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민우가 손목 관절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것은 2010년 12월 중순이었다. 손목이 부어 있었지만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37세의 건강한 남자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고 언제부턴가 목과 다리에도 통증이 일어난다고 호소하더니 급기야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근육 마비 증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 한 달 후에는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정형외과 과장이 나를 찾은 것은 박민우의 상태가 병리학적으로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장은 심리적 충격과 고통, 욕구 등이 신체의 이상증세로 발현하는 전환장애가 아닌가 의심된다고 자신의 견해를 조심스레 밝혔다.
박민우에게 처음부터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가 사진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사진작가는 처음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카메라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흔을 넘어서면서 관심의 집중도가 높아져갔다.
병실에 들어서자 체격이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남자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얼굴 표정은 물론 누워 있는 자세가 무척 편안하게 보였다. 그는 정신과 전문의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정형외과 과장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충격이 크겠습니다.”
나의 말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가느다란 주름 몇 개만이 겨우 나타난 그의 미소는 그렇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정형외과 과장의 의심이 맞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작가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라기보다…… 사진을 찍으러 한동안 이리저리 다녔죠.”
부끄러운 듯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연유로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까?”
“사진학과에 들어갔으니까요.”
목소리가 시큰둥했다.
“허허, 그렇군요.”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전에도 손목 관절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나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카메라가 너무 무거웠나요?”
그는 가만히 나를 보았다. 질문의 뜻을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사물의 영혼을 너무 많이 훔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군요.”
그는 여전히 침묵했다. 침묵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입을 연 것은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서였다.
“선생님은 누워 있는 제 모습이 못마땅하신 모양이네요.”
“솔직히 말하면 그 반대입니다.”
“왜요?”
“편안하게 보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상이 힘들었던 것 같군요.”
“선생님은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긴 하지만 근육이 마비될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저를 치료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아시겠군요.”
나는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궁금했다.
“제 방문이 못마땅한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이런 치료는 처음인가요?”
“네.”
“아, 그렇군요. 일상에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습니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작가에게 가장 힘든 시기가 작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때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렇겠지요.”
무심한 목소리였다.
“작가가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요.”
“전 작가가 아닙니다.”
“어째서요?”
“사진을 찍지 않으니까요.”
“카메라를 손에서 놓아버렸나요?”
“네.”
“그 이유가 궁금하군요.”
“선생님은……”
그의 눈썹이 치켜올려지고 있었다.
“저의 손목 관절 통증과 근육 마비의 원인을 카메라의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는 나의 생각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카메라를 쥐는 행위,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손의 동작이다. 사진 예술의 기본 행위가 손의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손목 관절 통증은 기본 행위를 못하게 함으로써 그를 카메라에서 해방시킨다. 하지만 완전한 해방이 아니다. 손목 관절 통증 속에서도 카메라를 쥘 수 있고, 셔터를 누를 수 있다. 근육 마비는 다르다. 찍는 행위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와의 첫 대화에서 사진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카메라의 무거움은 은유적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 전환장애의 요인들이 너무나 다양한데다, 사진에 대한 나의 편애가 생각을 그쪽으로 몰고 간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잘못 생각했나요?”
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카메라의 무게가 곧 죄의 무게라고 제가 말한다면 선생님의 상상이 완성되지 않을까요?”
그는 나의 물음을 슬쩍 피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가 왜 카메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린 것은 그 이유를 넌지시 알려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무게와 죄의 무게가 등가가 되는 세계를 상상하는 일이 쉽지 않겠군요.”
나의 말에 그는 시선을 내려뜨리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잠시 후 시선을 올렸다.
“누군가가 말했지요. 사진의 가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불러내는 데에 있다고.”
존 버거의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사진의 가치’가 아니라 ‘사진의 권력’이다. 가치와 권력은 뜻이 많이 다르지만 이 문장에서는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선생님께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그는 침대 가까이 있는 협탁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제목의 영화 디브이디였다. 제목 아래에 ‘기억과 망각 사이의 딜레마’라는 문구가, 더 아래에는 ‘과거로부터 돌아서지만, 벗어나지는 않는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특정한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의 기억을 모은 다큐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어떤 여성의 기억입니다. 선생님도 관심 있게 보셨으면 합니다. 그 부분이 어쩌면 보이는 것의 역할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관심을 갖고 보아야겠군요.”
나는 설핏 웃으며 말했다.

 

2
다큐멘터리 영화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그 일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라는 누군가의 고백과 함께 한 장의 흑백사진을 보여준다. 베트남 승려의 분신 사진이다. 불길은 흰색이고, 승려의 몸은 검은색이다. 검은색 몸은 불길에 휩싸여 있음에도 자세가 꼿꼿하다.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 고통을 초월한 상태인지 알 수 없다. 그 사진을 서두에 배치한 것은 영화가 1986년 4월 28일 서울대학교 앞 신림사거리에서 당시 서울대 학생 김세진, 이재호가 전방 입소 대상자인 사백여 명의 학우들과 전방 입소 반대 시위를 하던 도중 분신, 사망한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흑백사진이 사라지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박민우의 말대로 영화는 분신 사건과 직간접으로 관계한 아홉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증언자들은 스스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어에 의해 기억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증언자들이 머뭇거리고, 침묵하고, 허공을 더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기억의 괴로움 때문이었다.
