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배호 화백
강기원 시인

사랑은……그러니까 과일 같은 것 사과 메론 수박 배 감……다 아니고 예민한 복숭아. 손을 잡고 있으면 손목이, 가슴을 대고 있으면 달아오른 심장이, 하나가 되었을 땐 뇌수마저 송두리째 서서히 물크러지며 상해가는 것. 사랑한다 속삭이며 서로의 살점 뭉텅뭉텅 베어 먹는 것. 골즙까지 남김 없이 빨아 먹는 것. 앙상한 늑골만 남을 때까지……그래, 마지막까지 함께 썩어가는 것…… 썩어갈수록 향기가 진해지는 것……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때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 詩이야기 : 복숭아 철이다. 다른 과일과 달리 복숭아는 층층이 쌓아놓고 팔수가 없다. 살과 살이 맞닿으면 그 부분이 물크러져 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숭아는 하나하나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그 모양과 향기가 아기 엉덩이처럼 사랑스럽고, 두근거리는 심장처럼 에로틱한 복숭아. 여러모로 사랑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복숭아는 이렇게 사이를 필요로 한다. 사이가 좋다는 말은 사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너와 나 사이의 사이를 지우려 한다. 그러나 사랑이 오래 지속되려면 복숭아처럼 어느 정도의 사이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 마주 보며 하는 은행나무 사랑도 있지 않은가. 썩기 직전, 가장 진한 향기를 풍기는 복숭아. 향기가 진할수록 복숭아도 사랑도 유효기간이 짧은 것 같다.

◆ 약력 : 서울 출생. 1997년 「요셉 보이스의 모자」외 4편으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 당선. 2006년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바다로 가득 찬 책』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지중해의 피』, 시화집 『내 안의 붉은 사막』 발간. 동시집 『토마토개구리』 『지느러미 달린 책』 『눈치 보는 넙치』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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