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6월 19일 오후 5시 40분 경남 양산(현 부산 기장군)에서 태어났다. 2015년 7월, 2년뒤 안락사 결정으로 2017년 6월 19일 0시에 임종, 40년 일생을 마감했다. 한국 원자력 발전소의 맏형 격인 고리원전 1호기의 탄생은 미국 에디슨 전력 시슬러 사장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우라늄 1g이 석탄 3t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1971년 착공 당시 대한민국 총생산액(3조1,200억원)의 5%에 이르는 1,560억원을 투입해야 했다.

고리는 그때만 해도 오지(奧地)였다. 고리 1호 건설 현장 사무소는 시골 여인숙에 간판을 걸어야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반대도 만만찮았다. 그린벨트로 묶여 개발이 제한되고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물고기를 더 잡을 수 없게 됐다며 연일 반대 시위가 벌어져 엄청난 산통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1973년 세계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부친 제1차 오일쇼크는 호재로 작용했다. 1970년 중반 중화학공업이 부흥하면서 고리 1호기의 가치는 더 올라갔다. 

애초 설계수명은 2007년 6월 19일 0시까지였으나 수명을 10년 연장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1년 규모 8.0에 견디게 내진설계가 된 후쿠시마 원전이 쓰나미에 무릎을 꿇고 방사능을 방출하자 고리 1호기는 더 이상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고리 1호기 안락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환경단체와 정치권에서는 탈(脫)원전 목소리가 크다. 이들에게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는 탈원전 운동의 첫 결실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과오없이 잘 운영되어 왔다. 고리 1호기의 안정성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사례는 미국, 스위스 등의 선진국에 많이 있다. 스위스 베츠나우 원전 1, 2호기는 고리 1호기와 유사한 웨스팅하우스 원전으로 각각 1969, 1971년에 상업운전을 시작해 60년 간 가동할 예정으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위험하다면 이들은 오래 전에 퇴출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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