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벌점이 많이 쌓이게 되면 일주일 정도 사회봉사를 하게 된다. 그것

조 숙 시인

을 통해서 벌점을 없애고 다시 학교생활로 돌아가게 하는 제도이다. 이런 경우 취약 계층을 위한 도시락 배달 같은, 봉사자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학생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학교로 복귀를 하면서 새로운 생각으로 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하나로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뉴 스타트 찬란한 인생’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이 학생들의 특징 중 하나로 어른에 대한 불신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받았던 처우를 상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 MBTI 성격유형검사를 하게 되는데 ‘조직적이고 규칙적이며 이성적이고 냉철한 유형’과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의적이며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이며 감정적인 유형’들이기 때문에 규칙이나 논리에 취약하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규칙을 무미건조하게 반복시키게 되면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과 배제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제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을 만나면 우선 자신이 스스로 사회적인 낙인, 문제아라는 인식을 수용하지 않도록 한다. 학교에 맞지 않다고 해서 문제아는 아닌 것이다. 학교는 일생에서 아주 짧은 시기를 보낼 뿐이다. 학교를 벗어나면 창의적이며 독립적이고 감정적인 학생은 사회에서 매우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규칙을 벗어나 독립적인 일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불행감도 사라진다. 우리 사회가 수용적이고 규칙적이며 이성적인 학생들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벌점을 받게 되는 학생군들은 자연스럽게 규칙을 싫어하는 특징을 갖는 학생들인 것이다.

얼마 전 일이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의 특징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학교 공부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상대로 연필을 들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쓰게 하는 일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글쓰기가 ‘노동하는 인문학’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파워가 있는 인문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씨름하듯 진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뒷자리에 눕듯이 앉아서 윗옷을 걷어 올려 배꼽을 드러낸 채 수업에 참여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글쓰기 하라고 준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화장실 낙서에 나오는 딱 그 그림이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의 누나만 자고 있었다’ 어쩌고 하는 글 옆에 그려지는 그림. 나는 담당 선생님을 불러서 학생을 수업에서 배제시켰다. 물론 그래봤자 별다를 제재는 없다. 나는 그저 그런 학생과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업에 그 학생도 참석을 하고 나는 짐짓 모른 척하였다. 그림을 그리던 학생은 그 사이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순해져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에 성의를 다했다. 글쓰기를 마치고 학생은 김광석 노래를 흥얼거렸다.

예사롭지가 않았다. 거리공연을 즐겨보던 터라, 그 목소리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정식으로 노래를 청해들었다. 거리에서 듣게 된다면 사인을 받고야 말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다. 학생은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부를 중시하는 학교제도에서는 인정을 받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예술가를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악수를 청하였다. 학생이 받았을 고통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도 학생 시절에는 적응이 어려웠던 학생이었다. 다행히도 허용적인 학교 분위기 때문에 문제아라기보다는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점을 부각시켜 주어서 자부심 속에 학교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삶에서는 여전히 규칙만이 살아 숨 쉬는 고등학교 시절의 악몽이 생생하다. 
규칙은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면 스스로 지키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문제아라고 배제시키면 그 학생은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조건을 잃게 된다. 하나의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다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문제아라는 낙인을 받아들여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