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는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는 일을 한다. 그 열매는 사회가 거둔다. 나이 드신 스승은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찾아보는 때가 있다. 제자들이 성공해서 훌륭하게 되었을 때가 가장 자랑스럽다.

고향시(交響詩)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가 어느 시골 마을을 여행 했을 때 그곳 극장에서 ‘리스트의 제자인 여성 피아니스트가 연주회를 연다'고 떠들썩 했다. 그러나 리스트는 그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날 한 여성이 호텔로 찾아와 사과했다. “선생님의 이름을 빌지 않으면 연주회에 올 사람이 없어 마음대로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연주회를 중지하겠으니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리스트는 호텔 피아노 앞에서 그 여성의 연주를 들어 보고 잘못을 바로잡아 줬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피아노 연주를 가르쳤다. 이로서 나의 제자가 됐다. 오늘밤 리스트의 제자로서 연주회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교수님의 가르침은 저희를 꽃 피우려는 플로리겐(florigen·식물의 눈꽃을 형성하는 물질) 입니다.' 고려대 생명과학부 학생회에서 공모해 뽑은 스승의 날 현수막 문구다. 스승의 날을 맞아 내건 ‘감사 현수막'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16년 9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도입되고 부터다. 교수에게 선물은 물론 카네이션 전달도 조심스러워지면서 생긴 새로운 풍경이다.

초·중·고교 교사들도 ‘음료수 한 병 못 받고 꽃 한 송이도 부담스럽다. 온종일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다'면서 스승의 날 재량 휴업하는 학교도 늘었다. 특히 교권이 땅에 떨어진 요즘은 학교에서 ‘엎드려 절 받기' 같아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사라지면서 ‘축하 받지 못하는 스승의 날' 현상이 안타깝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피해야 하는 ‘스승의 날'을 설명하기도 쑥스럽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스승이 될 사람이 있다. 그 중에서 좋은 점은 골라서 좇을 것이요, 좋지 못한 점은 살펴서 고쳐야 한다.'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의 얘기다. 글을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기는 쉽지만, 사람을 인도하는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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