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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측 '택시운전사 날조' 발언에, 네티즌들 "맞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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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컷뉴스
  • 승인 2017.08.11 09:52
  • 댓글 0
전두환 전 대통령. (노컷뉴스 자료사진)

"(계엄군이 시민군을 공격하는 장면은) 완전히 허위날조고 나는 보지도 않았지만 군인이 도열해서 (시민을) 일제사격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 전두환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7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 운전사'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날조’라고 주장해 논란이 이는 가운데, 네티즌들 역시 ‘날조 맞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만 네티즌들이 말하는 ‘날조’는, 전 전 대통령 측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택시운전사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너무 평화롭게 연출했다”는 지적이다. 실상은 더 참혹하고 잔인했다는 것.

그래서 당시 광주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글 일부를 모았다. 5.18의 진실을 알렸던 최초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판에서 인용했다. 수많은 사례 중 20개만 꼽았다. 보고 나면 느낄 것이다. “날조가 맞기는 맞네.”  

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마구잡이로 강경 진압하고 있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1
“돌격 앞으로!” 짧고 굵은 목소리로 명령이 떨어졌다. 공수대원들이 ‘으악’ 소리를 내지르며 위협적으로 학생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곤봉으로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경찰들과는 전혀 달랐다. 가차 없이 머리를 후려갈겼다. 학생 몇 명이 피를 쏟으며 순식간에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설마 하던 학생들은 공수들의 진압태도에 경악했다. (62쪽)

#2
가구업을 하는 장천수(남, 24)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10시 30분쯤 전남대 후문에서 일을 보기 위해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공수대원 2명이 그를 수위실로 끌고 가서 다짜고짜 군홧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렸다. 그는 두 팔을 붙잡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영문도 모른 채 머리와 허리 등을 심하게 구타당했다. (63쪽)

#3
장성군 교육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김정섭(34)은 광주공원시민회관에서 열린 동료직원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장성행 버스를 타기 위해 시외버스 공용터미널로 가던 중이었다. (중략) “40~50명의 공수들이 한꺼번에 나를 향하여 곤봉을 휘두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학생이 아니다’고 황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공수들은 나를 에워싸고 군홧발로 차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몸 전체를 두들겨 팼고 곤봉과 휴대하고 있던 M16총 개머리판으로 집단 구타하기 시작했다.”(71쪽)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4
마침 일요일인데 수금 차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던 정은철 총무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정 총무는 의자와 함께 뒤로 벌렁 넘어졌다. 군인들은 그를 마구 짓밟고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정 총무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두 군인은 사무실 바닥에서 기진맥진해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꿈틀거리는 정총무의 두 발을 양쪽에서 하나씩 붙잡고 끌고 나갔다. 머리가 땅바닥에 끌리는 채였다.(72쪽)

#5
그들은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았다. 무조건 닥치는 대로 서너 명씩 달려들어 곤봉으로 패고 군홧발로 아무데나 차고 짓밟았다. 공수부대는 마치 ‘살인면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했다. (중략) 약간이라도 반항하는 사람에겐 공수대원 7~8명이 우르르 달려들어 돌아가면서 난타한 후에 “광주 놈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안내양이 왜 이러느냐고 말리자 “네년은 뭐냐”면서 곤봉으로 후려갈겼다.(73쪽)

#6
시내버스에서 내린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 한 명이 막다른 골목까지 달아나다 공수대원에게 붙잡혔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싹싹빌었다. 대문 앞에서 지켜보던 노인이 그 젊은이를 자신의 몸으로 가리면서 봐달라고 사정했다. 공수대원은 가차 없이 곤봉으로 후려쳤다. 그리고 축 처진 청년의 다리를 잡아 질질 끌고 길거리로 나갔다. (73쪽)

#7
집으로 뛰어 들어온 학생이 다급한 김에 안방 장롱 속으로 숨었는데 공수대원이 곧 뒤로 쫓아와 혼자 집을 보는 할머니에게 “방금 도망 온 학생 어디 있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군인들은 그 할머니를 곤봉으로 후려치고 군홧발인 채 안방에 들어가 장롱 속의 청년을 끌어냈다. 동네 사람들은 “죽일 놈들”이라며 치를 떨었다. (74쪽)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8
3~4명의 공수부대가 여자의 블라우스를 낚아채자 옷이 찢어지면서 맨살이 드러났고, 여자를 군홧발로 차버리자 여자는 인도에서 차도로 굴러 떨어졌다. 도로에 나뒹구는 그 여자에게 공수부대원들은 또 달려들어 어디를 찍어버렸는지 ‘퍽’ 소리와 함께 그 여자는 잠잠해졌다. (75쪽)

#9
광주은행 본점 앞에서 1백여 명의 학생들이 데모를 하다 공수부대원에게 밀려 도망가고 있었다. 뒤쫓아 간 공수대원들이 30~40명의 시민, 학생을 동구청과 관광호텔 앞으로 붙잡아왔다. 공수대원들은 붙잡혀온 시민, 학생들에게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게 한 후 그들을 구타하고 머리를 땅에 처박게 했다. (75쪽)

