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치(癡)’ ‘어리석은 매(呆)’
 인간은 기억 까먹는 ‘망각의 동물’
 가족·친구 자주보고 사회활동을

 시험은 망각줄이는 효과적 수단
 뇌 긴장해 기억·망각사이서 사투
‘치매 국가책임제’ 가족부담 줄여야

 

김병길 주필

‘치매’는 ‘어리석은 치(癡)’와 ‘어리석은 매(呆)’를 말한다. 특정 질병으로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는 환자를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사람’으로 호칭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주장에 이해가 간다. ‘치매’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일본이지만 지금은 치매를 ‘인지장애(인지증)’로 치매환자는 ‘인지장애 환자’ 또는 ‘인지증 환자’로 부르고 있다. 

노인에게 치매는 암보다 무서운 질병이라 여생동안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현재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지금 40대가 70대가 되는 2050년이면 전체 노인의 15%가 치매환자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양에서는 사랑하고 정들었던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의 의미가 ‘광기(狂氣)’라는 뜻에서 왔다. 사람의 인지 기능과 고등정신 기능이 감퇴됨으로써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고 억압된 감정 등이 자주 표출됨에 따라 대처 방안이 없는 가족들의 스트레스가 매우 높아지게 된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정의 가장 큰 애로는 실종이다. 집을 나간 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하루 평균 27명의 치매 노인이 집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경찰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5년 동안 길잃은 치매노인이 무려 30% 가까이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의 ‘치매 국가책임제’는 국가가 치매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고 치매 문제를 해결한다는게 핵심이다. 

학대 받는 노인 4명중 1명은 치매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기관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치매환자에 대한 인권유린도 막아야 한다. 치매국가 책임제로 수혜자가 급증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에 빨간불이 켜지는 만큼 보험료 인상의 불가피성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게 중요하며, 아직 완치법이 없기 때문에 예방만이 최선이다.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는 정상인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각각 1.5배∼1.6배 높다고 한다. 비만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치매를 예방하려면 평소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3가지 지표는 정기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평소 가족, 친구들과 자주 만나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오랫 동안 하는 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조기 발견도 중요하다. 완치는 어렵지만 조기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그렇지 않은 치매환자보다 건강한 상태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보건소에서 치매 조기 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제주대 줄기세포 연구센터 교수팀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치매 증상을 보이도록 만든 ‘치매 복제 돼지 제누피그’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냈다. 치매를 일으키는 3개의 유전자를 토종 제주 흑돼지 세포에 적용시킨 다음 체세포 복제기술을 활용해 만들어 낸 치매 복제 돼지는 치매 치료제 개발과 연구에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흐릿해진다. 외운 단어는 10분 후 42%, 한 시간 후 50%, 하루가 지나면 67%, 한 달이 지나면 80%를 까먹는다고 한다. ‘기억은 시간에 반비례 한다’는 망각곡선(Forgetting curve) 이론이다. 이를 주장한 독일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1850∼1909)는 망각을 막으려면 반복학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험은 망각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뇌가 바짝 긴장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사투를 벌인다. 시험 공부는 복습의 연속이다. 복습은 ‘느림보 거북이’다. 고통스럽고 재미가 없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학생들은 반복학습을 하지 않는다. 망각 속도가 빨라진다. 그런 상태가 고착화되면 실력이 평준화(平準化)된다. 교육적으로 가장 경계하는 ‘시험 없는 편한 교실’의 역설이다.

치매환자는 인지능력과 신체 활동 능력이 저하되어 사회적 활동이나 자기 주장을 못한다. 치매 용어가 바뀌지 않고 계속 사용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치매 부담의 핵심은 의료비 보다는 수발이다. 이 때문에 가족이 환자와 동반자살하는 ‘간병 살인’이 끊이질 않는다.

장례식장에 가면 “노망들기 전에 잘 가셨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100세 시대에 불경(不敬)의 말씀이지만 국정과제로까지 떠오른 치매의 무서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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