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임금·적정 노동시간 등 핵심과제
노조 저지 투쟁으로 초미의 관심사
독일 등서 유사한 사례로 차산업 회생

생산성 제고 노력 등은 도외시 해온
귀족노조야말로 위기자초 당사자
‘자동차 흔들리면 다 죽는다’ 위기감

 

김병길 주필

한국이 산업로봇 이용률 세계 1위 국가로 떠올랐다. 2017년 기준으로 제조업 직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을 710대를 보유하고 있는 등 이른바 ‘로봇 밀집도’ 평가에서 전세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성 노조 주도의 잦은 노동쟁의, 가파른 인건비 상승 등에 부담을 느낀 제조기업들이 로봇 도입으로 눈을 돌린 결과다. 정부가 최근 실시한 근로시간 단축제, 최저임금 대폭 인상 조치 등은 이같은 제조업 기업들의 로봇 도입 추세를 더욱 촉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부채에 허덕이다가 2018년 3분기 극적으로 흑자를 낸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임직원들과 함께 주당 평균 100시간씩 일했다”고 털어놨다. 주당 100시간을 일하려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4시간씩 일해야 한다. 테슬라는 당초 완전 자동화 공정으로 전기차를 생산하려 했지만 불량품이 잇따르자 과감하게 모든 작업을 수(手)작업으로 전환하고 거대한 텐트형 임시공장에 4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결국 생산목표를 달성해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북미 지역에서 인력 1만8,00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으로 ‘몸집’을 줄여 자율주행 등 미래차 경쟁에 힘을 쏟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GM본사가 대규모 인력감축에 나섬에 따라 한국 GM에 대한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차 업계에선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광주형 일자리는 독일 등 해외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있으나 국내에서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 과제는 적정임금, 적정노동 시간, 노사 책임 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 4가지로 요약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임금이 줄어들지만 삶의 질이 높아지고, 일자리를 나눠주는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하청업체의 기술개발·인력양성을 지원한다. 한편으로는 노동자 대표를 경영에 참여시킴으로써 불량률 저하, 투명성 제고 등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노사민정 합의로 구축되는 ‘광주형 일자리’는 투자 위축, 고용절벽, 청년실업 등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타개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광주시는 현대자동차가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2022년까지 빛그린산단 62만8,000㎡ 부지에 연간 10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세운다는 밑그림을 그려놓았다. 

정규직 근로자는 신입생산직과 경력관리직을 합쳐 1,000여 명, 간접고용(부품기업 등)까지 더하면 1만2,000명으로 추산된다. 광주시는 완성차 공장에서 1,000CC 미만 경형 SUV를 수년간 생산한 뒤 친환경 자동차로 전환하는 방안을 현대차와 협의했다.

현대차 완성차 공장에 근무할 근로자의 평균 초임 연봉은 주 44시간(주 5일 하루 8시간+월 2회 특근) 기준 3,500만원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는 국내 완성차 업체 5곳 평균 9,213만원(2016년 기준)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다만, 구체적인 임금체계 및 수준은 앞으로 출범할 합작법인이 경영수지 분석 등 연구용역을 거쳐 결정한다.

국비와 시비를 매칭해 지원하면 ‘중견기업 고용장려금’을 합쳐 평균 초임 연봉이 4,000만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성공을 위해선 노동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 패러다임의 전제 조건이 노사 상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사민정 대타협의 핵심축인 한국노총·민주노총이 노동계가 배제됐다는 이유로 반대에 나섰다.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를 끝까지 저지하겠다”며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로 고용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의 반값으로, 지역간 저임금 하향평준화 경쟁에 기름을 붓는 사회적 문제를 새롭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광주형 일자리’를 기반으로 현대차 완성차 공장이 성공할 경우 이 모델이 다른 지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은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자동차 생산 대전환기를 맞은 한국 자동차 산업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두 기둥인 반도체와 자동차의 앞길엔 빨간불이 커졌다. 현대·기아차는 2015년 800만 대 넘게 팔았지만 글로벌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영업이익률과 최대 시장인 미국·중국의 공장 가동률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자동차산업에 대한 지원과 구조조정은 피와 살이 찢기는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늦었지만 청와대가 방향키를 쥐고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다른 산업이 흔들리면 수출이 줄고 세금이 감소하는 정도겠지만, 자동차산업이 흔들리면 모두 다 죽는다.

노조가 반대하는 명목은 ‘실적악화와 경영위기’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조원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지 모른다는 이기주의 때문이다. 세계 최고 임금수준에 생산성 제고 노력은 도외시 하는 귀족노조야말로 현대차를 위기로 내몬 당사자라는 지적을 노조는 새겨들어야 한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