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존재로 삼국시대 귀한 대접받았던 까마귀
타지역서 푸대접 받기도 하지만 울산시민은 반겨
희망의 날갯짓 떼까마귀 기운받아 행복한 연말을   

 

임 석 시인·작가들의 숲 대표

요즘 울산근교 농촌마을에는 성탄 음악은 잘 들리지 않고 까마귀 소리가 요란스럽다. 까악~ 까악~, 삼호동 갈까마귀 소리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한 해의 삶을 정리하느라고 까마귀들도 바쁘다. 이들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시련과 희망을 잃지 않고 늘 기쁜 마음으로 삼호동 대밭에서 날아갔다가 저녁이면 날아든다.
까마귀는 까먹다와 비슷한 이름 때문에 건망증과 문맹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지능은 어느 동물보다 높은 편에 속한다. 6살 아이와 맞먹거나 상회하는 수준이다. 부피 개념과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거울 조각에 비친 자기 자신을 알아본다. 여가 시간이나 문화도 있다. 심지어 즉흥적 문제 해결력과 도구 제작 능력은 침팬지를 능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까마귀가 병 속의 먹이를 꺼내기 위해 철사를 구부려 쓴 기록이 있다고 한다. 스크럽 제이라는 까마귀는 먹이로 땅콩과 벌레를 줬을 때, 시간이 오래 지나면 벌레가 썩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부패한 벌레는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땅콩만 찾아먹었다. 즉 시간의 흐름을 이해한다는 증거다. 

태양 속에 산다는 전설 속의 ‘삼족오(三足烏)’, 옛날 삼국시대의 까마귀는 어떠했을까. 고구려에서는 다리 셋 달린 기형 까마귀인 삼족오를 태양의 상징이라며 숭배까지 했다고 한다. 신라에서도 까마귀가 소지 마립간에게 암살 시도를 미리 알려줘 죽음을 모면한 대가로 매년 오곡으로 까마귀밥을 짓게 했다는 설화도 있다. 궁예에게도 까마귀가 임금 왕(王)자가 쓰인 종이를 떨궈 줘 ‘왕’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산해경에서는 태양 속에 삼족오가 산다는 내용이 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날이 다가오면 까치와 다리를 놓아 주기도 하고, 단오날 신라시대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는 풍습이 전해졌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로 삼국시대 때는 까마귀들이 대접 받고 살았다. 

이렇게 까마귀와 친숙한데도 불구하고 경기도 수원지역에서는 까마귀가 며칠간 머물고 울산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 잠시 동안에도 여러 가지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그럼 울산의 떼까마귀는 어떠한가. 대도시 중 특이하게 울산시내와 울주군지역에 까마귀가 많다. 이들은 10월 무렵에 몽골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찾아오는 떼까마귀와 갈까마귀다. 울산시내와 울주군내만 해도 약 10만 마리 정도로 추산된다. 논 서너마지기를 새까맣게 채우고, 수백 미터에 걸친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면서 저녁 점호를 치고는 사라진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태화강 주변 대나무 숲들이 그들의 집이다. 저녁 점호를 취하고 대밭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대밭 속이 가득 차면 삼호동 태화동 가로수 전깃줄 위로 새까맣게 매달린다. 

‘어느 익명의 새 빈정대던 그 자리에/저녁놀 한 자락 벤 단음절의 벌떼소리/무관심 기억 밖에서 차량 엔진 시끄럽다//온통 매연 마셔대도 그들만의 즐거움/질주와 경적에도 좀체 놀라지 않고/찻길 옆 전선줄에서 위태롭게 밤을 샌다//늘어진 가지마다 별빛이 휘청 댄다/문득 찬바람에 소곤대던 부리의 끝/몇 소절 겨울 이야기 어둠을 쪼고 있다’(시 ‘삼호동 까마귀’ 전문)

이렇게 많이 몰려드는 까마귀 떼들로 피해 입은 주민들이 민원을 넣기도 하지만 시민들은 대단히 반긴다. 다른 도시에선 쫓아내기 바쁜데, 울산에서는 왜 반기는 것일까. 까마귀 떼가 울산을 찾는다는 것은 먹이를 구하기가 쉽다는 것 아닐까. 지난날 오염됐던 태화강의 복원을 의미하고, 공업도시로 인한 환경이 회복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은 저녁이 되면 나무와 가로수, 전선줄에 줄줄이 앉아 긴 밤을 그 옛날 삼국시대를 생각하며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지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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