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목관 홍세태가 남긴 조선 후기 울산의 생활·문화 9. 말몰이의 노래(하)

 
이정한 교사
말몰이의 노래(하)

방어진의 말몰이 지금 다시 돌아오니
목장은 대낮에 문을 활짝 열었네.

많은 말 달려갈 땐 흘러가는 구름 같고
용의 몸에 범의 날개단 듯 바람과 우뢰 타고 올라가네.

잘 달리는 말은 땅에 넘어져도 어미 말을 뛰어넘고
무리 중에 뛰어난 놈 굳세고 용맹한 재주 있네.

번쩍이는 붉은 굴레 목에 한번 걸어 두면
길가는 사람은 감히 가벼이 손 휘두르지 못 하네.

이곳은 본래부터 좋은 말의 소굴이라 불리는데
뛰어난 말은 대완(大宛)의 천리마 후손임을 알겠네.

감목관으로 말을 보고 백성들을 접해보니
사랑으로 좋은 말 보살피는 것도 특별한 도리가 있네.

천하의 이름난 말 따질 것도 없으니
모양 색깔 보지 않아도 신통하게 알 수 있네.

발걸음 끊기고 한번 거두어들이면 산과 들은 텅 비는데
구름 같은 넓은 모래 벌엔 바닷바람만 슬피 우네.
 

홀로 앉아 방성(房星)의 정기 어린 빛을 바라보니
용궁에 잠든 늙은 교룡 비춰주는 한밤중의 등불이네.
말은 옛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말을 부림에 편하게 할 목적으로 온갖 기구들이 많았다.

재갈과 굴레, 안장과 배띠 심지어 채찍까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말 말굽에 박는 대갈까지 사용하였다. 하지만 목장의 말들은 전시를 대비하여 특별히 사육하였으므로 대갈과 같은 기구들을 착용하지 않았다.

 시의 세 번째 단락은 13구에서 18구로 ‘천하의 이름난 말 따질 것도 없으니 ~ 용궁에 잠든 늙은 교룡 비춰주는 한밤중의 등불이네’까지이다.

 우리나라의 말은 그 품종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신라의 말은 덩치가 컸으나 잘 걷지를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평지를 달리기에는 좋았으나 산악을 오르내리는 것은 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홍세태의 초상

그런데 우리나라의 토종마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과하마(果下馬)는 백제와 고구려의 특산품이었다. 과하마는 몸집이 작았으나 아주 빠른 말로 보폭이 작아서 여자들이 타기에도 좋아서 당시 중국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키가 작아서 나무 밑으로 지나다닐 수도 있었고,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적합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13구와 14구에서 의하면
“천하의 이름난 말 따질 것도 없으니
모양 색깔 보지 않아도 신통하게 알 수 있네.”
 
<驪黃牝牡不足論 目無形色方通神>
 
라는 말로 보아 울산 목장에서는 모양과 색깔에 의하여 말의 종류를 구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선시대 각 지역의 목장에서도 해마다 말의 빛깔에 따라 말을 정리하고 각각을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성호사설』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정색도[말의 빛깔로 21필의 말을 구분한 그림]
‘빛깔이 흰 말은 백마(白馬)라 하고, 빛이 희면서 검은 털이 섞인 것은 속칭 설라(雪羅)라 한다. 빛깔이 검은 것은 여(驪)라 했는데, 일반적으로 가라(加羅)라 한다.
철색(鐵色)으로 생긴 것은 철(鐵), 적색(赤色)으로 생긴 것은 ‘유’라고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적다(赤多)라 한다. 붉은 털과 흰 털이 섞인 것은 ‘하’ 또는 ‘자백마’라고도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부로(不老)라 한다.

적흑(赤黑)색으로 생긴 것은 ‘오류’, 자흑(紫黑)색으로 생긴 것은 ‘자류’라 한다. 푸른 털과 흰털이 섞여 총청색으로 생긴 것은 총(?)이라 한다. 푸른 털과 검은 털이 섞인 것은 ‘철총’이라 한다.

푸르고 검은 빛깔에 물고기비늘처럼 얼룩진 것은 ‘연전총’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백잡모(驪白雜毛)가 섞인 것은 ‘보’ 또는 ‘오총’이라고도 한다.

얇게 검은 빛이 돌면서 잡 털이 조금 섞인 것을 ‘인’ 또는 ‘이총’이라고 한다. 그리고 얕게 푸른빛을 띠면서 잡 털이 조금 섞인 것을 ‘추’라고 한다.

