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자료사진)

 30년 만에 본격 점화된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지만, 막상 정치권의 논의 속도는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 1년이었다.

개헌 논의의 핵심 쟁점인 정부형태, 즉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놓고 여야, 정당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종료와 동시에 개헌 드라이브를 세게 걸면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개헌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18일 현재 개헌 논의를 이끄는 정치권의 두 축은 국회와 청와대다.

일단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합의를 중시하며 국회에 공을 넘겨 놓은 상황이어서 주도권은 국회가 쥐고 있는 모양새다.

국회는 지난 1월 일찌감치 헌법개정특위를 출범시켰다. 민주당 15명, 한국당 14명, 국민의당 5명, 바른정당과 정의당이 각각 1명씩으로 총 36명의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매머드급 특위다.

특위 차원의 논의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와 현역 국회의원들의 전체회의 등 투트랙으로 진행됐다.

국회는 제대로 된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다 11월 들어 뒤늦게 ▲기본권 ▲경제·재정 ▲지방분권 ▲정부형태(권력구조) ▲정당·선거 ▲사법부 등 6개 주제별로 세분화해 3주간 집중토론을 했다.

조만간 기초적인 조문화 작업을 맡게 될 기초소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다차원적 논의 전개와 1년이라는 긴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여야의 단일안 도출은 아직 요원한 상태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나 권력구조 개편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과정을 거치며 현행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에 확실하게 각인됐다.

정치권 역시 같은 인식을 하고 있지만, 이를 손질하기 위한 개헌 방향에 대해서는 동상이몽이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정하진 않았으나 다수가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이는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밝힌 개헌의 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1야당인 한국당의 입장은 180도 다르다.

역시 당론으로 정하지는 않았으나 다수가 대통령과 총리가 각각 외치(통일·외교·안보)와 내치를 맡도록 권력을 나누는 혼합정부제를 선호한다.

특히 한국당은 여당이 선호하는 4년 중임제에 대해 현행 5년짜리 제왕적 대통령제를 8년짜리로 늘리는 '개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아예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는 것 자체에도 확실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당의 이 같은 입장은 '정부 심판론'으로 승부를 봐야 할 지방선거에 개헌이슈가 끼어들 경우 본질이 희석되면서 안 그래도 불리한 선거판이 더 불리해질 수도 있다는 현실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여야가 개헌의 내용뿐만 아니라 시기를 놓고도 접점 없는 평행선을 달림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위가 시한으로 설정한 내년 2월까지도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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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긍정적인 신호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여당이 새해 예산안 처리 이후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기 위해 분위기를 다잡는 점이 눈에 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는 본격적인 개헌의 시간"이라고 선언했고, 이후 의원총회 형태로 4차례에 걸쳐 ▲헌법전문·기본권(12일) ▲경제재정·지방분권(14일) ▲정당·선거·사법(19일) ▲정부형태(21일)를 주제로 내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이 개헌과 더불어 선거구제 개편에 사활을 걸고 있는 국민의당과의 공조를 본격화하는 것도 한국당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여전히 높은 점도 개헌 추진의 한 동력이 되고 있다.

국회가 끝내 개헌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때는 청와대가 나설 수도 있다.

정부가 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에서라도 이견이 있는 부분은 제외한 채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는 부분만 담아 개헌안을 발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4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갑자기 나서면 정쟁이 될 수도 있다. 만일 대통령이 역할을 하더라도 섬세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국회에서 개헌을 주도하는 데 부족한 점이 있으면 대통령이 보완하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합의되는 데까지 (개헌을) 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며 "국회에서 정부형태 같은 것은 합의가 안 되는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위원장은 아울러 "문 대통령이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치분권과 기본권은 합의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합의되는 데까지 1차적으로 (개헌을) 하고, 정부형태 같은 문제는 선거제도 문제도 있으니까 나중으로 미루든가 하는 2차 개헌도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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