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 제목 유혹에 빠지는 숙명
너무 튀는 ‘낚시성 제목’ 독자들 오도
팩트 뒷받침 안되는 기사는 신뢰 상실

‘헬조선’ 등 유행어 젊은이 사기 저하
무지하고 편향된 기자 ‘기레기’로 불려
‘책임·겸손’ 창간27주년 남기고 싶은 말

 

김병길 주필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쉰다. 물 속에 산소량이 적어지면 자연히 숨이 막혀 죽는다. 물이 마르기 시작하는 연못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물의 양이 줄어들면 몰려든 물고기들이 앞다투어 산소를 모두 마셔버린다. 보통 물 속에 산소가 부족하면 수면으로 떠올라 산소를 들이마시지만 물고기도 물에 빠져 죽기는 시간 문제다.

‘火(화) 키우는 시한폭탄 33만채’. 2015년 1월 12일자 한 종합일간지의 1면 톱기사 제목이다. 이 신문은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발생한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로 1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허술한 소방안전 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같은 제목을 달았다.

33만 채는 전국에 지어진 도시형 생활주택 총량이다. 따라서 기사를 읽은 독자 입장에선 도시형 생활주택이 시한폭탄처럼 매우 위험한 주거공간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신문의 보도 흐름은 취재와 기사 쓰기, 그리고 편집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독자들과의 최우선 접점은 편집이며 그 중에서도 제목 달기다. 독자들은 기사를 읽기 전에 제목부터 본다. 제목이 눈길을 끌어야 기사를 읽고 기사를 읽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치기 일쑤다. 촌철살인의 제목 한 줄, 그 유혹에 빠지는 것이 기자들의 숙명이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독자가 더 많은 요즘 뉴스 소비 행태에서 제목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무한경쟁이나 다름없는 신문업계 현실에선 ‘섹시한 제목’, ‘튀는 제목’에 대한 유혹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른바 낚시 같은 제목이 등장하는 배경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최근들어 제목 달기의 자율성이 상당 부분 용인되는 점을 감안해도 과도하다싶은 제목은 여전히 적지 않다. 이는 윤리위원회의 제재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제목’은 무엇일까. 신문윤리강령은 명쾌하면서도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문의 표제는 기사의 요약적 내용이나 핵심적 내용을 대표해야 하며 기사 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자는 아는 것만 쓰고 편집자는 그 기사 내용에서 제목을 뽑는 것이지 편집자가 바라는 것을 제목으로 달아선 안된다는 얘기다. 제목을 이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제목이 기사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독자들을 오도하고 한 쪽 방향으로 유도한다고 의심받을 경우 해당기사는 객관성을 상실하게 된다. 기사의 공정성도 믿을 수 없을 뿐더러 이런 일들이 쌓이면 결과적으로 신문의 신뢰성에 금이 가고, 결국 저널리즘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의도와 주장이 앞서다보면 결국 팩트가 뒷받침되지 않는 제목이 돌출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제주도에 500여명의 예멘 난민이 들어오면서 국내 ‘난민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난민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은 있을 수 있다. 난민을 대량으로 수용한 유럽 국가에선 난민이 정치·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하지만 100만명의 난민을 수용한 독일 등과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행히 많은 언론들이 ‘팩트 체크’를 통해 난민과 관련된 가짜 뉴스들을 바로잡고 있다. 난민 혐오가 팽배한 가운데 ‘가짜 난민’ 프레임을 강화시킬 수 있는 내용들도 많다. 난민제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할 지 공론화하고 다듬어갈 기회다.

2차 대전 당시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독 한 방의 수감자들이 눈에 띄게 건강이 좋았다. 이를 유심히 보고 연구한 결과, 그 방의 수감자들이 식사 때마다 돌아가며 음식이 풍성했던 잔치의 기억을 나누면서 다른 방의 수감자들과 달리 건강을 유지했다.

요즘은 ‘유행어 시대’가 됐다. 특히 청년층을 조준한 일련의 부정적인 유행어는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약간의 시간적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 거의 1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의 사기저하를 조장하는 일련의 유행어들이 매스컴을 통해 유독 빠르게 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18세기 잡지 ‘소년’을 창간하면서 최남선은 일본이 유포한 토끼모양의 한반도 지도 대신, 앞다리를 쳐들고 도약하는 자세의 전통적인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 지도를 창간호에 실었다.

대학의 캠퍼스에서 생겨나 언론을 통해 회자된 ‘헬조선’이라는 유행어가 한국청년들의 기운을 빠지게 했다. 그와 비슷하게 일종의 분노와 비애감을 조장하며 결국에는 다 소용없다는 포기론을 유도하는 ‘금수저’, ‘흙수저’ 운운하는 유행어들, 이같은 유행어들을 읊조리다 보면 그나마 남은 도전의식조차 슬그머니 영향을 받아 수그러든다.

언제부턴가 쓰레기 같은 기사를 쓰는 기자를 ‘기레기’라 부르고 있다. 극히 일부 무지하고 편향된 기자들이 ‘기레기’로 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나태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또한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기레기’를 벗어나려면 항상 배우는 자세로 연구하고 고민하고 자기 기사에 책임을 지고 겸손해야 한다. 당당한 자존심과 오만은 다르다. ‘물고기도 물에 빠져 죽을 때가 있다.’ 울산매일신문 창간 27주년을 맞아 남기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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