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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은 일제때 삼산비행장 징용… 고2때 준교사 시험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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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다예 기자
  • 승인 2018.03.14 22:30
  • 댓글 0

구술(口述)로 그려 낸 기억 속의 울산 (3) 1934년생 김팔용씨

중2때 키 작아 학도병으로 안끌려가
고교 2년 수료자에 준교사 자격
밤엔 신흥마을서 사람들 가르쳐

‘3·15 선거’ 투표장 위 뚫어놓고 감시
야당 성향은 아예 투표 자체 못해
68년 정치활동 접고 구획정리사업

옛 소방서 건너편 울산극장이 최초
현대자동차 자리는 옛 장어잡던 곳
해방후 동사무소 동제·남산서 산신제

김팔용 구술자가 이야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팔용은 1934년 신정동에서 태어났다. 울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준교사 자격시험을 치러 교사가 됐다. 정교사 자격을 취득해 강남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60년대 이후 야당 정치활동·건축업·택지개발사업 등을 했으며, 지방선거에 출마해 초대 울산시의장을 역임했다.”

◆울산초등학교를 5년 동안 걸어 다녔지. 참 가난한 시절이야

울산초등학교는 한국 사람들 다니는데, 양사초등학교가 왜놈 학교고, 아직 남구 달동 여기 강남초등학교는 없고. 해방이 되고 강남초등학교가 울산초등학교 분교로 생겼다고. 

양식이 없으니까 일요일에 엄마하고, 지금 고래축제하는데 있지. 거기 가면 양죽이라고 그래, 양죽마을 거기 가면 두북이라는 풀이 있어요. 요새 진저리 같은 그런 거 있잖아, 바다 풀. 어머니하고 와가 그걸 뜯어가 내가 짊어지고 가서, 그걸 삶아서 널어, 너무 독해가 말라가 다시 삶아가 그걸로 밥을 해 먹는다고. 

학창시절.


◆일제강점기의 기억 

저 여기 남산 밑에 가면 토굴 있잖아요. 개발하고 있잖아요. 그게 왜놈 때 발파를 해가지고 굴을 만들었어. 남산 밑에 굴 발파하는데도 동네 사람들이 징용 가고, 우리 아버지 삼산비행장 만드는데 징용 갔어요. 지금 달동 사거리 그거입니다.

그 돋질산 있잖아. 아버님이 징용 끌려가가지고 발등을 심하게 다쳤어. 해방되고 남산 동굴에 들어가보니 마대에 쌀도 있고, 콩도 있고 오 만 게 다 있어요. 소를 몰고 아버지하고 가가, 소에 싣고 와가, 여기 마당에 덕시기 있잖아. 그 널어놓고 보니 곡식이 다 썩었어요. 말려서 그걸로 죽 끓여 먹었다고.  

내가 울산중학교 안 댕겼나. 2학년 때 6·25 났거든. 부산 가서 있다 가. 그때 학도병 끄집고 가는데, 총을 둘러매보고 끄질리면 불합격이고, 그래서 토꼈지 뭐. 땅에 안 끌리는 사람은 다 끄집고 가버렸다고. 울산에서 차에 실어 가지고 대구 가서 3일 있다가 내려와 나중에 낙동강 전선이 무너져서 안강전투에 투입시킨 거라. 나는 키가 작아 합격 안 됐지.

학도병으로 갔다가 열여덟 명 다 죽고 둘이 살아왔어. 낙동강 전투, 안강전투 얼마나 치열했노. 지금 울산중학교 없애버렸다 아이가. 지금 학산동 학산타운 그 자리가 감빵학교 하는 거. 옛날에 미국에서 가져오는 거 안 있나. 원조물자 받아서 그 사립학교를 지은 거야. 

결혼식.


◆어린 시절의 거마동 

지금 봉월이라고 하고, 신정동이라고 하는데, 클 거, 말 마, 그래 거마동이거든. 저기 남산 밑에 신정초등학교 있는 데가 한동네라.

그런데 여기는 대밭골이라. 대가 많이 있었거든. 여기 여름에 물 내려가고, 나 어릴 적에 여기는 다섯 집밖에 없었네. 전부 논이고 밭이고, 계곡물이 흘러가가, 저기 올림피아호텔 있제. 그기로 해서 여천천으로 흘러가. 

1965년 방어진 나들이.


◆어렵게 공부해 교사자격증 얻어

내가 동서고등학교 댕기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준교사 시험 쳐가 합격해가 선생님을 했어. 6·25 때 군에 가가 선생들이 많이 죽어가, 고등학교 2학년 이상 수료자에 한해가 준교사 시험이 있더라고. 교사생활을 저 강남학교에서 안 했나. 쪼매하다가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정교사 된다고 해가 울산고등학교 생겨서 3학년에 편입했지. 1년 딱 했지. 

한국은행 자리, 옛날에 일본에서 귀환 동포들이 와서 슬레이트 집 지어놓고 살았다고. 그러다가 저쪽에 울산여상 밑에 가면 신흥마을이라고 있어. 그리 옮겼다고. 밤에 글 가르치고 했어요. 그래 없는 사람들 가르치니까 참 좋더라. 낮에 강남학교에서 가르치고, 밤에 신흥마을 사람들 가르치고. 낮에 월급 좀 타고 그거 애들 불쌍해서 밥 사주고, 뭐 사주고 그랬지. 

1963년 정치활동.


