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울산광역시 감사관

한 사람이 생애 동안 겪은 일들 중 어떤 경험과 결정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과 실적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사람들의 지난 일상에 대해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기준으로 현미경 같은 평가를 거듭하고 있다.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정부인재를 뽑는 일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기업경영의 부실을 따지는 법적인 문제에 이르기 까지  한 개인의 과거 행동과 판단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평가하는 일에 온 국민이 귀를 기울이게 됐다.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몇 번 겪지 않는 재산의 거래과정이나 자녀의 양육과정과 같은 지극히 사소한 영역에서의 실수를 바탕으로 개인의 인격전체를 가늠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판단과 태도를 통하여 공적분야의 능력을 가늠하고자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실의 원인이 그 당시 사회의 관행과 가족관계 속에서의 공적 판단 유보 등과 같은 보통사람의 실수라고 변명하며 이해를 구한다. 아마 우리는 개인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맞서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남다른 의지를 지도자에서서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국가적 의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평범성을 넘어서는 공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자기 개인의 안전이나 미래를 국가의 이익보다 앞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과거의 판단이나 행동도 평범한 사람들 보다 좀 더 윤리적이었으면 한다. 그래야 국가의 권위를 신뢰하고 세금을 내고 가족을 군대에 보내는 일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정당한 일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의 기대가 번번이 좌절당하는 것을 보면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거리가 우수한 자질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쉽게 좁혀지지는 않는 인간 본연의 한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문제를 학문의 영역에서 고민한 학자도 있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유명한 현대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영역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철저히 구분하여 개인의 우수성은 사적인 영역보다는 공적인 활동을 통해서 발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과 가족이 존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사적인 영역, 즉 먹고 사는 문제는 지극히 은밀하고 동물적인 필연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능한 숨겨둬야 하고 가능한 적은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우수한 능력과 노력이 이러한 사적인 영역을 확장하는데 바쳐지는 것은 인간적 자질이 가장 나쁘게 발현되는 경우라고 보았다. 

사적이라는 의미의 영어 private의 어원인 라틴어 privatus는 원래 ‘결여하고 있다’ ‘박탈당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른바 공공성 또는 공적 성격이 결여되고 박탈된 영역이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언어 속에서 인간 본질적인 고민을 발견할 수 있지만 한나 아렌트가 우려하는 가장 안타까운 사례를 우리의 지도자들에게서 너무 쉽게 발견해야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진 국가 지도자들이 공적인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과거 일상을 드러내면서 곤혹스러워하지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그 위에 묻어있는 삶의 흔적들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 보통사람이 주위에서 늘어나고 있다. 최근 퇴직을 앞둔 동료로부터 보통사람의 평범한 이야기로 꾸며진 자서전 한권을 받아들고 그 용기에 감탄했다. 그리고 물어 보았다. 자서전을 쓰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글쓰기 훈련이 부족한 보통 사람들이 한권 분량의 원고를 쓰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대답을 짐작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의외의 답변이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이 세상에 뿌려놓은 더러는 부질없고 부끄러운 욕망의 흔적들을 끌어 모으고, 그 과정에서 그 욕망의 민낯이 무엇이었던가를 새삼 발견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젊은 날의 고뇌와 욕구를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생애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자신의 부끄러운 흔적에 대해 조금은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서문에 이렇게 썼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두 딸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추모일이 돌아오면 살아서도 좋아하지 않았던 전이나 떡으로 제사상을 차리지 말고 함께 모여 자서전 한 꼭지씩을 돌아가며 소리 내 읽어 주길 바란다”고. 이렇게 보통사람들이 삶을 스스로 평가하고 그 것을 책으로 세상에 내어놓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자서전을 써야 한다. 지금 이 순간 작은 욕망이 나를 이기면 언젠가 자서전을 쓸 때 몹시 고통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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