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
최대치가 150명선이라는 ‘던바의 수’
‘인맥 숫자 3배수로 증가한다’ 법칙도

1948년 95.5%였던 투표율 최근 급락
대부분 ‘나의 한 표 영향력’ 기대 안해
후보자들 나의 ‘진짜 인맥’ 파악나서야

 

김병길 주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을 맹공하고 있다. 중·소상공인들을 옹호해 오는 11월 중간 선거에서 이득을 보기 위한 전략이다. 한편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계속하고 있는 아마존 CEO 제프 베이스 소유 워싱턴 포스트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6,300만 표를 득표했지만 9,000만 명에 이르는 배송서비스 회원이 포진하고 있는 아마존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150은 ‘던바의 수’라고 부르는 숫자다. 옥스퍼드대 인지·진화인류학 연구소장을 지낸 로빈 던바는 오늘날 인류가 거대한 도시에 살고 있지만 몇십만 년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로 이 숫자를 예를 든다. 한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을 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뇌는 인류를 진화시킨 가장 큰 무기다. 인류는 집단 생활을 하며 뇌를 발달시켰고, 발달된 뇌는 역으로 더 많은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사회적 뇌 가설’로 그는 유명세를 얻었다.

던바는 수십년 동안 다윈의 위대한 통찰을 지렛대 삼아 연구해 발견했다. 인간의 뇌는 150명 이상의 정보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던바의 수’를 검증하는 데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단을 연구해야 됐다. 따라서 수렵 채집 인간들의 생활양식에 주목했다. 인구 자료를 구할 수 있는 20여 개의 부족 사회를 조사해 통계를 냈더니 친밀하게 주기적으로 성인식을 치르거나 샘물을 공동 소유하는 씨족 형태 집단의 구성원은 평균 153명이었다.

직접 실험도 했다. 친구들에게 연말 성탄 카드를 얼마나 보냈는지를 알아 본 결과 평균 68곳에 보냈으며 이들의 가족 수는 약 150명이었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조직 이론은 직접 대면 업무를 할 수 있는 최대치를 150명 이하로 잡는다. 

1950년대 이래 사회학자들은 150명 이상의 조직에서는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공식적인 계층 묶음이 필요했다. 군대에서도 소대는 보통 30~40명, 중대는 130~150명으로 구성된다. 이는 로마군의 기본 단위인 보병중대 130명에서 비롯된 전통이다.

전통사회의 마을 규모도 이와 비슷하다. 중동 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6000년 쯤 신석기 시대 촌락은 집의 수로 따져볼 때 120~150명을 수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086년 윌리엄 1세의 명령으로 작성된 ‘토지대장’에 따르면 잉글랜드 마을의 규모 역시 약 150명이었다. 공동생활과 재산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종교 공동체도 150명이 넘으면 둘로 갈라졌다.

이들은 150명이 넘으면 동료 집단의 압력만으로 개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봤다. 공동체를 유지 시키는 힘은 상호 의무감과 호혜주의인데, 150명이 넘으면 이 두가지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인류는 인간의 관계 맺기 기술이 큰 변화를 맞았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윈 시대 교제 범위의 시공간적 제약이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에는 수 천 명의 친구를 거느린 소수가 존재하지만, 대다수는 친구의 수가 100~200명이라고 던바는 주장한다.

12~15명 규모를 ‘공감 집단’이라 부르는데 신기하게도 재판정의 배심원단의 숫자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나 스포츠팀이 모두 이 규모에 속한다.

내가 사는 동네를 좋은 동네로 바꾸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선거일 것이다. 하지만 투표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치러진 1948년 총선 투표율은 95.5% 였으나 최근의 총선 투표율은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저조한 투표율로 당선된 사람을 지역의 대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왜 많은 사람이 투표에 관심이 없을까. 자신이 뽑고 싶은 사람을 선별하고 선출하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한다고 해서 과연 자신이 원하는 정치인이 선출될까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대부분은 자신의 한 표가 그 사람의 당선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한다. 유권자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투표장에 갈 이유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투표하지 않을 것인데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던바의 수’는 영장류는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적 특성이 진화적 돌파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관한 적확한 증거다. 또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의 승리는 왜 당연한 것이었는지, 피는 왜 물보다 진한지 등의 궁금증에 관해서도 진화심리학은 재치 있게 대답해준다.

‘던바의 수’ 가설을 보완해 내놓은 ‘3의 배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가 가장 친밀한 관계에서 시작해 친밀함이 느슨해질 수록 인맥의 숫자는 최대 3배수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가족 같이 아주 친밀한 관계는 3~5명, 친한 친구는 15명,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50명, 조직은 150명 정도, 이 관계가 더 느슨해지면 500명, 1,500명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사회 관계망이 확장되더라도 관계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 피로를 느끼게 돼 관계 정리에 들어가게 된다. 

무엇보다 ‘던바의 수’는 인간이 왜 지나치게 방대한 사회적 관계와 소셜미디어에 피로감을 느끼는지 설명해 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결론은 수많은 유권자 가운데 ‘나의 진짜 인맥’ 150명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당락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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