나는 박민우가 가장 관심을 갖는다는 여성의 증언을 되풀이해서 보았다. 서울대 인류학과 85학번인 그녀의 증언은 이십 분 가까이 계속되는데, 2006년 7월 서울대학교 자하연 부근에서 촬영했음을 자막이 알려준다.
1986년 4월 28일 아침부터 있었던 본인의 행동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그 전날 신림사거리로 아침 일찍 모이라는 연락을 받아서 신림동 친구 집에서 잤습니다. 친구와 늦게까지 이야기하느라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했어요. 너무 놀라 세수도 안 하고 나가 버스를 탔습니다. 가야쇼핑 부근에 내려 시위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두 선배가 분신한 건물 옥상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교련복을 입은 85학번 남학생들이 울부짖으며 연좌농성을 하고 있었고, 경찰이 그들을 끌어내어 차에 태우는 상황이었습니다.
분신을 했던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아셨나요?
그날 들었어요.
그 두 사람, 예전에 만나본 기억이 있어요?
김세진 선배는 한번 뵌 적이 있어요. 제가 이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 저더러 총학생회장단이 전부 수배되어 연락하기 어렵고, 또 보안이 필요하니 그런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해 김세진 선배를 신촌의 한 다방에서 잠깐 만났어요.
다방 이름은 기억 안 나요?
생각이 안 나요. 허름한 곳이었어요.
거기서 있었던 일 좀 말씀해주세요.
김세진 선배에게 무얼 전달하면 되었으니까 아주 짧게 뵈었을 뿐인데, 제가 먼저 가서 앉아 있었던 것 같아요. 김세진 선배가 걸어들어와 제 앞에 앉았어요. 저는 의자 끝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는데, 머리칼을 만지고 있던 김세진 선배가 제 운동화를 보면서 “야, 나도 운동화 한번 신어봤으면 좋겠다” 하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 이유는 뭔가요?
당시 수배된 학생회 간부들은 회사원처럼 보이려고 정장 차림에 구두를 신고 다녔어요. 그래서 제 운동화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제가 덧붙여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김세진 선배께서 운동화를 신으면 날아갈 것 같다, 이런 말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네.
왜 그 순간이 그렇게 기억에 남아요?
김세진 선배를 만난 날이 선배가 분신자살을 하기 며칠 전이었어요. 두 선배가 분신자살을 했는데, 그중의 한 분이 김세진 선배라는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이 제 운동화를 보면서 운동화 한번 신어봤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었어요. 저를 만났을 때 이미 분신자살을 결심한 상태였을까,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그래서 날아가고 싶다는 말을 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다니면서 누군가에게 들은 말 중에 가장 잊히지 않는 말이에요. <새>라는 노래가 있어요. 김지하 시인의 시에다 곡을 붙인 노랜데, 새떼 무리 저 푸른 하늘…… 아무튼 그런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만 들으면 그렇게 세진이 형 생각이 나요.

3
영화를 본 다음날 오후 박민우를 찾았다. 그는 베개에 상체를 기대고 앉아 있었다.
“몸이 좋아졌나보군요.”
“간혹 이렇게 앉아 있곤 합니다. 힘들면 다시 눕지요.”
“영화, 잘 봤습니다.”
나는 디브이디를 협탁 위에 놓으며 말했다.
“지루하지는 않으셨나요?”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기억이 영화의 주인공이니까요.”
“선생님에게 기억이란 무엇이죠?”
“어떤 정신분석가가 말하길,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에 뛰어난 전문가라는 말이 생겨났지요. 진실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바꾸어도 되지요. 저 영화가 관객에게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면 인간의 그런 속성을 거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님도 불쾌감을 느꼈습니까?”
“저는 안 느꼈습니다. 일반 관객과 다른 입장에서 보았으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제가 그 영화를 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김세진 그분이 운동화를 신으면 날아갈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목소리에 긴장이 묻어났다.
“저 역시 궁금한 부분인데, 명확하지 않더군요. 증언자가 그 말을 하기 전에 덧붙여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라고 전제하거든요.”
“증언자의 상상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요.”
“선생님 느낌으로는 어느 쪽일 것 같아요?”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요. 김세진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표정에서 증언자가 그런 마음을 느꼈다면 실제로 말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나는 환해지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얼굴이 왜 저토록 환해지는지, 궁금해졌다.
“<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증언자가 <새>라는 노래를 들으면 세진이 형 생각이 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없었다면 영화가 많이 허전했을 것입니다.”
“왜요?”
박민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어떤 목적을 위해 스스로 몸을 태워 세상을 떠난 젊은 생명을 날개가 달린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상상일 뿐이지 않습니까?”
