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대만. 지금까지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 명단이다. 이 중 ‘원전 제로’ 타이머를 맞춰놓은 곳은 독일과 대만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대만은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1978년에 츠벤덴도르프 원전을 완공했지만 국민투표를 통해 폐쇄했다. 나머지 국가는 탈원전을 선언하긴 했지만, 단계적·점진적 폐쇄를 목표로 대체에너지계획을 세우거나 법률 제정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전세계 원전 국가들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정책 방향을 탈원전에 맞췄지만, 혼란과 부작용을 경량화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거다. 한국 역시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탈원전 시대’를 선언하며 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종합 공정률 30%에서 공사가 일시 중단된 울산 울주군 소재 신고리5·6호기의 건설을 영구중단할지, 아니면 재개할지를 결정하는 공론화위원회의 대(對)정부권고안 발표를 이틀 앞두고 곳곳에서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어떤 결정이 나건 후폭풍은 피하기 어렵다. 본지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대만과 독일, 오스트리아를 현지 취재했다. 한국보다 30~40년 먼저 탈원전을 논의하고 준비해 온 국가들의 사례가 탈원전을 향해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우리에게 방향과 속도를 안내해주는 안전 표지판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대만원전 6기중 3기 가동중단
 설계수명 아닌 안전문제 ‘원인’
 원전 반대시위도 격렬해지며
 롱먼원전 완공직전 일시 중단

 2016년 당선 차이잉원 총통
 제4호 롱먼원전 영구폐쇄
‘2025년 원전제로’ 선언 불구
 당선 후 진전된 안 제시 못해

 

대만전력청은 건설이 중단된 채 봉인된 롱먼 원전을 관리하고 있다. 인적이 없는 롱먼 원전의 입구가 을씨년스럽다.

◆잘 포장한 ‘2025년 원전제로’ 정책

대만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탈핵’ 국가다. 

2016년 선거에서 정권탈환에 성공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2025년 원전제로’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선 에너지 배분율이 전체의 13.5%(2016년 기준)를 차지하는 원전을 대체할 녹색에너지 비율을 현재 4.8%에서 20%로, 36%인 LNG는 50%로 각각 늘려야 한다. 반면 석탄발전 비율은 37%에서 30%로 낮춰야 한다. 이는 차이 정부가 세운 목표이기도 하다.

1978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한 대만은 현재 제1호~제3호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고, 각각 2기씩 모두 6기의 원전이 있다. 

40년으로 설계된 원전의 수명을 연장을 하지 않는 이상 제1호 원전은 2018년, 제2호 원전은 2021년, 제3호 원전은 2025년에 폐쇄된다. 즉, 차이 총통이 선언한 ‘2025년 원전제로’는 제3호 원전의 운전종료 시점에 맞춘 정책이다. 민진당과 반핵운동을 함께 해 온 대만시민단체이 “차이 총통은 기존 원전 정책을 잘 ‘포장’했을 뿐, 새로운 반핵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다”며 칭찬을 아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롱먼 원전이 소재한 마을의 주민들의 상당수는 과거부터 어업에 종사해 왔지만 원전이 건설되면서 생계에 위협을 받았고, 차잉 정부가 공약대로 영구폐쇄를 실행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만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탈원전 국가로 등극한 건 공정률 98%에서 건설 중단이 결정된 제4호 롱먼(龍門) 원전의 존재감과 상징성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롱먼 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공약 이행을 위해 종합공정률 30%에서 건설 공사가 일시 중단된 신고리5·6호기에 비견되며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차이 총통은 지난해 선거 때 롱먼 원전의 ‘영구폐쇄’도 공약했지만, 정작 당선 이후 ‘2025년 원전제로’를 선언하면서 이 대목은 제외했다. 

반핵시민단체나 롱먼 지역주민들은 정부가 롱먼 원전 영구폐쇄 공약을 이행해주길 요구하지만, 정부는 “시간을 달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진전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수명 남았지만 원전 6기 中 3기만 가동  

대만의 전체 원전 6기 중에서 현재 정상가동 중인 건 제2호 원전의 1호기, 그리고 제3호 원전의 1,2호기 등 3기가 전부다.  

나머지는 설계수명이 다해서가 아니라 안전 문제로 가동이 일시 중단된 상태다.    

제1호 원전의 1호기는 2014년 말 보수 과정에서 핵연료봉 손잡이가 풀리는 사고가 발생한데다, 저장고에 폐연료가 넘쳐나 가동이 정지됐다. 같은 원전 내 2호기는 지난 6월 연료가 다해 가동을 멈췄다. 당시 행정원은 ‘수명연장은 하지 않겠다’는 전제 아래, 1호기 만이라도 재가동하자고 건의했지만, 이듬해 국회의 거부로 불발됐다.  

원래는 제2호 원전의 1호기도 핵연료봉 거치대 안전 문제로 가동을 멈췄지만, 전력부족 때문에 행정원 허가를 거쳐 계속 가동하고 있다. 2호기도 1호기처럼 재가동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보수작업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4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한 탓에 국회 동의가 있어야만 정상가동이 가능한 상황이다. 

 

롱먼 원전이 소재한 부롱지역의 기차역.

◆공정률 98%에서 건설중단 롱먼 원전 

1999년 시작된 롱먼 원전 건설은 2000년 중단됐다가, 2001년 재개됐고, 정부 차원의 ‘공론화’ 없이 논쟁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2011년 후쿠시마 원전가 터져 또다시 중단됐다. 그러다 2014년 원전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국민당(지금의 제1야당)의 마잉주 총통이 완공 직전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국민투표로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이상, 다시는 제4호 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거다. 그리고 지난해 정권을 교체한 민진당의 차잉잉원 총통이 2025년 원전제로 정책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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