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이 몹시 불편해 보였을 때에 ‘이혼을 앞둔 부부’에 비유된 적이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각각 정권을 잡았던 시기가 그랬다. 20세기 들어 동맹(同盟)이 국가와 지역 단위를 넘어 전 세계를 바꿀만한 위력을 갖게 되자, 그 성격을 규정하는 형용사가 붙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빅3’였던 미국·소련·영국 간의 동맹인데, 역사가 들은 이를 웅대한 동맹(Grand Alliance)’이라고 부른다.

1953년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탄생한 한·미 동맹은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고 동북아에서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핵심축(linchpin)’ 역할을 해왔지만 한·미 두나라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침이 있었다.

미국은 6·25때 3만6,000명이 넘는 장병이 희생됐고, 한국은 베트남전·걸프전·이라크전 등 2차대전 이후 미국이 벌인 주요전쟁에 모두 참전한 유일한 동맹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위대한 동맹국(Great Ally)’이라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방미중 ‘위대한 동맹’, ‘고마운 동맹’이라고 역설했다. 한·미 관계가 비교적 순탄했던 시기에는 동맹 앞에 거창한 형용사가 필요없었다. 공교롭게도 관계가 껄끄러워질 기미가 보일때마다 ‘최고의 동맹’이 아니면 ‘위대한 동맹’이라는 찬사가 등장하는 현실이 역설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를린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장애물 제거”라는 말로 반(反)사드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북한과의 ‘혈맹(血盟)’ 관계를 저 버릴수 없다”고 했다. 정상회담 자리에서 상대방의 주적(主敵)을 혈맹이라고 강조한 ‘프로토콜’은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중 양국은 정·경 분리 원칙에 입각해 엄청난 관계발전을 이루었다. 이에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수교 25주년을 한 달여 앞둔 지금 그런 기대가 환상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확인 됐다. 피로 맺어진 중국과 북한, 그 앞에 한·중 관계는 또다시 미로(迷路)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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