“과거는 고정된 시간의 어떤 형태가 아닙니다. 현재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역동적인 생명체입니다. 상상은 과거를 현재와 연결시킴으로써 과거를 역동적인 생명체로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상상력이 없으면 과거에 갇혀버리는 거죠. 과거에 갇히면 현재의 시간이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의미 없는 삶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떤 비정상적인 행위도 의미 없는 삶보다 나으니까요.”
그는 나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박선생이 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한데요.”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 부끄럽지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 그런 참혹한 사건이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요?”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두 달 전쯤이었어요.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여동생이 거실에서 TV로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영화와 관련한 일을 해 영화를 많이 보지요.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여동생 옆에 앉아 봤는데, 그게 이 영화였습니다. 한 남자가 바다를 등지고 서서 회상의 어조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처음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시선만 화면에 두고 있었지요. 제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건 남자의 괴로움 때문이었습니다. 남자를 괴롭히는 것은 기억이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기억을 견디는 남자의 몸에서 괴로움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느릿느릿 말하던 그가 갑자기 흠칫 놀라며 옆을 보았다. 무엇을 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이 묘했다.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는 분명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했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스르르 일어나더니 침대에서 내려와 가만히 섰다. 불안정한 자세이긴 했지만 근육 마비 환자가 섰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어떤 존재를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는 나무처럼 꼼짝도 않고 서 있는데도 그의 몸이 수많은 움직임으로 들끓고 있는 듯했다. 몸안에서 들끓고 있는 움직임이 금방이라도 몸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가 말을 시작한 것은 애원하는 듯한 그의 표정이 슬픔으로 변하면서였다. 괴로움에 싸인, 가슴을 저리게 하는 슬픔이었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헬멧을 쓰고 청바지를 입은 사복경찰조가 몽둥이를 들고 건물 계단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계단에 학생들이 있었는지 치고받는 소리가 났고, 그러고는 조용해졌습니다. 옥상을 올려다보니 한 사람이 옥상 저쪽 계단 입구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몰랐지만 백골단들이 뛰어올라오니까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의 상반신만 보였는데, 갑자기 그의 몸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면서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말의 내용에도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불이 붙은 상태로 구호를 외쳤습니다. 저는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저렇게 오래 생명이 붙어 있구나,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고, 사람이 불에 탄다면 그 온도가 얼마나 되고 얼마나 뜨거울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화상 입었던 기억이 나면서 그보다 몇천 배는 뜨겁겠지, 저렇게 불에 휩싸여 있으니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고, 두 사람이 굉장히 오랫동안 구호를 외쳤던 생각이 납니다. 마치 정지된 시간처럼. 한 사람이 몸을 숙이는 바람에 퍼펙트 당구장이라는 간판이 그을렸는데, 나머지 한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학생들은 백골단에 잡혀서 닭장차에 실려갔고, 거리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차들이 다니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떻게 학교에 갔는지 모르게 학교에 갔고, 학교에는 대자보가 붙어 있었고, 김세진, 이재호가 분신을 했다고 쓰여 있었고,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한 표정으로 대자보를 보는 학생들의 얼굴이 보였고, 또 언제나 그랬듯이 강의하러 가는 교수들의 무표정한 얼굴도 보였고, 공부를 하러 가는 학생들도 보였고, 그 모든 상황들이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평온……”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는 공기가 희박한 곳에 있는 것처럼 헐떡였다. 안색이 너무 창백해 종잇장 같았고,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그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혔다. 그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근육이 무력한 상태가 되었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려는 듯했으나 한마디도 못했다. 나를 보는 눈빛이 가물가물하고 있었다. 눈을 뜰 힘조차 없는 것 같았다. 맥박이 느려지더니 잠시 후 축 늘어졌다.

4
그날 밤 <과거는 낯선 나라다>를 다시 보았다. 박민우가 빙의된 듯이 보이는, 바다를 등지고 서서 기억을 추궁당하는 남자는 마지막 증언자다. 박민우는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괴로움 때문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남자의 괴로움은 인터뷰어의 질문에서 비롯된다. 인터뷰어는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로 증언자의 기억을 추궁한다. 화면에는 기억을 추궁하는 자의 모습이 안 보인다. 추궁당하는 자의 모습만 보인다. 영화를 보다보면 인터뷰어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감독과 동일시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마지막 증언자에 놀란 것은 그가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추궁하는 자가 추궁당하는 자로 변신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변신을 보면서 박민우의 변신을 생각했다.
박민우의 변신 전후의 상태를 보건대, 그는 환각 속에 있었다. 환각이 그를 증언자로 변신시킨 것이다. 그는 영화 속 증언자가 한 말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를 향해 거의 정확하게 되풀이하고 있었다. 1986년 4월의 분신 사건을 몰랐다던 박민우가 무엇 때문에 그 사건을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남자로 변신했는지, 환각 속에서 마주한 존재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더 있었다. 김세진이 여성 증언자의 운동화를 보면서 했다는 말에 박민우가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와 함께, 운동화와 <새>에 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무겁고 어두운 그의 표정이 환해진 이유가 한층 궁금해졌다.
