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울산지부 사무처장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 15일 일어난 포항 지진으로 울산지역에서도 몇몇 학교 건물들이 금이 가고, 흔들림이 심해 전교생들이 대피하는 소란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흔들리는 건물을 빠져나오는 그 와중에 유독 한사람, ‘교무실무원’은 제외를 당했다고 한다.  

조합원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도 흔들림이 있어 학생들이 대피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교무실무원인 본인에게는 “학부모에게 상황 문자 보내고, 학부모 민원 전화가 올 수 있으니 교무실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10여군데 다른 학교 교무실무원 조합원들에게도 연락해봤다. 다들 그랬다며, ‘당연시 여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학교비정규직 교무실무원은 지진이 나도, 건물이 무너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였던가? 다들 대피하는데, 홀로 남아 문자 보내고, 민원전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인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너무 당황스럽고, 속이 상했다.

사실 필자도 지금은 노동조합 전임으로 나와 있지만, 학교 교무실에서 일하는 교무실무원이다. 필자에게도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다. 하루 종일 필자한테 그런 명령이 내려지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지진대응 매뉴얼에는 학교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지진이 나도 남아서 민원전화를 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는지 궁금하다. 천재지변을 겪으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서러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키우는 학교라는 곳이다. 이런 사실이 안타깝고 더욱 화가 난다.

이 전화 한통으로, 다른 학교에 확인 전화를 하면서 느낀 비참함과 착잡함을 누구에게 털어놔야 하나 고민스러운 하루였다.

지난해 안전한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었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그 결과가 이번처럼 안전을 우선해서 수능이 연기되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함께 촛불을 들었던 우리 학교비정규직들은 여전히 소외받고 있다. 

이번 포항지진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고귀한 생명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안전할 수 있도록 지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돌아보고, 현실적인 매뉴얼마련이 필요하다. 사람의 목숨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것은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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