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디자인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 ‘글자’
책 디자인에도 글에 대한 해석·독자 배려 담아야
형식과 내용 조화로운 타이포그래피 지향하길  

 

이충호 울산대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교수

글자를 다루는 일은 시각디자인에서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시각디자인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등 이미지를 주로 다뤄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대학에 들어와 디자인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글자를 다루는 것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학생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글자 다루는 것을 왜 배워야하는지는 디자인이 된 것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아주 적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디자인에 글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글자를 다루는 것을 시각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전문 용어로 ‘타이포그래피’라고 부른다. 

언뜻 생각하면 타이포그래피는 쉬운 일처럼 보인다. 특히 아무런 이미지 없이 글자가 주를 이루는 책을 보면 디자이너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글의 내용이야 저자가 쓴 것이고 디자이너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 그 글을 배열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결과물의 완성도를 위해 글자체, 판형, 그리드, 제본 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고,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디자인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지금은 책이나 포스터 등 전통적인 인쇄 매체뿐만 아니라 인터넷, 모바일 등 다양한 환경에서 타이포그래피가 사용돼 범위도 상당히 넓고, 결과물에서 보여지는 모습도 실용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에서부터 실험적인 것 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글을 읽는 이유는 글 속에 담긴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정보의 성격은 다르더라도 모든 글에는 일정한 정보가 들어가 있고, 타이포그래피는 이 정보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글의 내용은 디자인을 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것으로 글이 담고 있는 의미에 따라 디자인 방향이 결정된다. 전문 서적과 동화책 모두 글자가 들어가 있지만 같은 방법으로 디자인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글의 내용과 이를 읽는 독자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의 글자는 크고 글의 양은 적어야 한다. 보통 글은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단어를 바탕으로 읽히게 되는데, 아이들은 아직 알고 있는 단어의 수가 많지 않고 글자의 형태도 익숙하지 않아서 한 번에 많은 양의 글을 읽기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전문 서적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내용이 어렵기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전문 용어들이 많아서 책을 읽는 것이 더디게 된다. 장시간의 집중을 요구하는 전문 서적의 경우, 불필요한 레이아웃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본문의 글자체는 장식이 많기 보다 오랫동안 읽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은 편안한 형태를 선택해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자이너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매크로한 접근과 마이크로한 접근을 오가며 디자인해야한다. 

매크로한 접근은 넓은 시각으로 글의 내용을 보는 것으로 글의 전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고 디자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책을 디자인하는 경우 책의 내용을 표지에서 내지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체적으로 어떻게 반영할 지에 관한 계획이 이에 해당한다. 마이크로한 접근은 디자인 방향을 구체화하기위해 여러 요소들의 디테일한 조정 등 아주 작은 부분까지 디자이너가 신경 쓰는 것으로, 디자이너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아주 섬세하게 보이게 된다. 

뛰어난 디자이너일수록 단순히 글자의 배열에 그치지 않고, 글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해석을 보여주려고 한다. 디자이너가 단순 작업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디자이너의 해석 능력에 따라서 타이포그래피가 더욱 돋보이게 된다. 
형식과 내용이 잘 어우러지는 사려 깊은 디자인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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