정신과 전문의의 곤혹스러움은 병의 원인을 환자의 정신에서 찾아야 하는 데에 있다. 정신과 신체는 서로에게 가역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정신은 신체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시각화한다. 시각화의 명료성은 환자 이야기의 명료성과 직결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환자가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치료하려고 병원을 찾았음에도 적지 않은 환자들이 의사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감추거나 위장하는 까닭은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박민우도 내면의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지만, 말할 때의 표정이나 말의 내용으로 보아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를 숨기면서도 동시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영화 DVD를 나에게 건넨 것은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심리의 표현으로 보였다.
갈증이 일었다. 몸의 갈증이기도 했고, 마음의 갈증이기도 했다.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1986년 4월…… 나는 중얼거리며 맥주를 유리잔에 따랐다. 기억이란 희뿌연 빛이 떠도는 어둡고 깊은 터널과 비슷하다. 그 희뿌연 빛 속에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인다. 길쭉한 지하 복도다. 복도 끝에는 해부학 실습실이 있다. 머리가 텁수룩한 청년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청년은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청년과 나 사이에 시간이라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그 심연을 들여다보면 아득하다. 간혹 심연이 흔들려 나와 청년의 경계가 무너지기도 한다.
김세진, 이재호의 분신 소식을 들은 것은 해부학 실습실로 가고 있을 때였다. 동기생 가운데 누군가가 알려주었다. 동기생의 목소리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표정은 기억에 남아 있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달려갈 듯한 표정이었다. 실습실 옆쪽에 마련된 실습용 시신 추모 분향소에서 묵념하는 동안 불타고 있는 인체를 상상해보았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라텍스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보관함에 있는 사체를 동기생과 함께 들어올린 후 사체를 싼 비닐을 벗겨냈다. 적갈색 사체의 차가움이 낯설었다. 혈액을 제거하고, 근육을 헤쳐서 신경을 찾고, 복부를 가르고 내장을 들어내고 있을 때 불길에 허물어지는 육신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새카맣게 잊고 있었던, 박민우를 만나지 않았다면 영영 잊었을지도 모를 기억이었다. 증언자의 한 사람으로 영화에 출연한 이재호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촬영 장소는 그의 집 툇마루였다.
인터뷰어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그는 끝까지 침묵했다. 그의 얼굴을 응시하던 카메라는 침묵을 견딜 수 없었는지 시선을 그의 뒷모습, 열린 대문과 그 너머의 풍경으로 이동했다. 불길에 사라진 자식을 기억해야 하는 그에게 침묵은 기억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을 것이다. 김세진은 5월 3일, 이재호는 5월 26일 숨을 거두었다. 그들이 마지막 숨을 쉬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5
박민우의 병실을 찾은 것은 닷새 후였다. 지방에서 열린 정신분석학 세미나에 참석한데다 주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누운 자세로 책을 보고 있었다.
“무슨 책인가요?”
“미술 서적입니다.”
그가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그림을 좋아하세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화가를 꿈꾸었습니다.”
“왜 사진작가로 바뀌었나요?”
“아마도…… 영혼의 꼴이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웠나보지요.”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이네요.”
나의 말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요.”
“제가 특전사 출신인 것, 모르시죠?”
“아, 그래요. 뜻밖이네요.”
“초등학교 삼학년 때였어요. 엄청나게 큰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낙하산을 넋을 잃고 본 적이 있어요. 사람이 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거든요. 그게 특전사 고공강하 훈련이었어요.”
“그래서 특전사로 가셨군요.”
“네.”
“김세진이 새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희망이죠.”
“아름다운 희망이군요.”
“무서운 희망이기도 하지요.”
“왜요?”
“불길을 견뎌야 하니까요.”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지요. 질문거리가 생겼으니까요.”
“다행이군요.”
그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음이 표정에서 느껴졌다.
“그날 박선생 눈앞에 나타난 이는 누구였습니까?”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불길을 견디는 존재라고 할까요……”
“김세진이라는 뜻인가요?”
“불길을 견디는 이는 그분만이 아닙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길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길을 견디는 존재 앞에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지요.”
그가 변신했던 영화 속 증언자가 떠올랐다.
“불길이라는 말을 꼭 한 가지 뜻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지요. 인간은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에 뛰어난 전문가라고. 불길을 진실로 바꾸어도 되지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바꾸어도 되고요.”
“그날 박선생 앞에 나타난 이는 진실을 견디는 존재이기도 하군요.”
“그런 존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닐까요?”
“무슨 뜻인지요?”
“사람에게 일상적 자아만이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일상적 자아보다 더 순수하고 깊은 자아가 있지요. 일상적 자아가 진실을 싫어하고 끔찍해한다면, 다른 자아는 진실을 품지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양심 같은 것이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박선생의 양심이 어떤 연유로 불길을 견디는 존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물어도 될까요?”
“선생님이 그렇게 질문하시니 고흐가 생각나네요.”
공허해 보이던 그의 눈이 고흐를 말할 때 잠시 빛났다.
