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열에너지 93% 바다가 흡수
이제 슈퍼온실시대 바다도 감당 못해 
폭염주의보 기록 갈아치우는 올여름

무심코 배출한 CO2가 떠돌면서
엄청난 열에너지 쌓으며 지구 달궈
도시 녹지·바람길 마련 등 서둘러야

 

김병길 주필

산신령 : 이 한파가 너의 것이냐? 한국인 : 아닙니다. 시베리아의 것입니다. 산신령 : 그럼 이 미세먼지가 너의 것이냐? 한국인 : 아닙니다. 중국의 것입니다. 산신령 : 그렇다면 이 폭염이 너의 것이냐? 한국인 : 아닙니다. 북태평양의 것입니다. 산신령 : 오호라 착한 한국인이구나. 세 개 다 가지도록 하거라.

겨울 한파, 봄 미세먼지, 여름 폭염이 이제 ‘착한 한국인’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역대 최장 32일을 기록한 울산 폭염(暴炎)주의보가 기록을 다시 갈아치우고 있다. 사나운 폭(暴)과 불(火)이 포개진 염(炎)은 말그대로 불볕더위다.

요즘 폭염과 비교가 될 수는 없었겠지만 조선 제4대 세종 때인 1434년 여름의 기록에도 가난한 백성들이 폭염에 지쳐 줄줄이 죽었다. 경국대전에는 해마다 여름철 끝달, 즉 음력 6월에 관리와 병자들에게 얼음교환권(빙표·氷票)을 나눠줬다는 기록도 있다.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에 여름철 얼음이 등장하는 것이 신기하다. 이미 삼국시대부터 석빙고(石氷庫)를 만들어 겨울철에 언 얼음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꺼내 썼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에게 여름철 얼음이란 ‘그림의 떡’이 아니라 ‘그림의 얼음’이었을 것이다.

‘32년 만의 폭서’가 이어지고 있던 1978년 7월 26일, 아침 8시부터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가전제품 판매점에서는 500여 명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가게 셔터와 유리창이 부서졌고 판매원 한 사람은 손가락이 부러졌다. 소동은 선풍기 때문이었다. 찜통더위 속 선풍기가 품절된 가운데, 200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서로 사려고 벌인 난투극의 결과였다.

에어컨 시대가 열리기 전 ‘더위와의 전쟁’에서 선풍기는 최고의 무기였다. 찬바람을 만들어 내는 날개 달린 물건은 말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대기 순번표까지 배부된 한여름이면 품절소동을 빚었다.

‘선풍기 대란’이 일어난 1978년엔 대기 티켓 한 장이 1만원(요즘 물가로 약 11만원) 안팎에 뒷거래 됐다.

선풍기 바람도 쏘이기가 어려웠던 1960년대 얘기도 있다. 가뭄으로 수력발전량이 감소하면 정부는 여름 전력 수요를 줄일 궁리에 바빴다. 그때마다 선풍기도 도마에 올랐다. 폭염이 절정이던 1962년 7월 4일, 상공부장관은 국민들에게 “전력사정이 긴박하다”며 “TV, 냉장고와 함께 선풍기 사용을 억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스위치만 누르면 찬바람이 쏟아지는 에어컨 시대에 ‘전기세 누진제’ 소동은 별세계 얘기다.

사상 최악의 올해 폭염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아니다. 한국은 1954~1999년 사이 10년 마다 평균 기온이 0.23도 상승했다. 그리고 2001~2010년에는 평균 0.5도가 오르며 온난화 속도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2012년 발간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는 남한지역 폭염 일수가 연간 10.1일에서, 21세기 전반 13.9일, 중반 20.7일, 후반 40.4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올해도 전문가들은 7월 14일 기상청 설명자료가 나오기 이전에 폭염의 심각성을 언론에 알렸다. 폭염이 본격화 되기 전 전문가들 사이에선 피해를 우려하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와 국회는 뒷북 대응에 나서 소동을 겪고 있다.

70%가 바다인 지구는 ‘지구(地球)’라고 하기보다 ‘수구(水球)’가 맞다. 미국 해양대기청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지금 해수 온도 분포 사진을 보면 한반도 주변 바다가 불이라도 난 듯 벌겋게 채색돼 있다. 일부 해역 바닷물 온도는 섭씨 30도를 넘었다.

지구온난화로 생성된 열에너지의 93%를 바다가 흡수한다. 바다 온난화 열을 계속 흡수해가는 바람에 지구 기온변화가 늦춰졌다. 하지만 어떤 임계점을 지나치면 바다도 더는 그런 완충작용을 못한다. 그러면 지구엔 평균 기온이 5도 이상 급상승하는 ‘슈퍼온실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지금의 ‘불타는 바다’ 사진은 ‘불타는 지구’의 끔찍한 예고편이다. 

올해 전세계의 폭염은 인간이 배출해온 이산화탄소(CO2) 탓일 것이다. 화석 연료를 태우면 두가지 경로로 지구 대기가 데워진다. 우선 화학적 연소(燃燒) 과정에서 열이 나온다. 사람은 그 열에너지로 자동차도 움직이고 발전소도 돌린다. 활용된 에너지는 결국 폐열(廢熱)로 흩어져 지구를 덥히게 된다.

시원한 울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녹지 확보와 가로환경정비 등 시민친화적인 도시 계획이 꼭 필요하다는 학자들의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의 큰 건물을 주요 도로에서 조금 떨어지게 짓는 것만으로도 열섬현상이 완화된다. 녹지와 바람길을 마련하는 등 시민친화적 공간계획을 위한 연구와 정책을 추진한다면 열섬 현상 완화와 대기질 개선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의「택리지」는 사람이 살만한 곳의 입지조건으로 지리와 산수, 생리, 인심을 언급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대에도 삶에 피로한 사람의 심신을 중요하게 여겼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보면 지리는 편리해졌지만 산수는 대기오염으로 즐기기 힘들고, 생리의 가치는 높아졌지만 바쁜 삶으로 인심은 보기 드물다.

불가마와 용광로에 비유되는 폭염을 겪으면서 우리 인간의 잘못에 뭔가 원인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지구 생물의 20~30%가 멸종위기에 몰리고 3도 이상 상승하면 대부분의 지구 생물이 멸종할 위험에 처한다.

불가(佛家)에서는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구업(口業)이 되어 윤회의 세월을 떠돌아 업보로 되돌아 온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배출하고 있는 CO2도 수천년을 떠돌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쌓으며 지구를 달구고 있다하니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풍도 비껴가는 폭염업보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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