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국적 언론인으로 사우디 왕정(王政)을 비판해온 자말 카슈끄지(59)는 9월 28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 혼인신고 서류를 작성하러 간 이후 실종됐다. 하지만 터키 정보기관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 의해 살해됐다는 사실을 흘렸다. 암살설을 부인하던 사우디 정부는 결국 ‘(실수로) 심문 도중 사망했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터키수사팀이 확보한 현장 녹음에 따르면 암살팀이 그를 구타하고 손가락을 자르는 고문을 한 뒤 참수했다.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진 사우디 왕실은 왜그리 잔인하게 ‘펜 하나’를 꺾었을까. 카슈끄지의 행로를 보면 격동의 중동현대사에서 이슬람의 합리성과 자존심을 지키려 외롭게 투쟁했던 한 지식인의 초상(肖像)이 드러난다. 그가 기자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1980~90년대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과의 수차례 인터뷰였다. 두 사람은 각각 1958년·1957년생 사우디 명문가 자제로 친했다.

이슬람 교리에 빠진 빈 라덴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선 게릴라 항전(抗戰)에 참여했다. 반면 카슈끄지는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사우디의 영자신문 기자로 아프간 전 취재에 나섰다. 무슬림인 카슈끄지는 당시 중동 젊은이들의 ‘반(反) 서구 제국주의 독립운동’에 깊이 공감, 친구 빈 라덴의 인터뷰를 수차례 보도했다. 그러나 카슈끄지는 소련 붕괴 후 1990년대부터 반미(反美) 테러리즘으로 기울어버린 빈 라덴과 멀어졌다.

카슈끄지가 사우디 왕실과 멀어진 것은 2011년 ‘아랍의 봄’ 때부터였다. 그는 중동 각국의 독재 정권을 뒤엎은 민중혁명을 ‘진정한 이슬람 정신은 평등과 인간애’라며 지지했다. 2015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집권 초 그를 지지했으나 반대파 숙청 등 폭정을 놓고 비난했다. 10월 18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게재된 실종 직전 쓴 미공개 칼럼의 제목은 ‘아랍이 가장 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였다. 

올해 순직한 전세계 언론인 43명 중 27명이 암살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득세하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대변하는 언론인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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