◆결혼은 스물셋에 했지

나는 결혼할 때, 부산 가서 교육받고 오니까 아버지가 나도 모르게 날 받아놨더라고. 정치한다고 서울 따라갈 때 결혼했지. 아내는 집에 놔두고. 그러니 고생을 그만큼 시켰다고. 그래도 오다가다 해도 아이가 너이나 낳았다고. 딸 둘이 낳고 아들 둘이거든. 다 번창하게 잘 살아요. 빚 없이 살아요.

◆3·15 부정 선거의 경험

나는 야당 한다고 내 도망 댕기고, 부산 대천동 가서 최영근 씨 민주당 사무실에 있었다고. 3·15선거 그때 조병욱 박사 안 돌아가셨나.

그래 부통령 선거하는 데 장면 박사 나왔다고. 우리 할마이 장가거든. 그때 3인조, 서이서 조 짜가, 무조건 1번 찍는다. 대통령은 이승만 씨가, 조병욱 박사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부통령을 이기붕이가 해야 되니까, 투표하러 가니까 “니 빨리 도망가라”고 하더라. 가면 맞아 죽는다고.

그리고 우리 집사람이 여기 이웃 아주머니들 서이 가서, 우리 집사람이 대장이라. 가서 이기붕을 찍어야 되는데 전부 장면을 다 찍어버린 거라. 교실 위에 뚫어놓고 순사가 내려다보는 거야. 갔으면 난 죽었지. 야당 성향의 사람은 아예 투표 행위 자체를 못 했지.

방세 받기 위해 지은 신정동 자택.


◆건축업과 신정동 구획정리사업에 뛰어들다

68년도에 정치 활동을 정리하고 집에 오니 아무것도 없어. 지금 신정 3동에 태화 관광 사무실 있제. 그 뒤에가 시에서 구획정리를 해가 아무도 집을 못 지으니까, 거기 100평씩 200평씩 안 줬나. 그래 누가 집 장사하자고 하더라. 그래 땅을 50평을 사서 집을 지은 거라. 

70년대지. 택지 조성은 되었지만, 집은 없고, 보리도 심어놓고. 그때 집 아무 때나 실실 지어가 올라가면 사고, 사고, 2배 3배씩 남았어요. 79년도 여기 10만 7천 평 구획정리 허가를 받았어. 시청 옆에 여기가 젤 집을 많이 지었거든. 나도 많이 지었어요. 나는 한 150채 지어서 팔아먹었으니까네.

내보고 “길 건너 저기는 다 도시생활 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나, 여기도 구획정리 해 두가!”하는 거라. 79년도에 3억 현찰로 시작을 했는데, 얼마나 큰 돈이야. 밀어놓고 나니까, 돈도 다 떨어져 버리고, 빚이 한 1억 2천 돼요.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고 땅값이 오르는 데, 신정초등학교 옆에 그 보면 금탑아파트, 옛날에 오래된 거 있다. 누가 사러 왔는 기라. 찾아 댕기면서 절하고 잘못했다고 하고. 다 갚고 나니까 한 5일 걸리더라. 

◆새마을운동으로 남산에 나무를 많이 심었죠

새마을, 내가 초기 아니가. 내가 2기 아니가. 야당 하다가 여당에 도장은 안 찍었지만 저절로 여당이 된 거야. 남산공원에 가면 이런 큰 나무 있다. 벚꽃나무 같은 거 그거 다 내가 심은 거 아이가! 요새 가보면 흐뭇하다고. 태화호텔 뒤에 가면 위에 아파트 있고 그 중간에 나무 꽉 안 있나! 그거 다 통장들 데리고 가서 내가 다 심었다. 

◆울산의 변화 속에서 살다

울산극장 그게 제일 먼저 생겼지요. 그건 왜정시대에도 있었으니까. 옛날 소방서 그 건너편에 거기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몰래 들어가고. ‘목숨을 내게 맡겨라’ 해사며 그런 영화를 상영했어. 국산 영화는 ‘용팔이’ 같은 거, ‘의리의 사나이’ 그런 거 좋아했지. 돈이 있어야 자주 가지. 백화점이 뭐 있나. 중앙시장하고, 성남시장밖에 더 있었나.

그 미도파 백화점이라고 그 옆에 있었어요. 동구가 많이 변했지. 그때 집도 별로 없었잖아. 중공업 있었고. 자동차 거기는 옛날에 우리가 장어 잡아먹었거든. 거기에 구멍 뚫린 데 이래 파면 장어 나온다고. 그래 양정 장어집이 지금도 있잖아. 유명하잖아. 

◆동제와 남산 산신제 

해방되고 동사무소에서 동제를 지내고. 제사를 못 지냈으니까. 왜놈들이 와가 놋그릇하고 다 뺏어가요. 병참 그 한다고. 남산 산신제, 그거 내가 만든 건데, 매년 정월 보름에 하다가 올해는 추워가지고 3월 15일에 하기로 했어.

어른들이 만들 때, 그 이만욱 씨라고 등산 갔다가 새벽에 내려오시다가 차에 받혀서 죽었거든. 산신제 비용은 우리가 기부해서 하지 뭐. 내가 제일 많이 냈지. 주리원백화점 사장이 자기 아버지 제라고 50만 원 냈지. 

    정리=이다예 기자 yeda0408@iusm.co.kr
    제공=울산발전연구원 울산학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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