“고흐가 동료 화가인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최근에 그린 풍경화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고흐는 그 풍경화를 언덕 위에서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풍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흐가 단순히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았기 때문에 새의 시선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저는 고흐가 새의 감각으로 풍경을 보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새의 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새의 영혼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고흐의 그 풍경화를 들여다보면서 새의 감각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감각은 어머니 몸속에서 형성됩니다. 양수의 아늑한 촉감 속에서, 어머니의 움직임이 빚는 율동에 싸여 먼 우주공간에서 들려오는 듯한 어머니 몸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 순수한 감각을 깊이 꿈꾸면 새의 감각에 닿을 수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복도에서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렸다가 조용해졌다.
“인간의 몸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불완전한 움직임의 집적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일상이 불완전한 움직임으로 가득차 있을 수밖에 없지요. 춤이 아름다운 것은 불완전한 움직임을 넘어서려는 열망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춤의 궁극은 새의 비상입니다. 여기에서 저는 고흐를 떠올렸습니다. 고흐가 새의 시선으로 풍경을 보는 순간 그의 영혼이 새의 영혼으로 변화하면서 그의 몸 역시 완전한 움직임의 집적체로 변화했을 것입니다.”
그의 눈은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했다.
“전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불길 속에서.”
불길이라는 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어떤 불길이었습니까?”
“허구를 현실로 만들고 현실을 허구로 만든, 그리하여 카메라의 무게와 죄의 무게를 순식간에 등가로 만들어버린 불길이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추위를 느끼는 듯 두 팔을 옆구리에 붙였다. 핏기 잃은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는데,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불길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을 수 없을까요?”
조심스러운 나의 청에 그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눈은 빛을 잃고 움푹 들어가 있었다.
“죄송하지만 쉬어야겠습니다. 갑자기 견디기 힘든 피로가 몰려오네요.”
“그렇게 보이는군요. 저에게 부탁할 일은 없습니까?”
“네.”
“그럼 푹 쉬세요.”
“전 선생님께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요?”
“제가 갖고 싶었던 것을 주셨으니까요.”
“제가 뭘 주었나요?”
“희망입니다.”
목소리가 겨우 들렸다.
“제가 무슨 희망을 주었는지 모르겠군요.”
“언젠가…… 아시게……”
기력이 없는지 더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6
박민우가 사라진 것은 다음날이었다. 간호사가 그 사실을 안 것은 오후 세시 무렵이었다. 사라졌다는 것은 그가 근육 마비에서 벗어났음을 뜻했다. 퇴원 수속을 하지 않았고, 옷, 가방 등 외출에 필요한 것들 외에는 소지품이 병실에 그대로 있었다. 잠시 외출한 듯이 보였으나 병원측에 알리지 않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근육 마비가 갑자기 풀린 것도 의외였다. 그의 휴대폰 전원은 꺼져 있었다.
오후 여섯시 조금 못 돼 연락을 받고 병원에 온 박민우의 여동생 박윤서는 오빠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오는 길에 보광동 집에 들렀으나 그가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고 했다. 박민우보다 다섯 살 아래인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집에서 양친이 돌아가신 후에도 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박윤서가 그와 친분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누구도 박민우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사이 나는 그의 집과 휴대폰으로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어딜 갔는지, 짚이는 데가 없나요?”
“생각나는 데가 없어요.”
그녀는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의 근육이 왜 마비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어요.”
“이상한 점은 없었던가요? 갑자기 달라졌다든가……”
“저에게 오빠는 늘 이상했어요.”
목소리가 침울했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영화 아시죠?”
“어떤 영화인데요?”
“80년대 김세진, 이재호 분신 사건을 소재로 한…… 그 사건을 기억하는 증언자들이 나와……”
“아, 그 영화요.”
“박선생이 함께 봤다고 하던데요.”
“그 영화를 오빠와 함께 봤다구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기억이 안 나요?”
“네.”
“박선생이 불과 관련하여 충격받은 일이 있나요?”
“불이라면……”
그녀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사소한 것 이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요.”
“사소한 것, 이야기해보시죠.”
“별일이 아닌 것이라……”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머뭇거렸다.
“괜찮아요. 얘기해보세요.”
“제가 동시녹음 기사이거든요. 영화 촬영할 때 소리를 담는……”
“아, 알아요. 재밌는 일을 하시네요.”
여동생이 영화와 관련한 일을 한다고 했던 박민우의 말이 떠올랐다.
“오빤 제가 채집한 소리를 즐겨 들었어요. 그래서 채집한 것들 가운데 오빠가 좋아하는 소리를 종종 들려주곤 했어요.”
그녀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어렸고, 흐릿한 눈동자에 빛이 모였다.
“어떤 소리들을 좋아했나요?”
“자연의 소리는 다 좋아했어요.”
“새소리도 좋아했나요?”
“제일 좋아하는 소리였어요. 오빠의 영상촬영 카메라 안에는 새밖에 없을 걸요?”
“박선생이 영상촬영도 했나요?”
“새를 찾으러 다닐 때는 영상촬영 카메라를 꼭 갖고 갔어요.”
“음, 그랬군요.”
