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주재 김재천 영사, 보도 직후 감사 "영사관 내 따돌림"

 

 

(사진=JTBC '뉴스룸' 방송 화면 캡처)

최순실이 베트남 주재 고위 공무원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실명으로 공개한 외교관이 폭로 이후 업무에서 배제되고 따돌림을 받는 등 지난 1년 간 보복에 시달려 왔다고 주장했다. 까다로운 전보 규정이 있는 '전담직위'임에도 한국으로 발령나 보복성 인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진행하던 한글교육기관 사업 틀고 기존 업무 배제 됐다"

주베트남 호치민영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재천 영사는 최순실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지난 해 11월 한 종편의 언론인터뷰를 통해 최순실이 베트남 대사와 호치민 총영사 임명에 개입하고 조카인 장승호를 도우려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김 영사는 현직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으로서 모른 체 할 수 없다"며 언론 앞에 나섰지만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었다고 CBS 노컷뉴스에 털어 놓았다. 지난 해 8월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표준모델 세종학당' 설립 사업에서 배제된 게 대표적이다. 김 영사는 호치민총영사관의 외부 사무소 형태로 한글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세운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의 협조공문을 현지 외교부 의전국에 발송하면 되는 단계만 남기고 언론인터뷰가 전파를 탔고, 김 영사는 추진하던 사업에서 빠지게 됐다. 결국 그해 11월 설립하기로 했던 계획은 틀어지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답보상태다. 외교부 관계자도 "총영사가 다소 감정적으로 대처했다"고 얘기할 정도다. 정부출연 100% 기관인 만큼, 지금까지 투자금은 세금 낭비가 된 셈이다. 


김 영사는 "총영사에게 관련 사항을 보고하고 예정대로 세종학당 설립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언론 인터뷰가 나가자 공문 요청이 아예 받아들여지지를 않았다"며 "총영사는 아예 만날 수가 없어서, 베트남대사관과 본부에 마지막 단계만 밟으면 된다고 서두르라고 호소 했지만 답이 없었다"고 답답해 했다. 

김 영사는 세종학당 설립을 포함한 문화교육 업무와 민원실 업무 맡아왔지만, 보도 이후엔 공증과 여권 등 민원실 관련 업무만 하고 있다. 대외활동도 일절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 보도 직후 감사 받고 회의에서도 소외 "영사관 내 따돌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현직인 박 모 총영사가 현지에 있는 최순실의 조카를 도우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만큼, 김 영사가 총영사의 눈 밖에 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호치민 영사관은 보도 이후 주 1회 주기적으로 하던 회의를 아예 없었다. 대신 티타임 명목으로 박 총영사가 영사들을 따로 불렀고, 그 결과 김 영사는 공식 회의에 아예 참여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김 영사는 보도 이후 박 총영사로부터는 최소한의 보고 지시마저 없었다고 주장했다.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총영사와 영사 관계지만, 이 기간 독대는 물론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다른 영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김 영사는 "다들 총영사의 눈치가 보여서인지, 같이 밥 먹는 것도 피했다"면서 "불가피하게 업무 때문에 질문하는 게 아니면 아예 말을 섞지도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1993년 공직에 발을 들인 이래 징계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그였지만, 폭로 다음 달인 지난 해 12월 예정에 없던 감사까지 받았다. 외교부 감사실은 "언론 보도도 있고 하니까 현지 상황 전반을 파악하기 위해 감사했던 것"이라고 했다. 김 영사는 오히려 자신이 세종학당 설립 중단의 원인인 것처럼 감사 초점이 맞춰진 듯한 인상이었다고 한다. 1년이 다 된 지금까지 징계 등 감사 결과는 따로 없다. 

당장 지난 7월 베트남 정부로부터 한-베 우호관계 기여를 인정하는 공로상을 받고, 한국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로부터도 몇 차례나 업적을 인정받는 수상자가 됐지만 외교부 내부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평가였던 모양이다. 

결국 김 영사는 최근 본부 발령을 받았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인사발령이 난 것은 외교부 내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김 영사 입장에선 징계나 다름 없는 인사조치이기도 하다. 삶의 터전이 돼버린 베트남에서 퇴직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2014년 승진을 포기하면서까지 '전담직위'에 남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전담직위는 외교부가 현지에 전문성을 갖춘 외교부 별정직공무원을 외무공무원으로 임용하기 위해 3년 간 유예기간 중 주는 것으로, 규정 상 승진·전보·파견·겸임이 불가능하다. 

◇ 정권 바뀌어도 외교부 내 미운털 "징계 다름 없는 인사조치"
 

외교부.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김 영사는 "보통 전담직위 기간을 거치면 승진이 가능한 일반직공무원으로 전환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저는 어차피 나이도 있고 베트남의 전문성을 활용하고 싶어 전담직에 남기로 했었다"며 "불가피한 사유가 아니라면 전보에 한계를 두고 있는데, 굳이 무리해서까지 이런 인사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외교부 인사기획국 관계자는 "김 영사가 호치민 시에서 7년 반이면 너무 오래 한 지역에서 근무했다는 내부 평가가 고려됐다"며 "부산 소재 아세안문화원 업무를 맡게 될 예정인 만큼, 직무분야가 동일한 직위로 이동이므로 전담직위에 대한 인사 규정을 벗어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 24년 근무 중 17년, 삶의 상당 부분이 베트남에 있는 김 영사는 갑작스런 발령이 언론 인터뷰 이후 지속된 보복 조치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고 있다. "저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이 문화원보다 베트남 현지에서 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라고 되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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