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안타까운 사랑 그린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 처럼
 치매 선고 후 무엇부터 해야 할까

 9월 21일 ‘치매 극복의 날’로 지정
 제 정신 아닌 ‘바보노인’ 70만명
‘이길 수 없는 질환’ 일찍 발견 해야

 

김병길 주필

멜로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를 지켜보는 남자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렸다. 여주인공 손예진의 병명은 ‘조발성 알츠하이머’로 유전자 변이로 발병하는 세계적으로 희소한 질병이다.

영화주인공처럼 알츠하이머병 선고를 받고 ‘자신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나면 과연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어제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과연 어떤일이 의미가 있을 것인가.

  「감각의 미래(카로 플라토니 지음)」를 읽다보면 후각 부분이 재미있다. 후각은 기억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기억과 냄새 사이 연결 고리가 흐트러진 상태다. 그래서 의료전문가들은 향기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료 단서를 찾으려 한다.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된 어느환자는 향기를 맡을때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향수로 자주 쓰이는 베티베르 풀 향기를 주자 갑자기 활기를 띠며 말문을 열었다. “아! 베티베르 향으로 유혹한 여자가 정말 많았는데!” 환자는 갑자기 청년으로 돌아갔다.

어느 병원에서는 향기 워크숍에 가족 참여를 권장한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들 정신이 명료해지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각은 가장 먼저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니까. 다른 감각과 달리 후각 정보는 중간 정거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감정과 연상을 담당하는 뇌 영역(대뇌변연계)으로 간다. 따라서 냄새는 다른 감각보다 기억을 쉽게 불러일으키고, 풍성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며칠전 보건소에서 ‘치매검사를 받으러 오시라’는 전화가 왔었다. 오늘 9월 21일은 ‘치매 극복의 날’이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 알츠하이머병협회(ADI)가 치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도 치매관리법 제정으로 2008년부터 치매극복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어느새 노인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치매환자이고, 올해 70만명인 치매 인구는 2030년께 127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치매는 암이나 당뇨병 등과는 달리 누군가가 돌봐야 하는 질환이어서 가족등의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치매가 이겨낼 수 있는 질환’이라는 인식은 오해다. 한 번 악화되면 되돌리긴 어려워도 일찍 발견해 관리하면 진행 속도를 현격히 늦출 수 있다니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유심히 체크해야 된다. ‘치매국가책임제’ 계획에 따라 이르면 내년 상반기 부터 65세 이상 모든 치매 환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다. 전문 인력을 갖춘 치매안심센터와 치매 요양병원도 단계적으로 늘어 날 것이라고 한다.

‘치매(癡呆)’는 ‘제 정신이 아닌 상태’라는 뜻의 영어 ‘dementia’를 일본에서 번역해 쓰게된 말이다. 이른바 ‘바보’라는 뜻의 ‘치매’가 모멸적이라며 2004년부터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고 있는 것도 일본이다. 영어권에서도 ‘dementia’ 보다는 치매를 처음 발견한 독일 의사 이름 그대로 ‘알츠하이머’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늙음은 노안부터 시작되고 노안은 바짝 가까이 대야 잘 보인다. 노인은 ‘시력이 남아 있을 때 보고 싶을 뿐’이라고 한다. 젊은이는 멀리 보고 노인은 가깝게 본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요양원의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리게, 우리에게 내일이 오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젊은이는 미래의 노인이다. 노인의 미래는 지금이다.

세상엔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 모질고 사나운 생각들을 씻어주는,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진짜 어른들. 대립과 갈등 으로 살벌한 곳곳에 화해와 치유를 선물하는 원로가 많은 세상이어야 한다.

유쾌하게 또 재미나게 나이들어가면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고 어깨동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금물이다. ‘바보노인’이 되면 젊은이들과 어울리기는 영원히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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