“몇 달 전 시골 외딴집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채집한 소리를 오빠와 함께 들은 적이 있었어요. 자작자작 나무 타는 소리가 나는데 오빠의 모습이 이상했어요. 입을 꽉 다물고 맞은편 벽을 뚫어져라 보는 거예요. 몹시 긴장한 표정이었어요.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도 오빤 듣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하도 이상해 오빠 왜 그래? 하면서 팔을 잡고 흔들었어요. 오빤 흠칫 놀라며 절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어요. 그러고는 어젯밤 잠을 못 자 피곤했던 모양이라고 하면서 방을 나갔어요.”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후로 오빤 그날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어요. 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애썼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오빤 어딜 갔을까요? 어딜 갔기에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걸까요?”
그녀는 중얼거리듯이 말하며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7
박민우가 발견된 것은 그가 사라진 지 이틀 만이었다. 그날 오전 일곱시 조금 넘어 용산구 한강로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 시티파크 앞 도로를 걷던 주민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보았다. 박민우였다. 그가 떨어진 곳은 도로 너머 잡풀로 덮인 공터였다. 내가 놀란 것은 사십이층에서 떨어졌음에도 그의 시신이 믿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다는 점과,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흰 운동화를 보는 순간 김세진이 여성 증언자의 운동화를 보면서 했다는 말과 함께, 고흐와 새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가 지은 표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투신 장소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떨어진 공터는 2009년 1월 20일 새벽, 재개발 강행에 반대하며 용산4구역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항거하던 철거민들과 진압경찰 간의 충돌과정에서 망루에 불이 나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관 한 명이 사망한 용산 참사 현장 부근이었다. 김세진의 죽음 공간과 용산 참사의 죽음 공간 모두 불과 연관이 있었다.
여기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의문이 박민우와 용산 참사의 관계였다. 용산 참사의 무엇이 그를 카메라의 무게가 죄의 무게가 되는 세계 속으로 밀어넣어 자아의 분리에까지 이르게 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의문을 나는 풀어야 했다. 내가 그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그의 말이 가시처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박윤서는 나의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면서 오빠에게서 용산 참사와 관련된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박민우와 특별하게 가까운 사람들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세 명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나는 그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와 박민우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그의 죽음을 알린 후 도움을 청했다. 세 사람 모두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에서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그가 윤기훈이었다. 박윤서의 말에 따르면 경찰관인 그는 박민우와 특전사 동기라고 했다.
윤기훈은 나의 기대대로 장례식에 참석했다. 박민우의 육신이 화장로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그가 진정되었을 때쯤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며 신분을 밝혔다. 그는 어색한 동작으로 내 손을 잡았다.
“경찰관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박선생의 투신 장소가 용산 참사 현장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윤선생이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계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선을 아래에 둔 채 침묵했다. 잠시 후 그가 시선을 들었는데,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8
박민우의 뼛가루는 경기도 가평의 아늑한 산자락에 서 있는 산벚나무 아래 묻혔다. 박민우가 새를 촬영하러 자주 왔던 곳이라 했다. 장례 버스가 가평을 떠나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먼저 내린 윤기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주 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조용하게 보이는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말없이 소주를 마시던 그가 입을 연 것은 세번째 소주병을 따면서였다.
“제가 민우와 특전사 동기인 것, 아시죠?”
“네.”
“제가 전역하고 경찰특공대에 지원한 후로 한동안 민우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민우를 다시 만난 건 2006년 봄이었습니다. 민우의 사진 전시회에 제가 갔죠. 그후 우린 시간이 맞으면 카메라를 들고 새를 찾아 시골 숲을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카메라에 좀 취미가 있거든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금방 사라졌다.
“철거민들이 용산4지구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하고 있을 때 저는 경찰특공대 전술팀장이었습니다. 농성 진압 명령을 받은 것은 참사 하루 전인 1월 19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세시에 출동하여 삼십 분 후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민우에게 전화한 것은 다섯시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그 새벽에 전화한 것은 채증요원의 영상촬영 카메라가 무슨 까닭인지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전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데 카메라가 그런 상태이니 민우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우의 집이 거기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으니……”
그는 말끝을 흐리며 소주병을 잡았다.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민우에게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지금 당장 영상촬영 카메라를 갖고 용산4구역 농성 현장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민우는 삼십 분도 채 안 돼 왔더군요. 다행히 그때까지 작전이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카메라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자 민우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이 카메라가 네 눈에는 아무나 사용하는 물건으로 보이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제가 당황해하자 민우는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너도 알잖아? 하더군요. 제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뭐가 들어 있느냐고 물었더니 새의 영혼, 하고 민우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 해 전 가을 어느 날, 아침 일찍 새를 찍으려고 산간 마을에 묵은 적이 있습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걷고 있는데 민우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이슬에 젖은 풀 위에 죽어 있는 새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민우가 살며시 새를 만지더니 몸이 따뜻하다고 속삭이고는 촬영을 시작하더군요. 새와 함께 푸르스름한 새벽빛, 바람에 흔들리는 풀, 그뒤의 들판, 그 속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소리들이 민우의 카메라 속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숲에 들어가 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민우가 자신의 카메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 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하자 새의 영혼, 하고 속삭이듯 말하더군요.”
