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흔적·멋 살린 ‘쉼표’ 같은 공간

70∼80년대 주택가 골목 ‘빈티지한 카페’ 속속 등장
옥상·마당 다양한 공간 활용… 내집같은 안락함 선사

1970년대 주택의 오래된 천장을 그대로 놔두고 건물의 골조를 살려낸 주택개조 공간은 편안함과 안락함이 묻어난다. 이처럼 집이란 존재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과 시간이 머물다 가는 곳이다.

‘할머니 장독대가 놓여있던 마당, 여름에 시원했던 나무 바닥, 아버지 퇴근을 알렸던 대문 소리’. 위아래, 옆집 오가며 살았던 1970~80년대 그 시절 주택가 풍경이다. 이후 주거공간에 변화가 생기면서 단독주택을 떠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런데 최근 울산 곳곳에서 연식이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새롭게 만든 공간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다. 쾌쾌한 먼지는 걷어내고, 아련한 추억은 고스란히 남겨놓는 ‘주택개조’ 열풍이다. 

◆무한변신 주택으로의 회귀(回歸)

1980년대 아파트가 본격 등장하면서 단독주택은 희망 주거공간에서 밀려났다. 주택에 비해 깔끔하고 보안이 좋은 아파트에 이어 각종 상가들이 한 건물에 있어 편리한 주상복합 공간도 생겨났다. 자연스레 주택을 찾는 이들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단독주택의 인기가 다시 올라오고 있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내려다보는 주택의 낮은 풍경은 멋과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23일 주택·건축업계에 따르면 일반 매장에서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까지 팔색조 변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독주택의 수요는 물론 몸값 또한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는 무엇보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게 묻어있는 옛 주거공간을 활용, 개성 넘치는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층의 관심 및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요즘 ‘휘게(Hygge)’나 ‘욜로(YOLO)’ 등과 같이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자유롭고 안락한 분위기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일맥상통한다.

이밖에도 주택의 장점인 옥상과 마당 등의 다양한 공간 활용, 여러 방면에 걸친 구조변경 등도 한 몫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창틀.

◆사람과 시간이 머물다 간 곳

단독주택을 개조한 빈티지한 멋의 카페들이 단연 인기를 끌고 있다. 
조용하고 매력적인 공간에서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길 수 있어 울산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남구 신정동에 위치한 1970년대 주택 건물. 요즘 이곳에는 SNS와 입소문을 통해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조용한 재즈곡과 가요가 흘러나온다.  이 벽돌집이 지어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만큼이나 찾아오는 손님들도 특별하다. 

어느 날에는 “여기 옛날에 제가 태어난 집이에요! 이렇게 변하다니 정말 신기해요”, “어릴 때 마당 뒤쪽에 강아지 키웠던 집인데”하고 옛 주인들이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년시절 뛰어놀았던 마당에 신식 테이블이 깔리고, 희로애락 가득했던 자신의 집 거실은 손님들로 가득 차는 명소가 된 건 흔치 않은 경험일 것이다.

주택개조 카페 ‘코지누크(Cozynook)’ 이용희 대표는 “원래 이 공간의 주인이었던 분들이 방문해서 이야기 해줄 때 마다 제가 몰랐던 옛 이야기를 알게 돼 반가운 마음이다”고 말했다.

주택 개조를 통해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들은 동네 사이마다 숨어 있어 골목 상권을 살린다.

특히, 옛날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린 게 포인트다. 누군가의 부엌과 안방을 분리했을 콘크리트 벽을 가운데만 뚫어낸 인테리어는 이 곳의 본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또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원목 천장은 집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을 상기시켜준다. 아울러 자유로움이 허락되는 주택개조 공간은 지역 작가들의 전시 레지던스로도 탁월하다. 계단과 창틀에 무심히 놓여 소품인 듯 펼쳐진 그림들은 손님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이용희 대표는 “무엇보다 주택은 정형화된 틀이 없으니깐 식물이 성장하기 위한 햇빛도 잘 들어오고, 편안함 그 자체”라며 “지나간 세월을 가진 있는 그대로인 건물로, 올드함과 클래식함이 함께 공존하는 시간의 공간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맛집·멋집으로… 한적한 골목의 화려한 부활

자유로움이 허락되는 주택개조 공간은 지역 작가들의 전시 레지던스로도 탁월하다.

◆세월이 흘러도 집이 최고

집은 커피, 밥, 술 등 종목을 따지지 않고 모든 걸 품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주(住)와 집(宅),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지은 곳’이니 말이다.

이로 인해 ‘집이 가장 편하다’, ‘내 집이 최고다’라는 말이 나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꿈에도 그리운 맛일 터.

이처럼 맛있는 음식 냄새가 폴폴 나는 식당으로 변신한 주택개조 공간들도 각광받고 있다.
수십 년에 지어진 중구 양사초 인근 주택은 최근 술과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개조됐다. 창고와 같이 좁은 공간이지만 옥상에 별채도 새롭게 리모델링했다.

주변 건물들과 오래토록 한 곳에 자리한 공간답게 튀지 않아, 길을 쭉 걸어 내려오며 찾는 재미도 있다.

특히, 한 개의 공간을 통과하면 또 다른 분위기의 별채들이 따로 마련돼 있어 드라마 속 추억의 하숙집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시멘트 바닥은 발길이 많은 곳은 닳았고, 창문틀은 군데군데 긁히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멋이 한 가득이다. 무엇보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내려다보는 주택의 낮은 풍경은 멋과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다만, 여러 사람이 두루두루 모여 사는 주택가 특성상 이곳에서 ‘정숙’은 필수다.  

주택개조 식당 ‘너의 아파트’ 박성진 대표는 “바쁜 일상 속에서 다들 쉬고 싶어 하는데, 자신의 집처럼 편안하게 먹고 놀다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주위가 주택가다보니 큰 소리를 내지 못해 손님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그것도 이 공간이 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햇빛 잘 드는 창가 자리는 바깥 구경하기 좋다.

◆집이 바뀌니 골목이 살아난다

주택가는 차를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게 한정된 곳이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종료 멘트가 나오면 두 발로 걸어 찾아가야 한다. 

이처럼 주택 개조를 통해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들은 동네 분위기를 확 바꿔버린다. 지역의 맛집·멋집으로 소개되면 한적했던 골목길에 SNS 인증샷을 위해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주변 상점으로까지 발길이 이어진다.

이로 말미암아 잘 선택해서 적절하게 바꿔낸 주택 하나가 골목 상권을 살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활발한 문화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청년창업자들에게 주택개조는 가장 눈독 들이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라는 점을 알면 말이다.

울산의 한 건설 관련 대행업체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용도변경 허가 기준선도 완화되고, 실제 작업 비용도 이전보다 덜 든다”며 “공업탑로터리 인근뿐만 아니라 태화동, 성안동 등 골목상권이 점차 살아나면서 주택개조와 관련한 문의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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