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절도범 출소 한 달여 만에 사회적응 못 해 다시 범죄
'전과자' 딱지에 취업도 어려워 "교도소 갈 줄 알고 훔쳤다"

교도소 출소 [연합뉴스TV 캡처]

"이놈아 아무리 배고파도 남의 물건에 손대면 되느냐. 막노동이라도 하지 그랬냐?"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과 생활범죄수사팀 사무실에서 비교적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이 고개를 떨군 채 연신 눈물을 흘렸다.

생활범죄팀장의 호된 꾸지람에 이 남성의 입에서는 교도소 출소 후 사회에 다시 적응하려 했던 나름의 노력이 구구절절 흘러나왔다.

팀장은 그의 말을 듣고 '막노동이라도…'라는 말을 다시 꺼내지 못하고 "너도 참 불쌍한 놈이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김모(38)씨가 교도소에서 10개월형을 살고 출소한 것은 올해 6월 초다.

광주 북구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상습적으로 금품을 훔친 생계형 범죄로 붙잡힌 김씨는 반복된 절도 범행에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내지 못한 벌금을 갚기 위해 노역형까지 살았다.

형을 마치고 교도소 철문을 걸어 나온 그의 손에는 30만원이 쥐어져 있었다.

교도소 안에서 다른 재소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취사반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일당 1천500원씩을 받아 모은 돈이었다.

교도소 안 취사반에서 그는 수만 번의 칼질로 음식재료를 썰며 다시 세상으로 나갈 날만 꿈꿨다.

그러나 다시 나온 세상은 전과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갈 곳이 없어 머문 출소자 지원시설은 교도소 못지않게 답답해 뛰쳐나왔고, 어렵사리 식당 주방보조로 취업하기도 했다.

그는 식당 업주에게 잘 보여 열심히 살아보려는 생각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리 음식재료를 깔끔하게 다듬어 썰어놓았다.

그 모습을 본 식당 주인은 "어디서 그런 칼질을 익혔느냐"고 물었고, 김씨는 "교도소 안에서 배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식당 주인은 깜짝 놀라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지만 전과자를 고용할 수 없다.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건설현장 막노동도 해보려 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려면 안전교육을 이수 받아야 하는데, 교육 비용 5만원은 주린 배를 붙잡고 하루를 버티는 김 씨에게는 너무나 큰돈이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활고에 신용불량자가 됐고, 배고픔을 피하고자 빌려 쓴 사채 800만원은 교도소에 있는 사이 2천여만원으로 늘어나 통장도 만들지 못했다

전과자에, 월급을 받을 통장도 없는 김씨를 받아줄 직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망설이고 좌절하는 사이 수중에 있던 30만원은 어느새 바닥났다.

먹지 못해 눈앞이 아득해질 찰라 그는 어느새 어린 학생들의 돈을 훔쳤던 광주 북구의 대학 도서관 앞에 다시 서 있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김씨는 도서관 취업준비생들의 가난한 지갑을 훔쳐 대학 식당에서 2천∼3천원짜리 백반으로 끼니를 때웠다.

입안에서 헛도는 밥알을 억지로 삼켰지만 "아 이러다 다시 교도소 가겠구나. 난 그래도 세상에서 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맴돌았다고 김씨는 경찰에게 털어놨다.

김씨는 결국 경찰에게 붙잡혔다.

검거 당시에도, 갈 곳이 없던 김씨는 공짜로 간식을 나눠주는 성인오락실에서 게임은 하지 않고 마른 건빵만 몰래 먹고 있다가 검거됐다.

김씨가 붙잡혀 온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과 사무실에서는 2015년 절도로 김씨가 조사받았던 당시 직장까지 주선해 준 형사들이 그를 알아보고 어깨를 두드렸다.

김씨는 그런 형사들에게 "잘살아 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며 하소연을 했다.

경찰은 비록 생계형 범죄지만 누범 기간 절도 범행을 또다시 저질러 김씨를 구속했다.

한 경찰관은 "출소하면 경찰서로 다시 찾아오라 그러면 직장이라도 알아봐 주겠다"는 말을 김씨에게 했다.

김씨는 그 말을 듣고 "누가 나에게 그런 따뜻한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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