윤기훈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제가 낭패감으로 어쩔 줄 몰라하자 민우가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뭐냐고 했더니 자신이 채증요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채증요원은 경찰청 정보국 소속입니다. 민간인은 채증할 수 없다는 나의 말에 민우는 그건 알지만 이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하면서, 직속상관의 허락을 얻는 데 자신이 특전사 출신이라는 사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우의 말이 맞았습니다. 상황을 보고하면서 카메라 주인이 특전사 동기라고 덧붙이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직속상관이 표정을 풀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더군요. 그도 특전사 출신이거든요. 그렇게 해서 민우는 나중에 대원들이 지옥이라고 표현한 남일당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경찰특공대는 남일당으로 진입할 때 층별 내부 도면조차 보지 못했다고 했다. 망루 구조도 몰랐고, 망루 안에 화염병과 시너 등 위험물질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마치 무엇에 쫓기듯이 다급하게 밀어붙인 작전이었습니다.
그렇게 밀어붙이다보니 질주를 언제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철거민들의 마지막 거점인 망루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린 것은 질주의 결과였습니다. 대원들은 망루에 두 번 진입했습니다. 첫번째 진입은 여섯시 오십분에 있었습니다. 사층 구조의 망루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철거민들은 사층에서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불이 난 것은 일곱시 육분이었습니다. 소화기로 간신히 끈 후 망루 반대편 옥상으로 퇴각했습니다. 그때가 일곱시 팔분이었습니다. 두번째 진입은 십 분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1차 진입시 망루 안에 다량의 유증기가 발생한 것을 대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진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농성 장소에 인화물이 있으면 소진된 후 진입해야 한다고 경찰 진압작전 지침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입했고, 잠시 후 돌이킬 수 없는 화재가 난 것입니다.”
그의 얼굴은 회한에 잠겨 있었다.
“저는 거기까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고, 대원들은 명령을 수행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민우가 그런 지옥 속으로 들어간 것은 지금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채증요원 한 명이 빠진다고 작전이 어떻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민우에게 전화한 건 빈 데가 보이면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제 성격 탓이었습니다.”
“그건 윤선생 탓만은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윤기훈은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에 대한 민우의 특별한 애정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민우에게 카메라는 아무에게나 빌려주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민우만이 느끼는 생명체였으니까요. 민우가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한 것은 그 상황에서 그것이 나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기훈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흘렀다.
“망루에 화재가 났을 때 민우는 두 번 다 망루 안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저는 너무 화가 나 그 위험한 곳을 왜 두 번씩이나 들어갔느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거기에서 민우가 무엇을 보았는지 전 모릅니다. 제가 물었을 때 민우는 침묵했습니다. 침묵이 괴롭게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민우가 말하더군요. 자신이 본 모든 것들이 카메라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하지만 카메라는 압수당했고, 민우의 존재는 남일당에서 지워졌습니다. 카메라를 빼앗긴 후 움푹 꺼진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민우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윤기훈은 스르르 눈을 감더니 잠시 후 떴다.
“그날 이후 우린 침묵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둘이 만나면 그 사건이 떠오르면서 말이 사라져버리니까요. 새 촬영을 가지 않게 되면서 만나는 일이 뜸해졌습니다. 간혹 전화하면 잘 지낸다고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을 흘려보냈지요. 시간이 가면 기억도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생각하면서. 2010년 1월이었습니다. 민우와 오랜만에 만나 소주를 마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참사가 난 그해 가을 제가 증인신문을 받을 때 민우가 법정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그날 무척 힘들었습니다. 참사 현장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나 냄새만 맡아도 괴로운데 그걸 헤집고 들어가야 하니…… 게다가 기억들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잘 잡히지도 않는 기억의 조각들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했습니다. 수치심도 절 괴롭혔습니다. 참사 현장에서 제가 한 행동과 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수치심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었습니다.”
수치심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저는 민우 앞에서 증인신문을 받으면서 겪은 괴로움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했습니다. 자의식의 발로였죠. 민우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했는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날 법정에서 철거민측 변호사가 한 이야기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경찰이 제출한 채증 요원들의 동영상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대인 두번째 화재 직전의 영상들이 다 빠져 있다고 말했거든요. 침묵하던 민우가 제 빈 잔에 술을 따르면서 거기에 가봤어? 하고 물었습니다. 거기라니? 제가 되묻자 민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습니다. 거기를 모르는 제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남일당. 민우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재빠르게 말하더군요. 아, 거기.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보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난 종종 갔어.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왜? 궁금해서. 무엇이 궁금한데? 흔적이. 무슨 흔적? 시간의 흔적.
“시간의 흔적이라고 말할 때 목소리가 더 낮아졌습니다. 그 말을 하고는 다시 침묵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침묵이 꽤 길었습니다. 한참 후 민우는 어제도 갔다고 말했습니다. 표정이 무척 슬퍼 보였습니다.”
