서 승리하는데 결정타가 된 ‘중앙 끼워넣기 백 78’과 같은 신(神)의 한수가 아쉬운 우리나라 산업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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