한편, 초한지의 항우가 탔던 명마가 추이다. 누른 털과 흰 털이 섞인 것은 ‘비’라고도 하고 또는 도화마(桃花馬)라고도 한다.

누른 빛깔에 흰 빛이 나타나는 것은 표(驃)라 한다. 등마루가 검은 것은 골라(骨羅)라는 것이고, 갈기와 몸의 빛이 다르게 된 것은 속칭으로 표(表)라 하였다. 눈이 누른 것은 잠불(暫佛)이고 이마가 흰 것은 구(駒) 또는 대성(戴星)이라고도 한다. 갈기가 어설프고 이가 성긴 것은 간자(間者), 주둥이가 흰 것은 거할(巨割)이라고 한다.
전갈자리.
이처럼 옛 사람들은 말의 빛깔에 의해서 말의 종류를 구분하였다. 홍세태의 시를 통하여 보았을 때 울산 목장에도 다양한 색깔의 말이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철산‧선천 목장에서는 ‘달종마’라는 종마[種馬-번식 숫말]를 번식하여 각 목장으로 보급하였다.

또한 외교적인 방법을 통하여 호마(胡馬) 등 외국의 종마를 국가 차원에서 사들인 기록도 있다. 그러므로 울산의 목장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말들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위의 ‘천하의 이름난 말 따질 것도 없으니, 모양 색깔 보지 않아도 신통하게 알 수 있네.’라는 구절에서는 짧은 감목관 기간이지만 말을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음을 말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인 신분으로 홍세태의 입장에서는 좋은 말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듯 인재를 채용함에 인물을 알아보는 능력이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모양과 색깔만을 보고도 좋은 말인지를 안다는 그의 말은 결국 엄격한 신분제도 속에서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보듯 신분적인 한계를 넘어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재능은 있으나 늦은 나이에 감목관이라는 직책의 말단 지방관을 해야만 했던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마지막 구절은 17구와 18구의 ‘홀로 앉아 방성(房星-말 수호별)의 정기 어린 빛을 바라보니, 용궁에 잠든 늙은 교룡 비춰주는 한밤중의 등불이네.’라는 문구에서는 감목관으로서의 여유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방성(房星)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전통적인 별자리인 28수(宿)의 하나로 말과 관련된 별이다. 청룡 7수(宿)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하며 4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방성은 천자를 보위하고 천마를 관장하는 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말은 제왕 출현의 징표로서 신성시했으며 초자연적인 세계와 교통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은 말이 전해준 알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고구려 시조 주몽이 타고 땅 속을 통하여 조천석(朝天石)으로 나아가 승천했다는 기린말도 말을 신성시한 징표로 볼 수 있다.
방성- 전갈자리의 4개의 별.
한편, 위의 시에서 말한 방성은 일명 ‘마조(馬祖)’라고도 한다. ‘마조(馬祖)는 말 수호신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말의 건강을 위한 마조제(馬祖祭)를 오래전부터 지내왔다.

그런데 마조제(馬祖祭)에 대한 첫 기록은 고려시대에 나타난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정종 12년(1046) 2월에 마조(馬祖)에 제사를 지냈다.’ 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의 마조제는 마조단(馬祖壇)에서 소사(小祀)로 거행하였는데, 2월 중에 좋은 날을 받아 제사를 지냈으며, 희생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썼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거행하였다.『세종실록(世宗實錄)』「오례(五禮)」에 따르면, ‘소사로 중춘(仲春, 2월) 중기(中氣) 후의 강일(剛日)에 마조제를 지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후 임진왜란으로 국가 의례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다가 정조 21년부터 국가의례로 시행되다가 1908년 7월에 마조제(馬祖祭)는 폐지되었다.

 위의 시를 보았을 때 새벽 일찍 시작된 말몰이는 이미 방성별이 반짝이는 한 밤중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홀로 앉아 이러한 방성(房星)의 정기 어린 빛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목장의 말들이 무사하고 순조롭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알 수가 있다.

다음 구절에서‘방성(房星)의 그 별빛이 용궁에 잠든 늙은 교룡 비춰주는 등불’이라고 하는 것은 즉, 용이 되어 하늘에 승천하지 못한 교룡처럼 재주는 있었지만 세상에 크게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미 늙어버린 자신을 교룡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또한 방성이 이러한 교룡을 비춰주는 등불이라는 의미에서 초자연적인 세계와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말과 그것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인 방성에 대하여 동경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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