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 때마다 정확한 날짜를 밝히지 않았지만 런던의 대화재때만은 예외였다. ‘20의 3배에 6을 더한 해에 런던은 불에 타 정의로운 자의 피를 요구하도다.’ 런던 대화재는 1666년에 일어났으며 노스트라다무스는 이탈리아식 표기법 을 써서 연대의 첫 두 숫자는 생략했다. 수백명의 희생자를 내고 화재보험을 보편화 시킨 런던 대화재는 1년전인 1665년 런던에 만연된 흑사병으로 저주받은 도시의 구세주로 일컬어 지기도 했다.

최소 78명의 사망자를 낸 6월 14일 런던 24층 그렌펠타워 아파트 화재 참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최악의 참사로 기록 됐다. 사망자 수만 해도 1985년 브래드퍼드 축구장 화재 사고 당시 사망자(56명)를 넘어섰다. 경찰은 며칠째 실종자 신원도 파악하지 못한 채 사망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애매한 발표만 반복 했다.

그렌펠타워 참사는 화재경보기 미작동, 스프링쿨러 미비 등 영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후진국형 인재(人災)였다. 1960년대 노동자 가족을 위해 지은 그렌펠은 당초 100년은 굳건히 버틸 수 있다고 했지만 이번 화재는 앙상한 골격만 남겼다. 최근 건물을 살리겠다고 수리했다지만 불에 타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안전을 보지 않고 포장에만 집중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불똥이 영국 정치권으로 옮아 붙고 부자동네 뒤로 서있는 까맣게 타버린 건물은 영국사회의 불평등과 무력한 정치의 상징이 됐다.

런던시민은 그렌펠 화재를 불지옥(inferno)이라 부른다. 단테의 신곡은 inferno로 시작한다. ‘거대한 화염도 사소한 불꽃에서 시작된다.’ 신곡의 유명한 구절처럼 시작은 사소했다. 그래서 문제는 사소한 불꽃이 건물을 순식간에 삼키는 화염이 된 까닭이다.

런던의 불지옥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도 비교된다. 하지만 세월호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세월호 침몰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갑작스러웠다면, 그렌펠 화재는 마치 단테의 지옥을 시험해 보려는 듯이 수많은 신호와 징후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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