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울타리 들여다보며
“우리 아빠다.”
 자랑했었는데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떠나셨다.
 아빠 그림자를 바라보며
 사무치듯
 발버둥하며 울었다.
 노을도 발갛게 울어주었다.
 6.25 전쟁은
 나무울타리 들여다보며
“우리 아빠다.”
 가끔씩 했던
 그 자랑마저 빼앗아갔다.

 

◆ 詩이야기 :    다섯 살 때 6·25가 터졌다. 당시 아버지는 다른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 가끔 오셨기 때문에 “아빠도 없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아버지가 오셨다. 친구들과 나무 울타리를 들여다보며 아빠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떠나셨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을 치는데 노을이 그렇게 붉을 수가 없었다. 영원한 이별을 예감했는지 내 유년은 온통 노을빛 울음뿐이다. 전쟁이 터지자 아버지는 행방불명 되셨다. 행방이 묘연해지니까 동거하던 할머니(계조모)는 재산을 정리하고 삼촌 가족과 함께 우리 집을 떠나버렸다. 빈곤의 전쟁까지 겪으며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쓰라린 기억들이 문학이 되어 돌아오고 있으니 씁쓸해진다. 전쟁은 낭만일 수 없다.
◆ 약력 : 1946년 경남 사천 출생인 박 일 시인은 1979년 <아동문예> 동시 천료, 계몽사아동문학상·한국아동문학상·이주홍문학상 등을 수상. 동시집 「주름살 웃음」 등, 문학저서 「동시문학 창작과 그 세계」등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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