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텔레그램 대화 삭제 등 의문점 많아"
"피해자 심리상태 떠나 피고인이 위력 행사한 정황 없어"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위를 이용해 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4일 열린 이번 사건 선거공판에서 안 전 지사의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였던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를 상대로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지난해 7월 30일 러시아 출장 당시 있었던 첫 번째 간음 행위와 관련해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고 보고 이를 무죄 판결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최초 간음이 어떻게 발생했는지가 중요하다"며 "전체적으로 그 경위와 정황에 대해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불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는 최초 간음에 대해 전임 수행비서에게 호소했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전임 수행비서와 당시 자주 통화한 사정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피해를 진술했다는 내용과 전임 수행비서가 들었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며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이 충분히 뒷받침된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 주장에 따르더라도 간음행위 전 단계에서 피고인의 신체 접촉은 맥주를 든 피해자를 포옹한 것이고, 언어적으로는 '외롭다. 안아달라'는 것이었다"며 "이를 위력의 행사로 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얼어붙는 상황일 정도로 매우 당황해서 바닥을 보며 중얼거리는 식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며 "그러나 (간음 후 아침에) 러시아에서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를 하는 식당을 찾으려 애쓴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다니던 미용실을 찾아가 미용사로부터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등이 있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는 업무 관련자와 피고인뿐만 아니라 굳이 가식을 취할 필요가 없는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존경하고 지지했다"며 "이런 사정을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단지 간음 피해를 잊고 수행비서로서의 일로서 피고인을 열심히 수행한 것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8월 13일 있었던 두 번째 간음 관련 혐의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씻고 오라'고 했는데 시간, 장소, 당시 상황, 과거 간음 상황 등에 비춰 그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9월 3일 세 번째 간음, 올해 2월 25일 네 번째이자 마지막 간음에 대한 김씨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특히 네 번째 간음과 관련해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는, 피해자가 이 간음 이후 증거를 모으고 고소 등 준비에 들어가게 되므로 주요한 증거일 것인데 모두 삭제된 정황 등을 볼 때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가는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26일 있었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스스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를 만지는 행위를 용이하게 했다"고 봐 업무상 위력과 관련한 혐의 5건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사이의 일이고, 저항을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 강제력이 행사된 구체적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 진술"이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혐의와 관련해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둘 사이가 위력 관계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개별 공소사실을 두고는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때 김 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위력 관계가 존재하지만 안 전 지사가 이를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상황에서 피해자 심리상태가 어땠는지를 떠나 피고인이 적어도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없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제추행 혐의 5건에 대해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성적 자유가 침해되기에 이른 강제추행 행위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명이 모두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피해자 진술처럼 지속적으로 수시 성적 접촉이 있었고 그중 기억나는 대표적인 것만 공소사실로 구성된 것이라면 이는 업무상 상하관계에 기초해 그 행위가 반복됐다는 취지로 볼 것이어서 법 적용상의 의문도 있다"며 법리 적용의 타당성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어 무죄 판단을 내리기까지 고려한 요소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은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며 "범행 당시의 제반 사정에 비춰 위력의 행사에 의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정도에 이르러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처벌 가능한 범죄"라고 전제했다.

또 "사회에서 사용되는 성폭력 행위의 의미와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좌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는다"며 "사회적으로 성폭력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해질 도덕적 비난과 형사법에 규정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이런 책임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으나 국민적 합의로 구성된 입법행위에 의해 성폭력 처벌 규정에 관한 체계적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이상 사법적 판단에서는 엄격한 해석, 증거법칙에 따른 사실인정, 죄형법정주의에 기초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적 감수성도 판단에 참작한다"며 "피해자의 충격, 불신, 분노, 좌절 등과 2차 피해 등 사정을 고려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증거판단에 있어서 성인지적 감수성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7일 결심공판에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여겨지던 안 전 지사가 헌신적으로 일한 수행비서의 취약성을 이용한 중대범죄"라며 징역 4년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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