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91명이 죽는 미국의 총기살인
‘총에는 총으로’라는 역설 속에
줄어들 기미 없어 ‘다음은 나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성폭력 고발
뒤늦게 ‘성차별적 권력구조’ 탓 진단
‘낡은 법’은 처벌 막는 걸림돌로 작용

 

김병길 주필

교회에서 열린 합동 결혼식에서 신도들이 AR-15 소총을 들고 있었다. 2월말 미국 펜실베니아주 뉴펀들랜드 통일교 교회 일부 신도들은 총알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플로리다 총격 사건 이후 총기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교회 측은 총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쇠지팡이를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소총을 지참한 이 교회 행사 때문에 인근 학교들은 이날 휴교했다.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분노한 미국 고교생들은 소셜미디어에 ‘#미넥트스(#Me Next?·다음은 나인가?)’ 검색 태그를 붙이며 총기 규제 운동에 나섰다.

현대 미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총기는 2억7,000만 정으로 추정된다. 미국 인구가 3억 2,000여 명인 것을 감안해 한 사람이 1정씩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약 84%의 국민이 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 해에 미국에서 생산되는 총기 수는 약 890만 정에 이르며, 정부에 등록된 총기 수만 2017년 8월 기준 443만6,096정이다. 총기로 인한 사망자 수는 한 해 평균 3만3,367명이다. 하루 평균 91명이 총에 맞아 저 세상으로 가는 꼴이다.

1991년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낸 총기 난사 사건은 2017년 10월 라스베이거스 사건으로 순식간에 58명이 숨졌다. 2016년 플로리다 올랜도 나이트클럽에서는 49명이,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는 32명, 2012년 코네티컷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는 27명이 순식간에 숨졌다. 총기 살인사건이 세계 최고로 많은 나라답게 자살 사건의 거의 절반이 총기 자살이다. 

그런데도 현재 미국 총기 규제가 엄격해져야 한다고 응답한 국민은 46%였으며, 지금 규제로도 충분하다고 대답한 사람은 39%였다. 심지어 규제를 더 낮춰야 한다는 사람도 8%나 됐다.
‘한 방’에 보내 버리는 총기 난사 사건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데도 왜 총기 규제 관련 입법은 쉽지 않을까. 이익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건국 정신’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1791년 수정 헌법 2조에는 ‘잘 훈련 받은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국가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18세기 미국의 선조들이 자기 총으로 무장한 채 영국과의 독립 전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서부 영토를 개척한 역사에는 총이 앞장섰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미국 국민은 건국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기 무장을 통해 중앙정부 권력을 견제하고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따라서 ‘총에는 총으로’라는 역설이 난무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학교 총기 사건을 겪은 유족과 학생을 만난 자리에서 “총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교사가 있었다면 참사를 빨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교사 노조는 “교사는 교사여야지, 저격수가 되어서는 안된다”며 비난했다.

 또 ‘나쁜 사람의 총질을 막으려면 좋은 사람이 총질을 해야 한다’는 궤변까지 난무했다. ‘#Me Next?(다음은 나인가?)’라는 태그가 허공에 맴돌고 있다.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촉발한 대한민국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단 한 방에 보내버리는 미국의 총기살인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안보인다. 눈 뜨고 일어나면 새로운 미투가 터져 나온다. 드디어 민주화 흑역사기에 ‘운동권 영재’로 알려진 도지사까지 ‘한 방’에 보내드렸다.
언론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폭로’ 보도에 허겁지겁이다. 세상의 방부제가 예술이고 예술가라고 생각 했는데 그 믿음이 바닥부터 무너지는 요즈음이다. 도덕성 없이 예술적 성취만으로 군림하는 시대는 끝났다.

파토스(각성)에만 함몰돼 에토스(도덕성)를 외면했던 이른바 ‘꼰대’들에 대한 고발과 비판은 쉽게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자의 순결을 빼앗고는 잠시 ‘미안’해 하다가 점점 뻔뻔해져서 오히려 여자를 구박하는 시대가 이어져왔다. 가해자의 죗값을 피해자가 치르는 이 불의(不義)는 유교 문화권 여성만의 운명은 아니었다. 토마스 하디의 여주인공 ‘테스’의 비운이 전세계 여성을 울린 것을 보면 한 때 서양에서도 여성은 절대 약자였다. 

남자들은 그들에게는 일시적 오락, 자극 추구에 불과했던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이 피해 여성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여성단체에서는 이런 비행에 성명을 냈다. 뒤늦게 ‘성차별적 권력 구조’의 산물이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권력’이란 ‘절대 반지’는 어느 정도 내공의 사람이 끼어야 정체성이 변질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권력 구조는 그 범죄를 행하고 은폐토록 한 장치이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인면수심(人面獸心) 의 인간이다.

뒤늦게 미흡한 미투 대책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성(性)과 관련한 인식은 빠르게 변했는데 50년도 더 된 낡은 형법은 이를 전혀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성범죄의 처벌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행위를 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법이 있어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결, 숨결, 살결이라는 말이 있다. 나무 중에도 유난히 ‘결’이 아름다운 나무는 한층 돋보인다. 사람도 누구나 결대로 살길 원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엇결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결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있는대로 바라보는 자세와 함께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자신을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만큼 상대 존재를 인정하는 연습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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