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은 ‘작은 설’ 즉 ‘까치 설’
가는해 그냥 못보내고 아쉬움 달래
사람도 올 때 있으면 갈 때가 있는법

이웃 추위·어려움 걱정할 줄 모르고
내가 누리는 삶 내 덕분으로만 착각
주변 사람에 대한 고마움 잊고 살아

 

 

김병길 주필

어김 없이 묵은해(2017년)를 보내고 새해(2018년)를 맞이한지 한달 반 가까이 지나갔다. 그리고 또 설날을 맞이해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된다.

마트마다 설 선물세트가 가득 쌓여있다. 설을 구정(舊正)이라고도 한다. 구정 선물세트, 구정 연휴처럼 ‘설’과 ‘구정’을 맞이 한다.

구한말 양력이 들어온 이후에도 우리는 추석·한식·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인 설을 쇠어 왔다. 설은 일제 강점기 시련을 겪었다. 일찍부터 서양 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음력을 버리고 양력만 사용해 왔다. 

일제는 우리 문화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명절을 부정하고 일본 명절만 쇠라고 강요했다. 특히 우리 ‘설’을 ‘구정’(옛날 설)이라 깎아내리면서 일본 설인 ‘신정’(양력 1월 1일)을 쇠라고 강요했다. 이때부터 ‘신정(新正)’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설날 전 날, 즉 섣달 그믐날을 ‘작은 설’ 즉 ‘까치 설’이라며 아쉬움을 달랬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날도 그냥 보내지 않았던 우리들 이었다.

어릴 때는 한 살 이라도 나이를 더 먹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양력설 보다 음력설이 더 반갑다. 하루라도 새해가 늦어져야 나이를 더디게 먹지 않겠는가. 어릴 때는 새해를 싫어하는 어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른의 마음은 어린이의 마음과 반대로 간다.

‘내 열살이 마지막 가는/ 섣달 그믐밤, 올해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에/ 남는 이야기를 마저 적는다.//-아아, 실수투성이/ 부끄러운 내 열살아, 부디 안녕, 안녕...// 인제 날이 새면 새해, 나는 열하고 새로 한 살./ 내 책상 위엔 벌써부터 새 일기장이 벌써부터/ 새 일기장이 놓여 있다.’/ (하략) 강소천 선생(1915∼1963)의 동시 ‘섣달 그믐 밤에’를 떠올려 본다.

섣달 그믐 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저물면 새해의 첫날이 밝아올 것이다. 지는 해와 오는 해의 경계에서 고작 열 살 된 어린이는 비장하게 일기를 쓰고 있다. 지난 한 해를 부끄러워하면서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새 일기장을 펴놓고 새해의 첫 장을 다짐으로 채운다. 

열 한 살에는 열살처럼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 자랑스러운 열 한살이 되리라. 곧 찾아올 섣달 그믐 밤, 우리에게도 이처럼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던 날이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기도 전에 다이어리를 산다. 시간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이 있다. 한 덩어리로 이뤄진 시간을 어제, 오늘과 내일로 나눠 이를 다시 1년으로 만든 것은 인간이다. 그 덕분에 하루를 헛되이 보냈어도, 한 달을 무의미하게 흘려 보냈어도 새로 시작할 기회를 맞이 할 수 있다.

운명은 정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운명이란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에 비유 할 수 있다. 자동차를 몰고 가지면서 1차선으로 가느냐, 2차선으로 가느냐 하는 문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어찌 세월만이 아쉽게 흐른다고 할까. 사람도 올 때가 있으면 갈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헤어짐에는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다. 사람의 한 평생을 이렇게 오고 가는 한 해에 비유해 보면 열두달 안에 우리가 치러야 할 통과의례는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적절히 배치돼 있다.

시각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순간을 말하고 시간은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을 말한다. 보통 시간을 하늘을 가로 지르는 태양의 움직임이나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운동을 이용해 측정한다. 해시계나 전자시계가 이런 원리를 이용한다. 

가운데가 잘록한 유리그릇에 마른 모래를 넣고 중력에 의해 서서히 모래가 떨어지면, 그 부피로 시간을 재는 장치가 모래 시계다. 시계라기 보다는 스톱워치 또는 타이머에 가깝다. 특정시간 동안 모래가 떨어지는 모래시계 몇 개면 다양한 시간을 측정 할 수 있다.

태국에서는 매년 4월 13일 ‘송끄란(Songkran)축제’가 벌어진다. 태국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이날 태국 사람들은 서로 물바가지를 퍼부으며 축하한다. 

인도에서는 매년 2, 3월께 ‘색의 축제’로 유명한 ‘홀리 축제’가 열린다. 힌두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팔구나(Phalguna)의 보름날부터 1, 2 주가량 새해를 축하하며 서로 다양한 색깔의 물감이나 색종이 가루를 뿌린다.

무술(戊戌)년은 다섯 번째 천간(天干)인 무(戊)와 열한 번째 지지(地支)인 술(戌)을 합친 간지이다. 주역대가 이응문 선생은 올해를 ‘풍화가인(風火家人)'의 괘라고 했다. 바람·불·집사람은 어떤 뜻을 담고 있나? 바람이 불을 지피는 것으로 집안을 밝게 정제하는 형상이다.

국가적으로 올해는 특히 내부의 화평과 안정 내치(內治)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언행을 함부로 하지말고 내부 민심이 동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은 수신에 바탕을 두고 제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가인(家人)’에는 ‘불은 불대로 물은 물대로 상하(上下)가 나뉜 화수미제(火水未濟)’란 괘가 들어있다. 괘의 해석만으로는 올해에는 남북관계가 크게 진전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남북한 관계를 전체적으로 풀어보면 뇌산소과(雷山小過)’라는 괘다. 이는 물이 땅 밑으로 흘러가듯 조금씩 점차적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한파가 몰아치면서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지만 주거시설이 좋아지면서 계절을 극복하는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험난한 환경을 벗어나 자신만의 따뜻한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런 현실에 익숙해지다보니 어느새 나와 가족의 평온함만 추구하는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웃의 추위나 어려움을 걱정할 줄도 모르고, 어려운 이웃 이야기도 무덤덤하게 듣는다. 내가 누리는 삶이 어찌 나혼자만의 노력으로 된 것이겠는가. 주변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면서, 살아왔다는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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