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목민심서’ 자서·自序).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신유사옥으로 전남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끝냈다. 1818년 승지가 되었으나 배교(背敎)한 것을 뉘우치고 스스로 벼슬에서 떠나 낙향, 저술에만 몰두하다 세상을 떠났다.

1818년 유배지 마지막 해에 완성한 다산의 대표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 출간 200주년을 맞아 한글 완역본인 ‘역주 목민심서’ 전면 개정판(전 7권)이 출간됐다. 첫 역주본을 낸지 33년 만이다. 2년의 작업 끝에 나온 개정판은 현대독자들을 위해 문장을 쉽게 풀었고, 인명·지명·사실 관계를 재확인해 주석을 보강했다.

지방관의 행정지침서로 쓰인 책이 인문학의 고전이 된 이유는 왜일까. 중국과 한국에 비슷한 목민심서가 100여종이 있지만, ‘목민심서’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근본적 차원의 개혁’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애민(愛民)사상에 입각한 위정자의 청렴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노인과 고아, 병자·장애인, 재난 구호 등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담은 ‘애민 6조’에는 구체적인 구휼 방법을 제시했다. 백성을 정치의 근본으로 두는 민주주의적 저작인 동시에, 조선 후기의 피폐한 사회상이 생생히 기록된 ‘사회경제사 사전’이 ‘목민심서’였다.

번역과 주석을 맡은 다산연구회(회장 송재소)는 1978년 ‘역주 목민심서’ 첫 권을 낸 뒤 1985년 완간했다. 낙원표구사의 방을 빌려 매주 월요일 ‘목민심서’ 번역 독해는 하루에 원고지 겨우 2장을 번역한 날이 있을 정도로 치열한 토론 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5공 시절 다산연구회 회원 중 교수 6명이 해직돼 한동안 작업이 중단되는 고초도 겪었다. 학술서로선 드물게 10만부 이상 팔렸고 해외 순방에 나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구해 갔다는 일화도 있다. 북한에선 이보다 먼저 번역본이 나왔지만 중국 사례들을 모두 뺀 발췌 번역본이었다. 2010년 최병현 호남대 영문학과 교수는 영문으로 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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