어제? 응. 어땠어? 철제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지만 모퉁이 한쪽이 열려 있었어. 조심조심 들어갔지. 텅 비어 있는 건물 안이 낯설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곳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거든.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구? 그랬어. 어떤 사람들이? 우선 유가족들이 있었어. 분향소가 거기 있었으니까. 신부와 수녀들이 있었어. 매일 저녁 일곱시 남일당 앞에서 미사가 열렸으니까. 화가들이 있었어. 벽에 영정을 그리고, 걸개그림 작업을 하고, 추모탑을 만들고, 작품 전시회를 하고, 미술굿을 했으니까. 촛불을 든 사람들과 꽃을 든 사람들도 있었어. 그들은 쉼 없이 찾아왔어. 추모하기 위해,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화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그런데 어젠 아무도 없었어. 장례식을 치렀거든. 장례식을 치른 날,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수백 개의 만장들이 새의 날개처럼 나부꼈어.
“저는 그분들의 장례식 모습을 TV에서 보았습니다. 355일 만에 치러진 장례식이더군요. 마음이 많이 착잡했습니다. 그날 저녁 전 신자가 아님에도 성당을 찾아 무릎 꿇고 용서를 간구했습니다. 그럴 자격이 저에게 있는지 모르지만……”
장례식이 끝나자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남일당이 처음으로 텅 비게 된 거지. 난 적막한 남일당 속으로 가만히 들어갔어. 삼층으로 올라가 검게 그을린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데 망치로 쇠붙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어. 여기 도끼 있어 도끼! 바로 여기…… 쾅쾅쾅…… 귀를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어. 꿈에서도 듣는 소리니까. 검은 옷들의 아우성과 함께. 그래,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지. 그들 속에 나도 있었어. 내가 망루 안으로 들어간 것은 카메라가 원했기 때문이야. 난 단지 카메라를 따라 들어갔을 뿐이지. 카메라가 원하는 것을 거부할 힘이 나에겐 없었어. 그 카메라를 잃어버렸어. 카메라를 따라간 나도 잃어버린 거지. 그가 어디로 갔는지 난 몰라. 가끔씩 나타나기는 해. 새의 영혼이 담긴 카메라를 들고.
“저는 민우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괴로워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민우의 입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그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놀랄 이유가 없다고 애써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스스로 위로하며. 그런데……”
윤기훈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9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윤기훈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시계를 보니 아홉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병원 앞에서 내렸다. 병동 편의점에서 산 원두커피를 들고 박민우가 있던 병실로 올라갔다. 협탁 위에 책 두 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책 곁에 놓인 만년필이 시선에 들어왔다. 오래된 만년필이었다. 협탁 서랍을 조심스레 열었다. 노트를 본 것은 두번째 서랍에서였다.

난 그를 느낀다. 왜냐하면 나의 나니까. 왜 그가 나타나는 걸까? 나의 나라고 해서 꼭 나타나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를 그리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왜 그를 그리워할까? 그가 새의 영혼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아는 것은 나를 새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새의 시선이 몸에 닿는 것을 느낀다.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오늘도 나타났다. 의사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의 기척을 느꼈다. 애써 모른 척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가 반가우면서도 두렵다. 왜 두려운가? 새의 시선으로 나를 보기 때문이다. 새의 시선은 사물과 풍경을 꿰뚫는다. 그 투명한 시선이 나를 환히 드러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몸이 쇳덩이처럼 무거워져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있는 것에 대해 의사는 내가 짊어지고 있는 죄의 무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의사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진실이 아니다. 내가 문득문득 쇳덩이 같은 죄의 무게에 희열을 느끼는 것은 그 무게가 나로 하여금 비상의 지점으로 올라갈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이 희열을 나는 누런 피부 밑에 숨기고 있다.

노트를 서랍에 다시 넣고 불을 끈 후 병실을 나왔다. 마음이 공허하고, 아팠다. 이런 상태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가고 싶은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병원을 나와 방향도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거기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든 것은 귓속에서 열쇠 돌리는 듯한 소리가 나고 있을 때였다. 피로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종종 들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거기’가 구체적인 어떤 장소인지, 내 안의 누군가가 만든 상상의 장소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어디론가 쉼 없이 걸었다. 마주 오던 행인과 부딪치기도 했고, 아스팔트 턱에 걸려 넘어질 뻔도 했다. 걸음을 멈춘 곳은 작은 놀이터 앞이었다. 나무가 있었고, 미끄럼틀과 그네가 보였다. 얼마나 걸었는지,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오고 나오고 있었다. 광활한 허공 속에서 달은 초현실적인 색채를 띠며 어디론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달의 뒤쪽, 그 허공의 심연에서 가물거리는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박민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사십이층 아파트 옥상에서 나무처럼 서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몹시 추웠다. 기상청은 하루 전 한파 특보를 내렸다. 살을 에는 추위였다. 박민우는 완전한 움직임이 주는 기쁨에 취해 추위를 잊고 있었을까, 아니면 누런 피부 밑에 숨겼던 두려움에 싸여 오들오들 떨고 있었을까. 불현듯 나 자신이 낯설어졌다. 내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우주공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를 낯설게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낯선 대상이 되어버린 그전의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강렬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검은 물처럼 일렁이는 의문 속에서 나는 내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새의 시선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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