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울주군 서사․척과마을 기록화 사업 현장

공동주택단지 조성으로 내년 6월 마을은 역사속으로
마을 지키던 노거수․주민 수집품 등 사진․영상 제작
주민들 사용하던 장독 모아 ‘항아리 동산’ 조성 논의

서사마을 벼농사 마지막 풍경이 정겹다.

 

10년 가까이 표류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울산 다운2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은 중구 다운동과 울주군 범서읍 서사·척과리 일원 186만 637㎡에 1만 3,557가구 규모의 공동주택을 조성하는 것으로, 현재 주민과 LH간에 보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본격 공사가 시작되는 내년 6월이면 서사·척과리 마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범서문화마당(대표 김봉재)은 지난 연말부터 영상 촬영진과 집필자로 구성해 마을기록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기록화 사업은 기존에 출간된 범서읍지를 참고해 마을 스토리를 역사, 전설, 인물, 주민이야기 등으로 나눠 담을 예정이다. 영상촬영은 김교학씨와 이병희씨가, 집필은 범서문화마당 김봉재 대표가 맡는다.

서사마을 출신 만화가 박재동씨 인터뷰.

이들은 머지않아 고향을 비워줄 수 밖에 없는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은 올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사계절 변화하는 마을 전경과 주민들의 생활, 삶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1년을 계획했다”며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마을에 얽힌 추억, 삶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중구 다운동과 접한 울주군 범서읍 서사, 척과리는 국수봉과 옥녀봉이 감싸고 있고, 척과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에는 울산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들꽃학습원이 있어 울산시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렀을 마을이다.

범서문화마당 김봉재 대표와 둘러본 마을 곳곳에는 재미있는 기록거리가 많다.

서사 마을주민 사진촬영.

젊은 시절부터 농촌계몽운동을 해오면서 옛 농기구, 마을의 생활도구, 전경 사진 등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한 고(故) 김종석 집. 김 씨는 집 한 공간에 전시관 형태로 수집물을 모아 보관했다. 수집물들은 개인 생활사 박물관으로 꾸미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김 씨가 작고한 후 이 곳은 한지 공예를 하는 딸이 작업실 겸 창고로 쓰고 있다. 수집물들은 거의 방치된 상태다. 활용방안을 빨리 찾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을 초입, 제당 인근에 만든 소나무 숲이 사리지는 것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아쉬움이 크다. 이 숲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마을의 좋은 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래전 주민들이 나서 인공적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소나무 숲에 서 있는 당산나무는 200살 이상 된 곰솔로, 높이 23m에 둘레가 2.6.m나 된다. 지난 2000년 5월 울주군 노거수로도 지정됐다.

서사마을 마지막 상점'서사상회'.

주민들은 각 집에서 사용하던 장독들도 기록으로 보존하기 위해 들꽃학습원 근처에 항아리 동산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마을이 사라진 뒤 큰 돈 들여 망향비를 세울 필요 없이 주민들이 직접 쓰던 생활물품이 모인 동산에서 고향을 추억하자는 판단에서다.

조을제 외사마을 이장(63)은 “최근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였다하면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어릴 적 추억이 많은데 고향마을이 사라진다고 많이 서글퍼하시는 동네 주민들의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린다”며 “특히 70~8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살아있겠냐며 한탄하신다”고 말했다.

마을 초입 제당 앞에 만든 소나무 숲. 이 숲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마을의 좋은 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래전 주민들이 인공적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김봉재 대표는 “임대주택단지 공사가 시작되면 택지를 분양받은 대부분의 주민들은 공사기간인 4~5년가량 다운동이나 구영리 임대아파트에 머물다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오겠다고 한다”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오실 때 실망하지 않도록 고향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동네 마지막 점빵 ‘서사상회’와 40년 넘은 외상장부

“촌에 돈 나올때가 있나? 타작하고 돈 생기믄 갚지”

1977년 문 연 유일한 문방구
마을 손님 술 마시고 외상 다반사
학교 없어지면서 동네 사랑방

40년이 지난 외상장부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서사상회의 김영이 어르신.

“촌에 돈 나올때가 있나? 가을에 나락 나올 때하고 보리타작할 때 돈이 생기니깐 그때 갚잖아. 그래서 외상장부를 잘 보관했지”.(김영이 어르신·80).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 울산들꽃학습원(구 서사초등학교) 맞은편 작은 가게 ‘서사상회’.
이 가게는 간판이 없다. 10년전쯤 술을 마신 손님이 가게이름이 쓰인 유리문을 깨버렸는데 동네가 사라진다하니 일부러 돈을 들여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가게는 초등학교가 분교로, 다시 들꽃학습원으로 바뀌면서 문구점에서 동네 유일의 상점이자, 사랑방으로 변신했다.

냉장고에는 막걸리, 매실음료, 식혜음료, 캔커피가, 진열장에는 라면 한종류, 과자 한종류, 까스명수, 종이컵이 전부였다.

“서사초등학교가 있었을 때는 정신이 없었지. 학용품만 팔았나? 연탄불 피워놓고 오뎅도 팔고···. 지금은 그냥 점빵이야”.

가게 주인인 김영이 어르신(80)은 기자를 보자마자 외상장부를 꺼내왔다.
지난 1977년 문방구 문을 열면서 쓰기 시작한 장부는 너덜너덜했다. 조아무개부터 시작해 김아무개, 문아무개, 학교선생님 등 이름별로 분류돼 외상 품목과 가격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1977년 8월 막걸리 가격은 250원, 고무장갑 800원, 까스명수 200원, 베지밀 270원, 탁주2+박상+껌=1,400원. 시골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품을 취급하는 만큼 도심보다 두 배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학용품이고 뭐고 성남시장에 가서 다 이고 왔는데 도로나 제대로 돼 있나? 하루에 두 번 있는 버스 타고, 물건을 이고 개울가 다리 건너왔지!”
적힌 돈은 다 받았냐는 질문에 “주는 거 봤나? 받는거 봤나?. 내가 와 갚아주노!”라는 대답을 들으셨단다.

장부에는 외상목록만 적힌 것은 아니다. 맨 뒤쪽에는 가족의 40년 역사가 오롯이 담겼다. 이 장부를 주로 썼던 이는 김영이 어르신의 남편 고 조용덕 어르신(2013년 작고)으로 장모님 생신, 며느리 , 친손자, 친손녀의 한자이름과 각각의 출생년도까지 적어놨다.

병원 입원.퇴원.수술 날짜, 동치미 담근 날짜, 화장실을 청소한 날짜뿐 아니라 오랜기간 이장을 한 까닭에 종자 홍보 등 마을 안내 방송 원고도 간간이 적혀 있다.

“요새는 외상하는 사람들이 있나? 그래도 우리집 귀한 가보라고 아들이 버리지 말라 해서 갖고 있지”. 김영이 어르신은 낡은 외상장부를 안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고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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