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령 울산시교육청 주무관

며칠 전 자료수집을 위해 언양에 있는 문학관을 방문했다. 오누이의 전설로 ‘꽃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란 뜻을 지닌 화장산(花藏山) 기슭에 자리한 아담한 오영수 문학관은 올해로 생긴지 5년차에 접어든다. 울산 최초의 문학관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토속적인 언어로 녹여낸 대표적 서정작가, 오영수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책을 찾아보다 우연히 아는 분의 이름이 기증도서 책꽂이 여러 칸을 채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외의 장소에서 보게 된 반가운 이름에 관장님께 책이 기증된 사연을 물어보게 됐다.
문학관을 열었던 초창기 때의 일이라고 한다. 문학관 도서관에 채울 책을 구하는 던 중 까페에 올려진 글을 보고 연락했다고 했다. 책을 처분한다는 글에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하니, 방문해서 가져갔으면 한다고 했단다. ‘이왕 기부하는 김에 직접 싣고 와 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을 법하다. 그래도 문학관이 열린 이후 첫 책 기증자로 책을 받게 된다는 기쁜 마음에 직접 달려가셨다고 했다. 

문을 열고 마중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이었다고 했다. 그 순간 책을 가지러 오라고 한 이유를 헤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청년은 이사할 때마다 300여권이 넘는 책을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해가며 가지고 다녔지만, 계속 늘어나는 책을 더 이상 옮겨 다니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꼼꼼하게 묶여진 수 백 권의 책들이 수십 년간 동거 동락해 온 주인의 품을 떠나, 이제 만인의 책이 되어 영원한 자리로 옮겨갔을 장면이 뭉클하게 그려졌다. 관장님은 청년이 기증한 손 때 묻은 책들 한 권 한 권 마다 정성스레 ‘기증도서’ 고무인을 찍으며, 오랜 시간 책을 살펴보게 되었다고 했다.

올해는 ‘울산학생 책읽는데이’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해이다. 가족, 친구, 사제, 이웃 간 책을 통한 기부, 따뜻한 책나눔이 더 많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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