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체·수저계급론 등 세대 구분짓는 유행어 
우리 사회·주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만 담겨 
정책·시스템 문제 해결 위해 모두 힘 합쳐야

 

이철호 (사)공동체창의지원네트워크 상임이사

지난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필자는 지역의 전통시장에서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가을행사를 기획하며 젊은층에게 호감을 끌수 있는 재미있는 문구로 홍보를 해보고자 했다. 직원들과 함께 앉아 아이디어를 내다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단어나 문장에 나만 빼고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는 것을 보며 묘한 이질감을 느낀 적이 있다. 그때 들은 단어들은 ‘빼박캔트’, ‘오지고지리다’, ‘창렬스럽다’, ‘ㅇㅈㅇㅇㅈ’ 같은 소위 요즘 말하는 급식체였다.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빼박캔트는 ‘빼도박도 못한다(can’t)’ 라는 말을 줄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사용하는 단어로 만든 것이다. 오지고지리다 라는 말은 ‘대단하다’, ‘엄청나다’와 같은 놀라운 일이 있을 때 사용하는 최상급의 표현이라 보면 된다.

‘창렬스럽다’는 말은 편의점에서 팔던 특정 연예인이 광고하는 도시락이 가격대비 부실함을 비꼬아 내실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 됐고, ‘ㅇㅈㅇㅇㅈ’은 ‘인정, 어 인정’이라는 특정한 질문이나 상황에 대한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말이다.

급식체라는 말은 그 자체로 급식을 먹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10대와 기존의 세대를 구분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인데 이런 종류의 계급을 나누는 표현의 시도는 사실 급식체가 처음은 아니다. 세대를 아울러 이런 방식의 표현은 어느 세대든 있을터다. 급식체 직전엔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한 자조 섞인 여러 표현들이 퍼졌었다.

우선 ‘N포세대’란 말이 있다. 수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인데, 20~30대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다. 취직과 직장생활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세대로부터 출발해 취업과 내 집 마련도 포기해야 한다는 5포세대를 거쳐, 최근에는 인간관계와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7포세대, 건강이나 외모관리를 비롯해 삶의 희망과 꿈조차 꿀 수 없다는 ‘N포세대’라고 일컫는 상황이 됐다. 

‘수저계급론’도 있다.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으며, 학력과 경제력 등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계급이 되는 양극화 시대이고,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경제적 자본력이 한 개인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나 부를 결정하는 절대적 요인이 된다는 말이다. 대개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뉘며, 요즘은 수저도 없는 손수저란 용어도 생겨 나고 있다. 

지옥을 뜻하는 영어 ‘hell’과 우리나라를 뜻하는 조선이 합쳐진 신조어 ‘헬조선’과 혼자 밥 먹는 인구의 증가를 반영한 ‘혼밥족’도 있다. 

이러한 단어들이 사회적 공감을 얻으며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은 사회와 주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으며 우리사회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젊은 세대는 생활방식과 단어 등을 통해 세대 간 차이를 명확하게 하고 단절로부터 생긴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단절과 갈등은 세대 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같은 세대 또는 지역에서도, 동일 영역 종사자 간에도 갈등 양상을 보인다. 울산의 문화계에서는 Artizan(아르티잔)과 Hunter(헌터)라는 상반된 표현으로 드러나는 갈등도 있다. 

Art(예술)+partizan(빨치산, 유격대) 말의 합성어인 ‘Artizan(아르티잔)’은 부업을 하는 등의 생계와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예술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의미와 그것을 함께 해나가는 동료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반면 Hunter(헌터)라는 표현은 예술이나 창작활동보다는 각종 지원금, 보조금에 목매는 행태를 보이는 예술가들에게 쓰인다. 딱히 어느 그룹을 지칭하기보다는 나와의 소속감을 갖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들 간 불편한 마음의 표출 정도로 사용되는 듯하다.

작은 생태계 속에 한정된 자원으로 늘 부딪히다보니 일정 무리들 간의 갈등과 시기가 생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삶이 문제라고 하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삶을 만든 정책과 시스템의 문제를 돌이켜 봐야 한다. 삶의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과 더불어 나은 삶을 요구를 할 수 있는 단위를 형성해 나가야 할 시기가 왔다. 작은 움직임들을 촉발할 수 있는 계기가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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