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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칼럼] 청소년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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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규 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 승인 2017.08.07 22:30
  • 댓글 0
이진규
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청소년지도사란 직업을 가지면서 청소년이란 존재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 됐다. 관련 학문이나 다양한 연구가 그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정답이란 없는 것 같다. 본지를 통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청소년 자체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는 생각에 그동안 만난 청소년에 대해 적어본다. 필자의 경험이 모든 청소년을 정의하거나 일반화 할 수는 없을지라도 작은 이해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법 오래전의 일이다. 명문대를 다니는 청소년이 필자가 근무하는 동구청소년문화의집을 찾았다. 지역간 교류활동을 위한 것이었다. 마땅한 숙소가 없어 동료지도자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예의가 깍듯해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흔히 하는 말로 “말 편하게 해라”고 했더니 그래도 되냐며 “야, 라면 끓여 먹자”고 했다.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고 반말과 존댓말에 대한 인식차를 실감했다. 요즘 잘못된 존칭을 만날 때가 많다. 물건을 사러 가면 “만원 이십니다”라는 식의 말을 자주 듣는다. 존대해야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올려 말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게다. 어느 세대보다 은어가 많은 청소년기의 말하기란 관계의 첫 단계 일수 있고 사회화의 관문일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해 볼 일이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어느 학생은 외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교사의 체벌로 자퇴를 선택했다. 성적이 내려갔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았는데 폭력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성적은 자신의 것이고 성적이 떨어진 것에 대한 책임과 부담 역시 자신이 감내하고 있음에도 다시 체벌이 가해지는 것을 부당하게 여긴 것이다. 선생님이 때리면 맞아야하는 시대도 아니고 퇴학이 하늘이 무너질 일도 아닌 요즘이다. 1명이 잘못해서 다 같이 벌을 받는 일이 생기면 엄청난 항의에 직면하고 만다. 그만큼 방식의 선택이 진정성을 결정할 때가 많다. 청소년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방식의 딜레마에 한번쯤 빠진다. 잘되라고 혼내지 말고 위로 해달라는 데 어떻게 답해야 할까?

하루는 학부모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셨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 아들 이야기를 했다.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이 랩을 한다는데 오래 됐단다. 문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노래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조용하고 착하고 엄마 말 잘 듣고 항상 방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랩을 했다는 것이 충격이라 했다. 대학도 잘 갔으니 문제되는 일이 없을 거라는 말에 그게 아니라 이제 와서 아들을 잘 모르겠단다. 부모만큼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많은 부모들이 내 자식은 내가 잘 안다는 함정에 빠진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누군가에게 숨기기를 시작한다면 그 첫 번째 대상은 부모이다. 이상하게도 부모에게 비밀이 더 많아 진다. 아이의 비밀을 인정해주는 태도가 소통의 첫걸음이 될 수 있는데 그게 참 안 되는 게 탈이다.

좋은 환경에서 잘 자랐다는 느낌의 중학생이 난데없이 가출을 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 해맑고 모난 구석이 없던 아이 말에 ‘하면 되지’라고 했더니 다음날 진짜 가출을 했다. 가방 하나 둘러메고 천진난만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상황을 들어보니 별 문제는 없었다. 필자 신분상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동의를 구하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주소 좀 불러 주세요. 짐 싸서 보내 드릴게요” 어머니는 화끈했다. 짐 대신 부모님께서 와 주시길 부탁드렸고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논리 정연한 부모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항상 논리적인 부모님에게 지고 있었던 것이다. 윽박지르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넘지 못할 벽 앞에 힘겨웠던 모양이다. 인사를 해도 반듯해 보였던 아이가 그제야 측은해 보였다. 언제나 옳게 행동하고 칭찬만 듣고 자란 아이보다는 실수해 본 아이로 키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어른을 좋아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보기 좋게 무너진 적이 있었다. “너를 이해해”라는 말에 “왜요?”라고 답한다. 적잖이 당혹스럽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데 이해 안 해줘도 된다는 투의 청소년 앞에서 막막해 진다. 우리는 왜 청소년을 이해하려할까? 사실 모든 청소년이 이렇지는 않다. 대부분은 이해 속에서 두터워진다. 그럼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 어른들의 일방통행하는 버릇 때문이다. 이해야 말로 상호교감인데도 한쪽에서만 덤볐다가 실패한다. 어쩌면 청소년의 이해란 그냥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정의 내리는 것 역시 무모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계속해야한다.

“청소년은 물과 같다. 둥근데 담으면 둥글게 되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된다. 노란색을 주면 노랗게 되고 까만색을 주면 까맣게 된다. 그래서 아무데나 담아서도 함부로 칠해서도 안 된다. 청소년은 물과 같아서 언제나 흘러야 한다. 멈추면 쉽게 썩고 너무 급하면 파도가 일어 주변을 해칠 수 있다. 너무 뜨거우면 증발해버리고 반대로 꽁꽁 얼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타오르는 열정을 조절해 주어야하고 홀로 구석에 숨어있지 않게 안아도 주어야한다. 그렇듯 청소년은 물과 같아서 준비를 잘하고 들어가야 한다. 훈련이 잘돼있어야 그 속에서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깊이도 넓이도 모르고는 아무 배나 띄워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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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규 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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