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잡으라고 준 돈을 경조사비·지인 생활비에 써…개인 계좌로 관리
법원 "예산 사용 자유로운 점 이용해 사적 유용" 질타…해임 정당 판결 

 

 

간첩 검거 등을 위한 공작비를 횡령했다가 해임된 국가정보원 직원이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본전도 찾지 못한 채 따끔한 질책만 받았다. 재판 과정에선 국정원 공작비의 허술한 관리 실태가 드러났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5년 공작·수사업무를 담당하는 수사관 A씨에 대해 감찰 조사를 벌였다.

국정원. 연합뉴스TV 캡처

그 결과 A씨가 위장 탈북자 검거를 위한 공작을 수행하며 중국에 있는 공작원(조선족 제보자) 보수와 공작 지원비 명목 등으로 총 2천800만원의 공작금을 타낸 뒤 공작원에게 850만원만 전달하고 나머지 1천950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했다.

또 전향한 간첩 출신을 통해 국내 침투 간첩을 검거하는 공작을 추진하면서 총 5천800여만원의 공작금을 받아낸 뒤 1천700여만원만 실제 집행하고 4천여만원을 횡령한 것도 발각됐다.

A씨 개인 계좌에 들어온 공작금 규모만큼 계좌에서 인출된 내역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국정원은 A씨가 첩보 수집 등을 위한 정보수집비로 받아낸 돈을 개인 무술 스승의 생활비로 지급하거나 사적인 경조사비 등에 쓴 사실도 적발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1월 자체 징계위원회에 A씨 징계를 요구했다. 징계위는 A씨를 업무상 횡령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의 사유로 해임하고 징계부가금 6천700여만원을 부과했다.

A씨는 "공작금을 모두 공작 활동에 썼다"고 주장하면서 불복 소송을 냈다. 현금을 넉넉히 보유하고 있어서 공작금을 지급할 때마다 굳이 은행에서 돈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무술 스승에게 돈을 준 것도 정통 고급 기예를 전수해 대공수사국 후배들에게 전수할 '공공'의 목적이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강석규 부장판사)는 A씨 주장이 근거가 없는 '면피용'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공작금을 개인 계좌로 받아 자신의 개인 재산과 혼재시켜두고는 그중 일부를 인출하고 여기에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더해 공작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한다"며 "그 자체가 이미 이례적인 경우로, A씨가 별도 장부로 공작금을 관리하지 않은 이상 공작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A씨는 자신이 보유한 현금이 넉넉해 은행 인출 없이 공작금을 지급했다고 주장하나, 당시 A씨의 경제 상황이나 가정 형편 등에 비춰보면 이를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보수집비 유용에 대해서도 "설령 A씨가 정보수집비로 무술을 배웠고 그게 업무에 도움이 됐다고 가정해도 그 자체가 정보수집비 용도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 횡령에 해당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타 공무원보다 예산 사용이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는 점을 이용해 약 2년에 걸쳐 공작금과 정보수집비 등을 사적으로 유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합계가 6천700만원에 이르며 허위 영수증까지 작성하는 등 비위가 중하고, 구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 따르면 A씨와 같은 경우 파면에 처하도록 규정한 점 등을 고려하면 해임 처분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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