#10
5.18 최초 희생자는 청각장애로 말을 하지 못하던 김경철(24)이었다. (중략) 충장로 제일극장 골목 입구에서 갑자기 나타난 3~4명의 공수부대원이 김경철이 머리를 진압봉으로 후려쳤다. 그는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79쪽)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11
공수대원이 각 층의 객실을 뒤지고 다니다 201호 문을 부수고 들어가 숨어 있던 청년과 장익수를 피가 철철 흐르도록 두들겨 패서 끌고 갔다. 뿐만 아니라 공수대원들은 투숙 중이던 젊은 신혼부부까지 끌고 갔다. (중략) 공수부대원들은 일단 붙잡힌 사람들은 무조건 두들겨 팬 다음 팬티만 남긴 채 옷을 모두 벗겼다. 기를 죽여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96쪽)

#12
금남로 1가 전일빌딩 부근에서 취재하던 <동아일보> 김충근 기자 눈에는 금남로에서 계엄군에게 붙들려 얻어맞던 청년 한 명이 무등고시학원으로 도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뒤쫓던 계엄군이 고시학원 계단 위를 무장한 채 따라가다 소총에 장착된 ‘대검을 뽑아 청년의 등 뒤에 던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중략) 그가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단어는 ‘인간 사냥’이었다. 현장을 취재했던 AP통신 테리 앤더슨 기자도 “이는 사실상 군인들에 의한 폭동이었다”고 말했다. (98~99쪽)

#13
건설자재 사업을 하던 박남선(26)은 양동 복개상가 앞에서 계엄군이 흰 블라우스와 검정 치마를 입은 여고생의 가슴을 대검으로 희롱하는 것을 목격했다. 할머니 한분이 “내 새끼를 왜 이러느냐”고 하자 공수들이 군홧발로 할머니를 걷어찼다. 시민들이 짐승 같은 놈들이라고 욕을 하며 돌을 던지자 공수대원들은 대검을 들고 그들을 쫓아갔다.(109쪽)

#14
군중 속에 있던 위성삼(26)이 짚단에 불을 붙여 장갑차 뚜껑에 올려놓았다. 그때 장갑차 뚜껑이 열리고 M16 총구가 나오더니 군인 한 명이 고개를 내밀며 공중에다 총을 두발 쏘았다. 총소리에 놀라 다들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군가 ‘공포탄’이라고 외치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 순간 다시 총성이 울렸다. 고교생 한 명이 픽 쓰러졌다. 쓰러진 학생은 김영찬(18)으로 항쟁기간 중 발생한 최초의 총상환자로 기록되고 있다. (116쪽) 

#15
<동아일보> 김영택 광주 주재기자가 목격한 장면이다. 30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 알몸으로 붙잡혀 기합을 받고 있었다. (중략) ‘엎드려뻗쳐, 뒤로 누워, 옆으로 누워, 다섯 번 굴러, 쭈그리고 앉아, 손을 귀에 대고 뛰어, 엎드려 기어, 한발 들고 서’ 등 수없는 갖가지 동작을 이들에게 강제로 하게 했다. 만약 이들이 조금이라도 구령을 따라하지 않거나 동작을 느리게 할 경우 몽둥이가 가차 없이 날아갔다. 특히 여성들의 곤욕스러움은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136쪽) 

독일 ‘슈피겔’지에 실린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 사진.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16
4명의 특공대가 옆 유리를 깨고 가스탄을 차 안에 무더기로 던져 넣었다. 공수대원 수십명이 몰려나와 차량을 부수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사와 20대 청년 9명을 끌어내어 곤봉으로 난타했다. 끌려나온 그들은 이미 모두 축 늘어진 채 거의 실신 상태였다. 하지만 공수대원들은 그들을 계속해서 군홧발로 짓밟고 곤봉으로 내리쳤다. (150쪽)

#17
11공수여단 61대대장은 대원들의 사기저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격명령을 내렸다. 2지역대장이 가지고 있던 메가폰을 받아 쥐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 우리는 살아 돌아갈 생각을 말자”고 부대원들을 독려하며 그들과 함께 금남로로 몰려든 시위대를 향해 분산 및 추격을 감행했다. (165쪽)

#18
공수부대 1개 소대 병력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돌입했다. 공수부대원이 휩쓸고 지나간 길바닥에 교복을 입은 중학생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남동성(전투경찰)이 달려가서 살펴보니 중학생 한명은 이미 숨이 끊어진 채 무엇에 밟혔는지 가슴이 푹 꺼져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엄마! 엄마!” 하는 희미한 신음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마저 곧 멎었다.(166쪽)

 

5.18 당시 군 헬기가 전일빌딩 주변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19
승려 신분으로 부상자 구호활동을 하던 이광영(27)은 월산동 로터리에서 헬기가 총을 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가 탄 차가 월산동 로터리에서 백운동 쪽으로 달리는데 도청 쪽에서 헬기가 날아오면서 총을 쏘았다. 그 순간 총에 맞은 듯 여학생 한 명이 가로수 아래 픽 쓰러졌다. (209쪽)

#20
정오 무렵 전남대 앞에서 임산부 최미애(23)를 비롯한 2명이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중략) 그녀는 정오까지 들어오겠다던 남편이 돌아오지 앉자 걱정이 돼 골목에 나가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중략) 시위대를 추격하던 공수대원이 쏜 총에 맞아 그녀가 쓰러졌다. 식구들이 뛰어나갔을 때 그녀는 피를 흘리며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다. (중략) 태내의 아이라도 살려보려고 인근 병원에 연락했으나 병원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후 4시경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 태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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