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종길 HR컨설팅 대표

몇 해 전 아들이 병설유치원에 후보로 돼 있다가 어렵게 입학 한 적이 있다.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는 회사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넣고, 추첨을 했는데 당첨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후보1번이라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다. 개학을 얼마 앞둔 2월 어느 날 연락이 왔고, 그 유치원에 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어느덧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됐는데 문제가 생겼다. 초등학교는 내가 보내고 싶다고 아무 곳이나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히 병설유치원이 있는 그 학교에 진학하는 줄 알고 있다가  집근처로 배정받는다는 소식에 앞이 캄캄했다. 집근처 학교라지만 초등 1학년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혼자 집에 있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니던 병설유치원 선생님에게 사정을 말하니 선생님도 딱히 방법이 없다고 했다. 주변 지인들은 주소를 잠시 회사근처로 옮겼다가 입학 후 다시 집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어린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런 편법을 쓸 수는 없었다. 학교를 못 보내는 일이 있어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병설유치원에 다닌 그 학교로 입학시키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회사근처 맞벌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치원 입학 이후 5월에 있었던 운동회에서 경험한 초등학생들의 건강한 모습 때문에 그 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운동회 마지막 경기로 릴레이계주를 했었는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모습이 좋아 사진에 담은적이 있다. 그런데 마지막 주자 중 한명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좀 의아한 모습이었지만 이 학생을 뒤에서 밀고 있는 학생들 외에 나머지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필자가 보기엔 조금 인정 없다 생각 할 정도로 휠체어에 탄 학생을 무시하고 달렸다. 

하지만 결승선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그렇게 빠르게 달리던 주자들이 결승선에서 휠체어에 탄 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지막 결승선을 모두가 함께 통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적이 있었다.

이런 건강한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라면 우리아이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선 원래 배정 받은 학교가 학군이 괜찮은데 왜 굳이 시설도 낙후되고 학군도 안 좋은  학교를 가려고 하냐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울산에서도 흙으로 된 운동장을 가진  몇 안되는 교육시설이자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의 학교이며, 운동회 때 보여준 아이들의 섬김과 배려 그리고 열정은 우리아이가 꼭 배워야 하는 좋은 점이기에 내 기준에선 최고의 학군이 바로 이 학교였다. 집근처 학교 입학이 결정되고 사전모임이 있던 날 병설유치원에서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교장선생님 노력으로 교육청에 요청해 주소 변경 없이 학교를 바꿀 수 있었다. 

더 좋은 학군으로 옮기려 했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상적인 상향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루어진 것 같다.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것은 첫째, 대다수 국민들이 불편하고 어떨 때는 고통스럽지만 아주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둘째, 아이들의 섬김과 배려를 지금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요즘 정치권에선 장관후보자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착한위법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 심지어는 관행이었다는 터무니없는 말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다. 일반국민들이 관행이라며 법을 안 지킨다면 그런 나라에 법은 필요 없어 질것이고, 국가질서는 무너질 것이며, 착한 위법이 존재한다면 국회는 사라져야 하고 법보다 관행이 우선이라면 사법부도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이런 비도덕적이고 관행적 위법을 저지른 사람을 행정부에 기용한다면 행정부도 국민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협치를 주장하면서도 오직 자신들 주장만 하는 정치권은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결승점을 함께 통과한 아이들의 섬김과 배려에서 공동체가 전제가 된 협치를 배우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능력과 사상 이념을 가졌다고 해도 국민들의 안녕이라는 공통된 목적지를 향하려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고 남의 약점을 잡아서 안된다.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도덕적이고 위법적인 사람들을 묵인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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